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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사색의 창] 행복부터 가르쳐라  - 임매자

신아미디어 2013. 5. 6. 08:19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은 그런 사람을 정화시키는 커다란 힘을 준다. 아이들에게는 위기에 빠져도 극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단다. 회복탄력성은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보호요인이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을 키워서 아이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인 것이다."

 

 

 

 

 

 

  행복부터 가르쳐라  임매자


   카미유 포로의 그림 <모르트퐁텐의 추억>은 진줏빛 물안개가 자욱한 봄날 아침의 숲속 풍광을 그려낸다. 그림 오른편의 커다란 나무는 무성한 이파리들을 병풍처럼 펼쳐 허공을 감싸고 있고, 그림 왼편에는 이제 물오르는 어린 나무가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가르면서 하늘로 가지를 뻗고 있다.
   화사한 꽃송이가 동심을 유혹한 것일까, 한 아이가 두 팔을 벌려 언니에게 꽃을 따달라고 조르고 다른 아이는 철퍼덕 무릎을 꿇고 앉아 발치에 핀 꽃에 넋을 빼앗기고 있다. 까치발로 꽃을 따는 처녀, 꽃을 따고 싶어 조바심치는 아이, 꽃에 넋을 빼앗긴 아이, 그 천진한 모습은 내 어린 시절의 그리운 초상이다. 화가는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한 동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처녀와 아이들의 두건에 붉은색을 칠했다.
   모르트퐁텐은 18세기 프랑스 파리 북쪽의 상리스 근교의 큰 공원으로서, 태곳적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숲과 호수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카미유 코로의 이 안개 자욱한 몽환적 수채화 속에서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에 한참을 머물다 보니, 어릴 때 동갑내기 외삼촌과 눈뜨면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널린 산딸기와 머루를 따먹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외삼촌이 아득하게 높은 나무에서 오디를 따 주면 우리는 입안이 까매져서 마주 보고 깔깔 웃던 그 시절, 그렇게 몽유도원도처럼 아름다운 추억의 풍광을 거닐고 있는데 난데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의 전화였다.
   TV에서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 보도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녀는 며느리 얘기를 했다. 며느리는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중남미 국가 국적자인 것처럼 가짜 서류를 꾸며 제출했다고 했다.
   “영어가 부의 대물림을 위한 새로운 수단이라는 것이야 잘 알지만 어찌 손자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교육하려고 할까? 그럼 그 아이는 살아가면서 내내 거짓말을 해야 될 텐데, 그런 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그녀의 격앙된 어조 때문에 몽환에서 후다닥 깨어났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에게 각각 본국 교과과정에 따른 교육을 실시하는 외국인 학교는 외국에서 5년 이상 체류하거나 외국 국적을 취득한 학생에 한해 한국인도 입학할 수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부유층 사이에서는 조기 유학의 대체 수단으로 떠올랐단다. 부유층 부모는 유학원 브로커에서 돈을 1억씩이나 주면서 외국 국적을 위조해서 자녀를 불법 입학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 아이들이, 그리고 방과 후에도 학원 순례를 해야 하는 그런 아이들이 카미유 포로의 수채화 속 아이들의 행복을 알까?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을 단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코 악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은 삶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유년의 행복이라는 잠언은 화살처럼 마음에 꽂혔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은 그런 사람을 정화시키는 커다란 힘을 준다. 아이들에게는 위기에 빠져도 극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단다. 회복탄력성은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보호요인이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을 키워서 아이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인 것이다.
   외국인 학교에 다닌다는 친구 손자를 키가 개나리 덤불만 하던 초등학생일 때 본 적이 있다. 방과 후 학원들을 여기저기 순례하는 아이는 세상의 불만을 혼자 다 떠안은 표정이었다. 지금도 그날 그 녀석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다.
   나의 또 다른 친구의 손자는 카미유 포로의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처럼 흙을 만지며 자연 속에서 공부하는 대안학교에 다닌다. 장난을 좋아하고 명랑하고 해맑은 성품을 가진 아이이다. 바탕이 맑은 그 아이를 가끔 만날 때마다, 아이는 일급수에 사는 열목어처럼 내 마음 바닥 어딘가에 투명한 파문을 일으키는 듯했다. 도를 닦는 데는 자식만 한 거울이 없다고 했는데, 그 두 아이를 보면서 아이 교육에 대한 생각 자체를 표백해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교육학자 에언스트 프리츠-슈베어트의 ≪행복부터 가르쳐라≫라는 책을 읽었다. 큰아들이 번역을 하고 한 권 가져다 준 책이다. 2007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초등학교에서 “행복”이라는 교과목을 창시했던 저자가, 행복해지는 법을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실제로 “행복” 교과목을 진행하면서, “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부모가 신뢰할 때, 아이는 자존감을 지닌 강인한 아이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특히 저자가 긍정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부분이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이 “행복” 수업은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근래에는 독일 이외의 여러 나라에서도 학교 현장에서 행복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2007년부터 중등 과정에 행복 수업을 도입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학교들에서 1990년부터 도입한 회복 탄력성 프로그램도 “행복” 수업과 비슷하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교육 방식을 적용하려는 모색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개발한 행복 교재가 선택과목으로 교육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아이들도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행복은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우리는 행복을 배울 수 있을까?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임매자  ----------------------------------------------
   ≪한국수필≫ 등단,  저서: ≪나를 흔드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