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독
이상하다? 거울 앞에서 무심코 눈을 위로 치켜떴는데 눈썹 끝자락만
위로 올라간, 인상이 사나운 여자가 거기 있었다. 눈을 위로 올려도 이마
와 미간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썹 끝부분만 움직인다. 몇 번을 해봐도
똑같았다. ‘내 얼굴이 왜 이렇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난 송년 모임 때였다. 경품 추첨에서 당첨됐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주었지만 그냥 핸드백에 넣어두었다. 사실 보톡스란 게 뭔
지도 잘 모르거니와 시술권을 사용할 수나 있을지 막연했다. 그런 시술
은 만인 앞에 늘 얼굴을 보이는 일이 직업인 배우나 가수들이 하는 것이
지,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이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해 본 터였다.
한 해가 다 갈 무렵, 핸드백을 정리하다가 그것을 발견했다. 사용기간
이 3일밖에 안 남았다. 이걸 어쩔까? 친구들이 한번 해보라고 부추겼다.
내 돈 주고 하려면 수십만 원이 드는데 공짜가 아니냐고. 그래, 얼굴이
팽팽하게 변해서 한층 더 젊어 보일지 몰라. 용기를 내서 그 성형외과에
갔다.
나보다 젊어 보이는 여자가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이마를 위로 치켜
올려라, 코를 찡그려 봐라, 활짝 웃어봐라 하며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
마와 미간 사이 눈가 콧잔등에 주사를 놓겠노라 했다. 요즘 중년 여자들
이 보톡스 맞는 것은 예사라고, 다들 얼마나 젊고 세련되게 사는지 모른
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맞으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있으면 어쩌나 또다시 걱정을 하며 망설였더니 그 여자 말로는 부작용
이라면 딱 한 가지, 한 번 맞으면 또 맞고 싶어지는 것이라 했다.
보톡스란 것이 독소를 이용한 주사액인데 그것을 맞으면 근육 움직임
을 일정기간 완화시켜 주름이 안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설명을 하며
의사가 덧붙였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이 여인에게는 청춘을 앗아가는
신호잖아요. 피부를 팽팽하게 펴서 언제나 젊어 보이게 하니 얼마나 좋
아요.”
주름을 감춰주는 독, 이건 아름다운 독인가? 하지만 ‘독소’라는 단어가
가슴을 찔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름다워지기가 쉬운
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요즘은 코야 턱이야 성형한다고 사서
고생하는 세상이다. 의사에게서 주사 놓을 곳을 설명 들으면서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아프긴 아픈데 참을 수 있는 아픔이란다. 주사실에
누웠다. 찬 수건을 눈 위에 얹는다. 먼저 이마 양쪽에 여러 대의 주사를
놓는다. 나는 이를 앙다물었다.
3일이 지났다. 여느 날과 같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
다. 보고 또 보아도 거울 안의 내 얼굴은 다정해질 기미가 전혀 없다.
이를 어쩌나? 쓸데없는 짓을 해가지곤, 후회가 되었다.
마지못해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모자를 눌러쓰고 행여 남들이 알아볼
까 전전긍긍하였다. 효능기간이 6개월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본얼굴이
돌아오려면 여름에나 가능한 것이다. 이제 곧 여성이 맘껏 싱그러워지
는 봄이 올 텐데……. 이게 무슨 꼴이람. 하다못해 왜 그런지 일단 병원
에 가서 물어나 보자 싶었다. 의사는 근육의 힘이 달라서 그러니 이마
양쪽에 다시 한 대씩 더 맞으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또 주사를 맞았다.
이제 눈을 위로 올려도 이마처럼 눈썹 끝자락도 움직이지 않는다. 웃어
도 눈가가 꿀 먹은 벙어리다.
여자 얼굴이 이렇게 먹먹해서야……. 배우 안성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웃으며 주름 지는 얼굴이 그렇게 환하고 편해 보일 수가 없다. 웃는
주름 사이로 신선한 정감이 가슴에 와서 닿는다. 진솔함에서 오는 멋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같지 않을까 싶다.
표정이 살아있어야 하지 않는가. 얼굴은 마음이 표출되는 창이라 했
다. 슬플 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도 가고 이마도 찡그려지고, 기쁘면
활짝 웃고, 그럴 때 얼굴에 생기는 그늘이나 해맑은 표정은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남을 대할 때 숨김없이 마음을 드러내는 표정도 정답지 않은
가.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가운 정이 흐르게 하는 전령사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지닌다.
살면서 얼굴에도 마음에도 주름이 졌다. 애증과 시기와 그리움…….
눈물에 젖은 주름살이 한숨과 함께 저 산과 골짜기처럼 엉켜있을 것이
다. 아닌 척, 모르는 척, 더러는 헛웃음으로 아름다워지려고 바둥대다가
이젠 지우지도 못한 것들이 그대로 굳었지 싶다. 복잡한 세상살이가 주
름살을 만들었고 억지로라도 그 주름을 펴고 싶었다고, 로봇의 표정에
진배없는 거울 안의 얼굴을 보면서 변명을 한다.
마음에 놓는 보톡스 주사는 없을까? 몸에 맞는 보톡스처럼 남의 눈이
나 속이는 그런 허영된 것 말고, 너와 나로 인하여 마음에 지는 살煞을
없애주는 그런 주사가 있다면. 따뜻한 피가 흐르게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 세수하듯이 눈가와 미간을 손으로 문질
러 본다. 그리고 웃어 본다. 눈 아래 주름이 진다. 잔주름 사이로 아름다
운 노을이 뜬다. 주름이 져야 웃음이 만들어지는 내 마음의 창, 또 눈을
찡긋해 본다. 칠월의 먼 산 솔숲보다 편안한 흔적, 내 걸어온 세월만큼이
나 따뜻하게 주름이 만들어지고 웃음이 익는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독
을 맞고 거울 앞에 있다.
정영숙 ------------------------------------------------------
진주수필문학회・주부독서회 글사랑 회원.
일신밴드 나이스맘/ 일신코러스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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