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사색의 창] 저게 뭐지  - 강순희

신아미디어 2013. 4. 9. 08:16

"여기 거미가 빌려온 지식으로 집을 지었다면 상황에 알맞은 돌을 활용할 지혜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미물이지만 본능적인 창의에 의해 스스로 깨닫고 행하는 열린 능력이 있었던 게다. 거미집의 무게중심으로 매달아 놓은 자갈 한 알에서 온 우주를 아우르는 지혜와 스캣을 본다."

 

 

 

 

 

  저게 뭐지 강순희


   콩알 같은 것이 공중에서 흔들거린다. 함덕해수욕장 언덕배기에 있는 팔각정 처마 밑. 동쪽 해안도로를 타고 자전거로 달릴 때면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날도 백사장 물빛이 하도 고와 자전거를 모랫벌에 뉘고 팔각정 난간에 기댔는데, 조그맣지만 무겁게 보이는 웬 물체 하나가 허공에 매달려 달랑거린다.
   도대체 저게 뭐지. 짙은 색 고글이라 헛봤나. 안경을 벗고 가까이에서 보니 오돌토돌 현무암 돌멩이가 내 눈높이에 매달려 있다. 그 자갈을 무게중심으로 잡고 Y자형 집을 지은 것이다. 아주 조그마한 거미가.
   오사칠계의 한 구절인 상황에 맞게 꾀를 부린 착상이 기막히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위쪽을 보니, 후우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다리로 거미줄을 움켜쥔 주인장이 긴장한 자세로 엎디어 있다. 여러 가닥의 줄은 처마와 지붕모서리에 매어놓고 아래쪽을 고정할 장소가 없으니 자갈을 들어 올려 기둥을 만든 기발함이라니.
   땅에 널려 있는 자갈 중, 집 중심에 무게를 어떻게 짐작하여 골랐을까. 돌을 거미줄로 고정시켜 놓고 오르내리며 끌어올린 과정을 그려 본다. 사람들이 왕래가 있는 길가라서 보통사람의 머리 위 높이로 들어 올린 발상하며…….
   기둥 삼을 거미줄에 주춧돌 매달아 세우고 집을 지은 거미의 능력은 내장된 DNA덕택이었을까. 아니면 즉흥적으로 생겨난 지혜일까. 추 무게를 적절하게 선택한 그 판단력이 신기하고 경이롭다. 숲속에서 나뭇가지를 매달고 지은 왕거미 집을 본 적은 있지만, 어린 거미에겐 버거웠을 돌멩이를 들어 올린 용감함과 재치는 기상천외다. 열악한 환경을 끌어안고 집을 지은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정된 거미줄들은 처마의 이곳저곳에 옭매인 신세이지만 돌멩이의 요동 따라 같이 흔들린다. 전체 거미집의 장력을 조율하며 자갈돌의 어정쩡한 춤사위에 적극 동조하는 듯 보인다. 돌이 공중에서 유영하도록 적당히 탄력을 주며 흥을 돋우어주는 듯싶기도 하다. 집주인이 그네 대용으로 한 시절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 거미는 한여름 바닷가 그늘막에서 먹이도 얻고 흥도 돋워가며 신명나겠다.
   해안가 갯바람이 매달려 있는 자갈돌을 부추겨 댄다. 흡사 돌 지난 아이의 첫걸음마처럼 아슬아슬하다. 제 무게에 겨워 언제 툭 주저앉아버릴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미줄은 같은 지름의 강철보다 강하고 나일론만큼이나 질기다고 하지 않는가. 인위적으로는 만들 수 없을 만큼 좋은 소재를 직접 뱃속에서 뽑아내는 거미들은, 집을 지을 때 환경의 영향 따라 바람이 부는 경우는 더 뻣뻣한 실을 만든다고 한다. 중력, 거리, 각도, 풍속 같은 물리적 조건까지 고려하는 능력을 지닐 만큼 빼어난 건축가라는 거다.
   무수하게 작은 직선을 질서정연하게 연결하여 원형에 가까운 집을 완성한 거미. 또한 자신의 체중에 맞게 집의 형태를 정하여 제 분수에 맞는 집의 크기를 결정한다니, 우리 인간들보다 얼마나 실속 있고 영리한가.
   언젠가 출가한 딸네 집에서 본 적이 있는 스캣(SCAT)이라는 책 내용이 얼핏 머리를 스친다.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성취해내는 능력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스캣’이라 했다. 가장 적절한 판단력은 어떠한 상황에서건 자신만의 노하우와 창의력을 발휘하는 응용능력이라 한다. 필수불가결할 때 유효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흔히 지식은 누군가의 이론을 내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라서 지식이 쌓인다고 한다. 그에 반해 가르침에 의해 아는 것이라기보다 본인 스스로의 대처능력을 지혜가 열린다고 말한다.
   여기 거미가 빌려온 지식으로 집을 지었다면 상황에 알맞은 돌을 활용할 지혜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미물이지만 본능적인 창의에 의해 스스로 깨닫고 행하는 열린 능력이 있었던 게다.
   거미집의 무게중심으로 매달아 놓은 자갈 한 알에서 온 우주를 아우르는 지혜와 스캣을 본다.

 

 

강순희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