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지나다 이 땅이 좋아 이 땅에 자리 잡은 이른바 다문화 가정을 모른 척하거나 길을 막곤 하는 짓은 다른 땅이 좋아 다른 땅에 머문 우리 형제들을 잊어버린 처사다.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의 생명을 하찮게 여긴 짓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과객을 사는 것 아닌가!"
과객過客 - 최병호
“잘 다녀왔습니다!” 작은사랑의 문이 열렸다. “음, 어서 들어가 봐라!” 낯선 분의 화답이었다. 살짝 묵례하고 큰방으로 직행, 할머니에게 “작은 사랑에?” 하고 물었다. “과객이란다.” “과객이 뭐요?” “지나가는 길손”이란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이면 바로 지나가야지 왜 골목 안 우리 집에까지 들어와요?” “우리 집을 마땅하게 본 것이지….” 아련한 기억이다.
당시 형편은 몹시 어려웠다.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밸밸거리던 목탄버스마저 없어지고, 교통수단이라고는 오직 전용 11번의 건각健脚뿐이었다. 사람들의 행색도 거의 묵은 때가 덜 가신 충충한 빛깔이었다. 평등사상이 저절로 구현되는 현실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가운데에서도 돋보일 것도 없는 이른바 ‘의관衣冠’을 마치 갖춰야 할 자존처럼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아버지 형제들도 그런 측에 속했다. 할아버지가 이따금 과객 대접을 챙긴 것도 그런 일면을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당신의 관이 오로지 갓뿐이어서 그 위격位格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든 나와는 무관한 일이어서 나는 사뭇 무심히 지냈다.
가을이 되면 감 따기는 내 몫이었다. 어느 핸가 할머니가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보라고 했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하면서 천천히 잘 따보라고 했다. 감나무 위엔 얼씬도 하지 말라던 할머니의 허락이어서 속으로 ‘으이쓰이쓰이’ 신명이 났다.
작은 전대를 왼 옆구리에 차고 날렵하게 나무를 탔다. 두 발과 오른손으로 삼발이 같은 균형을 잡고 왼손으로 감 하나하나를 바깥쪽으로 돌려 마침내 꼬투리가 끊어지게 하는, 원초적인 작업을 혼자서 즐겼다. 전대가 무거워지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내려서 둥우리에 그 실적을 쌓았다.
“마지막에는 다 따지 말고 좋은 것 두어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라!” 할머니의 당부였다. “까치밥이 뭐요?” “겨울에 먹을거리들이 귀해질 때, 까치들이 지나다가 잠깐 쉬면서 쪼아 먹으라고 남겨둔 것이다.” “까치가 감도 먹어? 참새는….” 할머니는 웃으며 “참새뿐만 아니라 모든 새들이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너무나도 오래된 어느 날, 나는 국어사전을 뒤척이다가 무심히 ‘까치밥’을 찾아보았다. 나와 있지 않았다. ‘새밥’ ‘참새밥’도 마찬가지였다. 어떻든 날아다니는 과객까지 챙긴 그 착한 마음은 인류가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여겨졌다.
겨울답지 않게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한 어느 아침,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 밑 앞바퀴 쪽에 고양이 세 마리가 눈부신 햇살을 함뿍 즐기고 있었다. 어미와 새끼 사이 같기도 했다. 나는 행복의 삽도 같은 그 정경을 잠시 굽어보았다. 내가 미심쩍었던지 고양이들이 재빨리 뒷걸음질쳤다.
“얭옹~, 옝엉~.”
가냘픈, 애절한, 간절히 마음 저미던 지난날의 그 울음소리가 왜 새삼스럽게 귓속을 후벼드는지 알 수 없었다.
연전의 일이다. 뒤란 끝머리에서 가슴을 조이게 하는 처절한 소리를 들었다. 음원音源을 찾아 보일러실 밀문을 열었다. 뭔가가 후닥닥 도망쳤다. 고양이 같았다. 보일러 덩치 위에서 살았던지 그 새끼가 뒷담에 바싹 붙여진 보일러와의 사이에 빠져있었다. 엄마를 부르는, 혼신의 비명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생명의 절규였다.
구명을 위해 보일러 시공자를 불렀다. 새시 문틀을 통째로 떼내야 하고, 그 사이로 들어갈 수 있는 긴 막대는 제재소에 가서 켜 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제대로 올려질지 알 수 없다며 포기하라고 했다……. 나는 한동안 뒤란을 가지 못했다.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또 ‘얭옹~.’ 소리가 나고, 뒷걸음친 세 마리 고양이가 어쩌면 우리 보일러실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후, 발라먹은 생선대가리 등을 그릇에 담아 그들 먹이로 차고 셔터문 밖에 내놓았다. ‘얭옹~’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도 될까 해서다.
식탁에 비리거나 기름진 것들이 오를 때면 나는 대강대강 먹고 이를 챙겼다. 아내가 ‘위대하다’고 빈정댔다. 위대는 무슨…. 버려진 고양이나 애완견 등을 모아 낙원을 만들어준 그런 분들에 비하면 ‘고양이 앞에 쥐’ 격이지 하고 웃었다.
날로 크고 안전하고 화려한 비행기를 띄워 하늘의 길을 열고, 배를 띄워 바닷길을 넓히고, 제자리 앉아서도 전파를 띄워 삽시간에 우주를 감싸는, 다함 없는 인간의 지혜와 기술이 과객 인생 앞에 현란하다.
이 땅을 지나다 이 땅이 좋아 이 땅에 자리 잡은 이른바 다문화 가정을 모른 척하거나 길을 막곤 하는 짓은 다른 땅이 좋아 다른 땅에 머문 우리 형제들을 잊어버린 처사다.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의 생명을 하찮게 여긴 짓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과객을 사는 것 아닌가!
최병호 ---------------------------------------------------
≪수필공원≫ 등단, 수필집: ≪그러나, 그렇지만≫, ≪미완의 설치미술≫. 공저: ≪수필산책≫, ≪존재의 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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