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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사색의 창] 이 아침에 - 김재훈

신아미디어 2013. 7. 8. 08:53

"사람은 얼굴에 늘 표정을 담고 산다. 무대 위의 연기자가 아니고는 기쁠 때, 슬플 때, 화낼 때, 모두 그대로 나타난다. 표정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다. 안색의 변화를 감지할 순 없으나 눈빛으로 보면 알 수 있다. 소나 말이 놀랄 때면 눈이 커지고 화가 나면 눈이 무섭다. 개와 고양이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표정이 확연하다. 개는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신의 현재 기분을 나타낸다. 곤충이나 물고기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몸과 소리로 감정을 전한다. 그러고 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표정이 있는 듯하다. 하물며 구만리에 뻗친 마음까지 끌어오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최령最靈한 사람에게랴."

 

 

 

 

 

  이 아침에  김재훈


   날씨가 침울하다. 차라리 비가 쏟아지든지, 요즘 연일 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낮에도 글을 읽으려면 불을 켜야 한다.
   베란다의 꽃들도 어쩐지 침울해 보인다. 햇살이 좋을 때 사랑초는 꽃잎을 활짝 열어 방실방실 웃어댔다. 그러나 오늘은 꽃잎을 오므린 채 축 늘어졌고 다른 꽃들도 풀이 죽어 있는 듯하다. 이런 날은 삼라만상이 모두 우울해 보인다. 살아있는 것만이 아니라 거리도 심지어 흐르는 시냇물마저…. 저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바라보는 나만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얼굴에 늘 표정을 담고 산다. 무대 위의 연기자가 아니고는 기쁠 때, 슬플 때, 화낼 때, 모두 그대로 나타난다. 표정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다. 안색의 변화를 감지할 순 없으나 눈빛으로 보면 알 수 있다. 소나 말이 놀랄 때면 눈이 커지고 화가 나면 눈이 무섭다. 개와 고양이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표정이 확연하다. 개는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신의 현재 기분을 나타낸다. 곤충이나 물고기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몸과 소리로 감정을 전한다. 그러고 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표정이 있는 듯하다. 하물며 구만리에 뻗친 마음까지 끌어오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최령最靈한 사람에게랴.
   표정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마음은 늘 움직이고 있는 호수나 바다의 물결과도 같다. 표정은 오랫동안 어느 한 형태로 길들여지면 그 사람의 인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부처님의 얼굴은 항시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은 고뇌에 찬 표정이다. 인간을 위하는 마음은 같으나 생각하는 방향을 달리해서 표정이 다른 것일까. 잠잘 때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나타나기 시작하는 표정. 마음의 한 단면인 듯하다. 유심으로 있으면 유심의 표정이고, 무심으로 있으면 무심의 표정이 된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예민하고 표현도 자유스러운 동물이 인간이고 보면 얼굴에 천차만별한 표정이 나타남은 당연한 일이다.
   표정은 그때그때 자신의 주관적인 관념이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 화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기도 하고, 미워할 일이 아닌데 미워하기도 한다. 또 옆에서 아무리 웃겨도 제 마음이 슬퍼지면 웃을 일이 없다. 그래서 역지사지라 한다.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하늘은 표정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날이 활짝 개어 해맑게 웃는 날이 있는가 하면 구름이 잔뜩 끼어 찌푸린 날도 있다. 마치 그 큰 얼굴로 세상을 향하여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식물들은 하늘의 표정에 따라 실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사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하늘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낮게 드리운 가까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는 말이다. 구름이 잔뜩 낀 날도 하늘 높이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오르면 하늘은 새파랗고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평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불가에서는 마음속의 마음, 즉 텅 빈 본래 자리가 있음을 알고 깨치라 한다. 성품을 보라는 말인데 보통 사람들이야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금 내 표정이 왜 이럴까. 이것이 명경지수 같은 본래 마음자리에서 나온 표정은 아닐 것이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세 비가 쏟아질 듯한 아침, 구름 뒤의 하늘은 청명하듯 본래는 맑은 자리임을 생각하며 이 아침의 내 표정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김재훈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내 마음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