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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사색의 창] 그들의 우정  - 양달막

신아미디어 2013. 5. 1. 22:42

"“털보사장님, 흰머리 나는 거 보니 많이 늙었다.” 청년의 집 앞에 차를 댔더니 차에서 내린 청년이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지 머리도 희끗하구만…….”  남편이 차를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들의 우정  양달막

   예전에 남편이 근무했던 동네를 남편과 함께 지나갔다. 그곳에서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가는 청년을 만났다. 남편이 클랙슨을 누른 다음 청년 옆에 차를 댔다.
   “어! 털보사장님!”
   잠시 눈을 찌푸리던 그가 차 안을 확인하고는 무척이나 반긴다. 반가움 뒤에 원망의 표정이 스친다. 언젠가 그 동네 철공소 직원의 ‘청년이 남편의 안부를 가끔 묻더라.’는 말을 들은 뒤여서인지도 모르겠다. 구레나룻으로 덮여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본 청년은 자기가 부르고 싶은 대로 항상 그렇게 불렀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불렀다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을 남편은 그 청년에겐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청년의 집은 남편의 사무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청년은 남편 사무실에 자주 놀러왔다.
   그는 지금 40대 중반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지능이다.
   “나는 더하기도 할 줄 알고 빼기도 할 줄 알고 이름도 쓸 수 있어요.”
   청년이 어눌한 말로 자랑스럽게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손가락을 벌려 더하기 빼기도 하고, 서투른 글씨로 이름을 적어 보여주던 기억도 난다.
   “내가 어릴 때 마루에서 떨어져서 바보가 됐어요.”
   청년은 마루에서 떨어진 걸 기억하는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서인지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어릴 때 마루에서 떨어져 뇌를 다친 뒤 그렇게 됐다고 한다.
   청년은 남편을 무척 따랐다. 쉴 때면 자기 집처럼 남편의 사무실로 쑥 들어온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별로 상대해주지 않고 놀리기만 하지만, 남편은 ‘미카엘 엔더’의 꼬마주인공 ‘모모’처럼 청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준다. 둘의 대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오래된 친구 같다.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도 좋지만, 저렇게 계속 지내다가 남편의 지능이 청년과 같아질 것아 은근히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멀쩡한 청년이 정신 지체를 가진 엄마와 한 집에서 오래 살다가 그 엄마처럼 된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영호야! 고물 주우러 다니다가 이렇게 생긴 거 보이면 좀 갖다 주라.”
   뭐든 고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나사 하나라도 부족하면 청년에게 부탁을 했다. 청년은 주로 고물이나 폐지를 주워 나르는 일을 했다. 남편의 부탁에 청년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다가 원하는 걸 갖고 오면 그냥 주는 법이 없이 물건 값을 받아 챙긴다. 야박스럽게 느껴지다가도 아버지 옆에서 배운 것이겠거니 하며 이해를 한다. 부모가 언제까지 청년 옆에 있을 수는 없다. 배우자도 없는 청년이다. 키도 크고 인상이 좋은 청년을 보면서 가족이 다 떠난 뒤의 모습을 상상하니 은근히 걱정됐다. 야박스럽게 보이는 그 행동이 어쩌면 홀로서기를 익혀야 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청년은 자전거를 잘 탄다. 아버지 심부름에 따라 자전거에 폐지나 고물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개가 먹을 음식 찌꺼기를 시장에서 받아오기도 한다. 청년은 자전거를 탈 때가 가장 즐거운가 보다. 신나게 휘파람을 불면서 느린 속도로 타고 간다. 느린 속도로 가는 게 더 힘든데도 청년은 곡예를 하듯 잘도 탄다.
   “영호야! 요즘도 송대관 노래 좋아하냐?”
   남편의 물음에 영호는 활짝 웃으며 “송대관이 최고야……. 털보사장이 다음에 또 데려가줘…….” 한다. 몇 년 전 우리는 청년을 송대관이 나오는 콘서트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털보사장님! 나 송대관 좋아하는데 좀 데려가줘. 여기 표도 있어…….”
   그날은 송대관을 비롯해 트로트 가수 몇 명이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여수세계박람회를 미리 축하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청년은 공연 초대권이 있었지만, 꽤 떨어진 공연장까지 혼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누구 하나 청년을 데리고 갈 사람이 없었다. 피부병 걸린 것처럼 피부도 좋지 않은 청년 곁에 사람들은 가기를 꺼린다. 원래 우리 내외만 가기로 했던 계획을 바꿔 남편이 청년을 먼저 태운 다음 우리 동네로 나를 태우러 왔다. 청년은 차 안에서도 <해뜰 날>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먹을 것을 샀고 우리 셋은 나눠 먹었다. 그날 청년은 송대관이 나오자 주위 사람의 반응은 살피지도 않고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나는 주위 사람의 표정을 살피기 바쁜데 청년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나도 자그맣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주위 사람들도 하나 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청년은 휘파람까지 불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청년은 계속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차 안에서도 청년은 노래를 계속 불렀다. 그의 집 앞에 내려주니 대문 앞에 선 청년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털보사장 최고.” 하며 활짝 웃었다. 다음날 청년의 아버지가 고맙다며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단다.
   그 뒤 남편은 그곳 일을 그만뒀다. 그러다보니 청년을 자주 만나지 못했다. 대형마트의 안마의자 파는 곳에 눈을 감고 편안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다니거나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털보사장님! 나, 차 좀 태워줘…….”
   오랜만에 만난 청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에도 남편은 가끔 시내에 갈 일이 있으면 청년을 차에 태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항상 자전거만 타고 다녀서인지 어린이처럼 차 타는 걸 아주 좋아한단다. 청년이 나사 값을 받으려고 할 때 차를 태워주지 않겠다고 농담처럼 말하면 받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리어카를 집에 두고 오라고 하자 청년은 뛰다시피 리어카를 집 앞에 두고 왔다. 그리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 우리는 청년을 태우고 천천히 동네를 돌았다. 늘 보는 풍경일 텐데 차 안에서 보는 모습이 신기한 듯 온몸을 틀어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청년의 옆집에 사는 송씨 할머니가 지나가자 손을 마구 흔들기도 했다.
   “털보사장님, 흰머리 나는 거 보니 많이 늙었다.”
   청년의 집 앞에 차를 댔더니 차에서 내린 청년이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지 머리도 희끗하구만…….”
   남편이 차를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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