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터넷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시대는 글씨쓰기 자체가 필요 없는 시대가 아닌가. 모든 소통장치가 신속 정확한 것으로 바뀌었다. 육필에서 얻을 수 있는 글씨 쓰는 맛, 정취, 미적 감각이 사라진 게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누가 현대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 쓰는 것에서 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지금은 편리와 효율성이 떨어지면 폐기되고 만다. "
만년필 - 이종택
일제 강점기,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펜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 펜글씨를 잘 써야 글씨체가 반듯해진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한문 글씨체본을 보고 열심히 연습했다. 어찌나 많은 글씨연습을 했던지 펜촉이 쉽게 닳았고 닳으면 그 끝을 숫돌에 갈아가며 썼다. 책보는 늘 잉크가 흘러 거무튀튀했었다. 그 뒤로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가운데 손가락에 옹이가 박히도록 펜과 만년필을 번갈아가며 연습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군서기가 되려면 맨 먼저 글씨를 잘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면서기들도 글씨를 잘 썼다. 면사무소에 호적등본을 떼러가서 보면 호적서기가 그 많은 글씨를 직접 써서 발부하는데 그 글씨를 보면 환상적이었다. 선생님이나 웃어른들께 편지를 쓸 때면 먼저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목이 있으면 고쳐 쓰기를 여러 번, 좋은 말과 멋진 글씨를 보여 주려고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던가. 글씨는 예술이고 그 사람의 품격이었다. 잘 쓴 글씨를 보면 ‘야! 잘 썼다.’고 감동하고 부러워했다.
그 당시 만년필과 시계는 어찌나 비쌌던지 사치품이었다. 시계 찬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신랑신부가 예물교환할 때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신부는 신랑에게 만년필을 꽂아주었다. 사진을 찍을 때 신부는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있고, 신랑은 오른편에 서서 윗주머니에 꽂은 만년필과 빌려 찬 손목시계가 보이도록 포즈를 취해서 찍었다. 외출할 때는 필수품인 만년필이 꽂혀있는가를 확인했었다.
만년필은 오래전 서양에서 발명되었다. 우리는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을 때 그들은 새의 깃털을 칼로 깎아서 썼다. 그러나 글자 몇 자를 쓰다보면 금방 끝이 닳아서 다시 칼로 깎아서 써야 되는 불편이 있어, 오랜 연구 끝에 펜촉을 발명하게 되었고, 그 편리성에서 진일보한 게 만년필이다. 당시 만년필을 써본 사람이면 누구나 걸작품이라 감탄했고, 온 세계가 떠들썩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백년필도, 천년필도 아닌 만년필이라 이름 지었겠는가. 중국에서는 자래수필自來水筆이라 부른다. 스스로 물이 나온다고 이름 지어 부른다니 그들도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만년필은 그 존재로도 빛이 난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체결 등 중대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만년필. 1919년 1차 대전 종결 후 ‘베르사이유’ 조약에 영국수상 ‘로이드 조지’는 ‘워터맨’ 만년필로 서명했고, 1945년 2차대전(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에 ‘맥아더 장군’은 ‘파카’ 만년필로 서명했다고 한다. 오늘날에 있어 아무리 볼펜의 시대라지만 소중히 보관해야 할 문서에는 지금도 여전히 만년필로 사인을 하는 것이 의례처럼 여겨지고 있다.
유명문인들의 문학관에서 작가의 유품으로, 책과 육필원고 그 옆에 놓인 만년필과 펜, 돋보기 등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작가의 글씨를 보면 더러 명필도 있지만 간혹 졸필도 눈이 띄게 되는데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글씨까지 다 잘 쓰는 건 아닌가 싶다. 나는 가끔 ‘최명희 문학관’에 들르곤 한다. ≪혼불≫을 펼치면 표지 날개에서 최명희 선생의 만년필로 글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는 글씨도 명필이었다. 그 만년필은 작가가 ≪혼불≫을 쓰는 동안 불면의 밤을 함께하며 글을 찾아 많은 눈물을 흘렸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만년필을 손톱 삼아 바위에 글을 새기듯 썼던 ≪혼불≫ 최명희 작가, 그는 우리에게 문학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다.
요즘엔 한문과 한글을 막론하고 근본도 없는 듯싶은 글씨체가 마구 돌아다닌다. 시중에 간판글씨를 봐도 문인들이 발간한 책 표지를 봐도 어떤 것은 너무도 혼란스럽다. 아무리 세대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노년세대에는 신명조체나 바탕체가 좋다. 이 글씨들은 예나 지금이나 점잖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런 글씨들은 점차 밀려나고, 나비처럼 가볍게 쓴 필체가 있는가 하면 억지로 구부려 쓴 글씨를 오히려 좋다고 여기저기 써 붙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이제 인터넷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시대는 글씨쓰기 자체가 필요 없는 시대가 아닌가. 모든 소통장치가 신속 정확한 것으로 바뀌었다. 육필에서 얻을 수 있는 글씨 쓰는 맛, 정취, 미적 감각이 사라진 게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누가 현대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 쓰는 것에서 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지금은 편리와 효율성이 떨어지면 폐기되고 만다. 컴퓨터 속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들이 조그마한 마우스 하나로 클릭만 하면 척척 해내는 것이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만년필은 그 효용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깊숙이 숨어 버렸지만 그래도 옛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종택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때늦은 책가방≫, ≪은발의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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