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분수
양수리 세미원에는 3백65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 분수가 있다. 연꽃을
보러 갔던 날 연꽃보다 먼저 항아리 분수에서 시원하게 뿜어 오르는 힘
찬 물줄기를 만났다. 기와를 얹은 둥그런 담장 안에, 기도하는 여인 모습
의 바위를 중심으로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서 있고, 담장을 따라 줄지어
있는 수많은 항아리를 보자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조선시대 궁궐을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참고하여 창덕궁의 장독대를 재
현했다고 한다. 항아리 뚜껑에 둥그런 구멍을 내어, 한강에서 끌어들인
물을 힘차게 뿜어 올리는 장독대 분수는, 일 년 3백65일 새벽마다 장독
대에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가족을 위해 비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이
란다. 그래서인지 물줄기를 뿜어내는 둥그렇고 큰 항아리는, 출산을 앞
둔 산모의 몸매를 닮았고, 달려가면 안아주고 어떤 투정이나 하소연도
다 들어줄 넉넉하고 푸근한 어머니 모습 같기도 하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장독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렸다. 내
어렸을 적 어머니도 가족을 위해서 정성을 드렸었다. 뒤란에 있는 장독
대의 커다란 항아리 위엔 맑은 물이 가득 담긴 하얀 사기대접이 놓여있
는 것을 가끔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어머니는 특별한 날이면 식구들이
일어나지도 않은 이른 새벽 새 물을 길어다가 정성을 드렸지 싶다. 맑은
물이 담긴 대접 옆에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신성함이 느껴졌다. 어머
니는 하늘과 땅, 온 우주 만물에게 소원을 말했을 것이다. 우선 좋은
일기로 농작물의 풍년을 기원했을 것이고, 가족의 무탈함을 바라는 마
음으로 드리는 기도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병에 걸
리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몸 같은 항아리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는, 자궁 속의 양수
가 분출하는 것 같다. 물은 생명체의 원천이다. 물이 있으므로 생명체의
바탕이 되는 유기물이 만들어지면서 생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명체를 잉태한 어머니의 자궁은 양수로 가득하여 태아 또한 물
로 이루어졌다. 물에서는 생명체를 만들고 키우기도 한다. 잔잔한 호수
나 강물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생명체
의 심리적 안정을 이끄는 유전자가 활동하기 때문에, 바다나 강가에서
는 아이들이 싸우는 일이 없다고 한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부엌에는 커다란 물 항아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언
제나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하게 채워 놓아야 흡족해 하셨다. 항아리를
비우고 새물을 길어다 채우는 날은 열 동이쯤 길어야 항아리를 채울 수
있었다. 우물은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있었다. 어느 겨울이었다. 밖에는
바람 불고 몹시 추운날씨였는데 안방은 군불을 지폈는지 따끈따끈했다.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일기를 쓰고 있었다. 옆에는 아버
지도 누워 계셨다. 언니는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두
워지도록 물을 길어 날랐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일기장에는 “혼자
서 물 긷는 엄마가 너무 추울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라고 적었다. 어머니
는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다. 몸이 힘들고 고단해도 늘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앞섰다. 어머니는 가득 채워진 항아리의 물 같은 존재였다.
몇 해 전 아들애가 취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언니의 전화
를 받았다. 엄마인 내가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을 멀리 고향에 살고
있는 언니도 눈치 챈 모양이었다. 나이 차가 많아서 엄마처럼 의지하는
언니였다. 언니는 느닷없이 “니가 기도 많이 해라.”라는 말을 했다. 언니
가 말하는 기도는 종교적인 차원의 기도가 아니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라
는 것이었다. 노심초사하는 것은 정성이 아니고 기도가 아니다. 자식을
반듯하게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이 중
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매사에 조신하게 행동하려
고 했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자식도 덩달아 불안해진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자식문제로 고민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기
도해.”라고 말해준다. 기도하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보이는 엄마도 중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엄마도 아이들은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국 신강에는 5천4백 미터의 높이에 길이는 2천5백 킬로미터나 되는
천산天山이 있다. 설산雪山으로 유명한 이 산을 그곳 사람들은 모母산이
라고도 부른다. 천산에 쌓인 눈이 녹아서 호수에 맑은 물이 가득하고
사막엔 오아시스가 생겨나서 농작물을 키우고 동물을 키운다. 그뿐인
가, 오아시스가 있는 곳엔 도시가 생겨나고 많은 인구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식수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산이기에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르지 않는 샘을 품고 있는 산을 모태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멀리 흰 눈으로 덮여있는 천산과, 천지天池의 맑고 깊은 물을 볼
때는 그냥 풍경이 아름다운 산과 맑은 호수라고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천산을 모산母山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곳 사람들이 물을
주는 산을 어머니로 표현하는 마음에 아름다운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
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가슴 찡한 울림이 왔다.
세미원에서 맑은 물을 뿜어 올리는 3백65개의 항아리분수를 보던 날,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저승에
서도 정화수를 떠놓을지도 모른다.
김옥춘 ---------------------------------------------------
2005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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