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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1월호, 신인상] 시간을 지키다 - 김지숙

신아미디어 2012. 2. 24. 08:09

 

시간을 지키다


   아침 통학차가 닿을 시간이다. 책가방을 챙긴 아이가 서둘러 뛰어나
가더니 숨차게 되돌아온다. 책상 위에 둔 손목시계를 낚아채듯 거머쥐
고, 다녀오겠다는 말을 흘리고 다시 현관 밖으로 뛰어나간다.
   늘 같은 길만 아는 시계를 아이는 소중하게 여긴다. 일 초도 놓치지
아니하고 재깍거리는 시계처럼 아이의 일상도 시계처럼 빈틈이 없다.
그 시간 속에는 무수한 변화라는 조짐이 있다. 그 조짐이 있어서 아이는
어제보다 오늘의 성숙한 변화를 갖는다. 내일과 그 내일은 또 다른 성장
과 성취감으로 커갈 것이다.
   사람은 똑같은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 같다.”라는 말로 나타낸다. 시
계를 보면서 바쁘다며 서둘기도 하고, 느긋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시계는 도道를 깨달은 도인처럼 재촉도 느긋함도 없이 의젓하다. 한결같
은 속도로 한 칸 한 칸 메워나가며 착실하게 시간을 알려준다. 짜증을
모르는 것이 시계라고나 할까.
   시계 속에는 내 가족이 어른거린다. 잃어버린 가족이 떠오를 때면 시
간은 시계 밖에 머문다. 건전지를 뽑아버린 시계처럼 전혀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걸음이 된다. 잃어
버린다는 것은 기억이나 추억만이 아니다. 그 시간은 특별히 기억 속에
머물러 지워지지 않는다. 색깔과 형태도 변하지 않는 박물관 속의 골동
품 같은 것이 된다.
   시간과 시계는 부부관계처럼 보인다. 시계가 깨어지면 시간을 알 수
없다. 시간이 어긋나기 때문에 시계를 정확하게 맞출 수도 없다. 부부
가운데 어느 누가 잘못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시계는 작은 바늘 큰
바늘의 자리를 지키며 그 궤도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다. 어쩌다 어긋나
면 주변의 모든 사항이 덩달아 비뚤어진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시계는 고장이 나도 시간은 그가 지켜야
할 길을 빈틈없이 가고 있다.
   시계의 긴 바늘과 짧은 바늘 속에는 긴장을 풀어주는 어떤 따뜻함도
있다. 식구들의 아침을 챙기며, 하루의 일과를 시계 속에서 궁리한다.
찻잔을 앞에 놓고 책장도 잠시 넘겨본다. 짧은 업무시간이 나를 기다리
는 것을 안다.
   혹 잘못 살아온 시간은 뒷날의 거울로 삼기도 한다. 다가올 시간을
미리 계획하라고 시간이 귀띔을 주기도 한다. 오후 다섯 시, 아이들은
간단한 요기를 마친 다음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늦은 저녁시간, 주차장
에 내려 지친 두 아이를 양쪽 팔로 한 녀석씩 껴안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가볍다. 아이들은 힘든 과제물과 작은 걱정거리도 이 순간만은
잊을 것이다.
   시간 속에는 계절의 흐름이 있다. 서늘한 새벽 바다와 육지 그리고
섬 위의 불빛이 반짝이는 시간대를 보는 것은 시원하다. 섬과 육지를
사이에 둔 바다 위의 배, 익히 알고 있는 시간과는 또 다른, 물 위의 그림
자가 시간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은 불빛에 따라 빛깔을 갖고 있다. 빨간
색, 주황색 불빛들의 그림자는 바다 위에서 일렁거리는 시간이 된다.
   새벽 숲길에서,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검정색 비
닐봉지가 나무 덤불에 걸려 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버린 시간이었
다. 미물이지만 버려진 곳에서 시간을 바스락거렸다. 나는 헛기침을 하
면서 버려진 시간을 보았다.
   새벽바람이 따스할 때는 마음이 넉넉해지는 걸 느낀다. 바쁜 걸음이
아니어서 좋고, 낙엽이 아스팔트를 조심스레 긁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인지도 모른다. 그 장단에 맞춰 마음도 한결 너그러워진다. 하지만 사나
운 바람은 사람들의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하는 사나운 시간 아니던가.
   시간에도 빛깔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새벽을 그린다면 수묵담채화
로 그리면 어떨까 싶다. 풀 한 포기, 새, 나무, 그리고 인적이 드문 산.
얇은 붓으로 산과 나무 등의 실루엣을 그린 후, 굵은 붓 끝에 듬뿍 물을
적셔 엷은 먹색으로 바탕을 칠한다. 거기에 새벽바람을 불어넣어 샛노
란 씨알 같은 것들을 끼우고 싶다.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씨알 같은
것을 그 틈새에서 찾아보고자 눈을 껌뻑거리는 내 모습은 조금 우스꽝
스러울 것이다.
   새벽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한다. 새벽은 내 속에서 가라앉지도 타지
도 않는 신선한 시간이다. 그런 한때이지만 시간은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다. 잡으려면 이내 놓쳐버린다. 내 손 안에 쥐고 있다고 다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내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듯 다시 나타난다. 시간이라는 영원
불변의 영속성 안에 내가 있지 않는가.
   시간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정다운 내 식구
이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하는 지킴이다.

 

 

김지숙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드레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