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사색의 창] 따로국밥 소고小考 - 강대식

신아미디어 2013. 7. 7. 12:09

"삶의 기본이 홀로임을 일깨우는 ‘따로국밥.’ 자연의 뭇 생명체는 홀로 태어나고 가지만, 사람은 사는 동안 최소단위의 가족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외모와 내면의 기질로 어울리며 산다. 음식으로 치면, 모습과 맛을 달리하는 여러 음식이 입 안에서 한 덩이로 저작되지만 위장으로 보내기까지는 각기의 맛이 포함되어 있음이다."

 

 

 

 

 

 따로국밥 소고小考   -  강대식


   세모에 아들집에서 곰거리를 보내왔다. 푹 고아낸 국물의 담백한 기름과 마침 숙성된 올 김장김치를 떠올리니 지레 군침이 돈다. 곰국은 ‘탕’의 이름으로 먹게 되는데, 상차림은 밥을 말지 않는 ‘따로국밥’으로 나온다. 탕이 차분하고 유연한 내용물로 여성답다면, ‘국밥’은 투박한 그릇에 담긴 식재도 거칠거니와 보글보글 끓는 차림새가 무뚝뚝해도 화끈해서 남성답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식 중 밥과 반찬을 섞어서 내는 음식으로 비빔밥이 있고, 국에 밥을 말아내는 국밥을 들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국밥을 사먹어 본 것은 학창시절 고향의 오일장터에서였다. 몇 향우와 세사를 논하며 막걸리와 쟁반만 한 부침개를 안주로 국밥을 먹는데, 안주인의 걸쭉한 농까지 가세하니 어느새 그릇은 비었고 포만감에 흐뭇했다. 그릇 비워 배고픈 사람에게 채워주는 비움과 베풂의 이치가 새삼 떠오른다. 흥정하느라 옥신각신, 만나 반갑다고 왁자지껄, 사람냄새가 진동하는 시골장터는 서정이 물씬 풍긴다. 서정은 예술창작의 바탕이 아니던가.
   우리의 전통음식으로 즐기는 비빔밥과 국밥의 내력을 선대의 농경시대 생활환경에서 찾아본다. 대가족의 끼니는 좁은 공간에서 큰 식탁으로 한꺼번에 마주할 수 없어 몇 개의 개다리소반에 겸상하여 방 안팎으로 흩어져 먹었다. 샛거리 없이 고된 농사일을 치르는 일꾼들은 밥심을 챙겨야 했다. 일손이 바쁘기도 하지만, 밥은 고봉인데 소찬에다 양도 넉넉지 않은 반찬이라, 한눈팔다가는 천신키 어려우므로 빨리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개발한 식단이 비빔밥과 국밥이 아니었을까? 요즘의 인스턴트식품과도 같이 빠르게 먹을 수 있어 시간과 수고의 절약형 메뉴이다. ‘빨리빨리’에 이골이 난 우리 기질로 미루어 이런 메뉴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우리의 전통음식인 비빔밥은 영양 듬뿍한 식물성 향기와 놋그릇의 자태가 ‘화이트칼라’ 신분 같고, 우거지, 콩나물 나부랭이 국을 담은 뚝배기의 태는 ‘블루칼라’ 신분 같다. 국밥이라 하면 내용물 따라 이름은 달라도 뚝배기그릇에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담아야 하고, 한눈에 맵고 자극적인 식품을 곁들여야 하며, 후우 불고 후루룩 넣고 눈물 콧물, 땀방울이 맺히고서야 제대로 국밥을 먹었노라 말할 수 있다. 서양 식탁에서 볼 수 없는 그 소리는 뜨거워서 식히는 구음口音이지만, 흥을 돋우는 추임새처럼 사각거리는 턱 놀림이 힘을 낸다. 그렇게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제치는 맛은 오달지다. 국물도 뜨거운데, 고추와 마늘까지 곁들여도 모자라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국밥의 속성. 배고픔의 한풀이라도 하듯 훌쩍훌쩍 떠먹던 숟가락질마저 성에 안 차, 나중엔 두 손으로 뚝배기째 치켜들고 훌쩍 마셔야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국밥의 투박한 품새에 식욕을 느끼는 것은 문장의 기起이고, 뜨거운 데다 매콤한 식재를 보태서 화끈거리는 맛은 점입가경인 승承이며, 후후 불어 후루룩 입에 넣는 숟가락질은 산해진미가 따로 없는 감칠맛을 한껏 빚어내는 전轉이며, 그릇째 들이마시는 마무리는 여한 없는 끼니의 행복감의 결結이라 표현해 본다.
   식사는 말아서 먹건 따로 먹건, 입안과 밖에서 섞는 것이 다를 뿐 위장으로 보내기는 매한가지지만, 하나하나의 미각을 섭렵하는 ‘따로국밥’과 말아서 느끼는 두루뭉술한 맛은 다르다. 마치 싱그러운 숲의 아름다움만 알고 수많은 식물들의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과 같고, 한 나라지만 똑같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 안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삶의 기본이 홀로임을 일깨우는 ‘따로국밥.’ 자연의 뭇 생명체는 홀로 태어나고 가지만, 사람은 사는 동안 최소단위의 가족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외모와 내면의 기질로 어울리며 산다. 음식으로 치면, 모습과 맛을 달리하는 여러 음식이 입 안에서 한 덩이로 저작되지만 위장으로 보내기까지는 각기의 맛이 포함되어 있음이다.
   지금은 개성시대다. 풀뿌리 민초들이 가진 특성을, 교육을 통해 계발하여 직업을 갖는다. 연마되고 수련된 지식과 기술이 아무리 소중하고 아까워도 사회공동체 안에서만 유용할 따름이다. 따라서 공들여 배운 직업과 지식을 국가와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이치다. 풀뿌리들의 그런 활동은 나라의 동량이 되어 부富와 강强 그리고 행복한 국가를 만들고, 나아가 세계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게 된다. 그런 덩치 속의 내 가정도 행복과 긍지가 따르는, 불가분의 인연으로 사는 것이다. 산해진미도 그 음식의 밑바닥엔 비싸고 귀한 식재들이 들어 있다. 이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사물과 세상사가 ‘따로국밥’의 이치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국을 먹는다. 말아서 흐벅지게 먹던 아내가 따로 먹고 있는 내 것이 맛없어 보이는지 말아 먹으라고 타이른다. 부부가 마주보고 먹다 보면 먼저 닮아가는 게 식성일 텐데, 회혼이 넘도록 동상이몽이니…. 어차피 홀로 태어나고 죽는 인생인데, 동심일체라는 부부인들 하나일 수밖에 없는 밥과 국처럼 ‘따로국밥’으로 살고 있는 것을 어찌하랴.

 

 

강대식  --------------------------------------
   1996년 ≪창작수필≫로 등단.  수필집: ≪신발 두 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