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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신작수필 작품해설] 어머니, 그 근원적인 막막함과 쓸쓸함 - 호병탁

신아미디어 2013. 4. 9. 08:12

"변종호는 바로 어머니의 특별한 삶을 통해 생을 되돌아보는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글이 그의 상처를 덧내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못을 박기로 작정했고 그 못은 우리 모두에게도 박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주말에는 꼭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뵈어야겠다. 변종호의 글은 사람을 이미 바꿔놓고 있다."

 

 

 

 

 

  어머니, 그 근원적인 막막함과 쓸쓸함 호병탁

 

 


1.
   결핍의 시대다. 어느 면에서 보면 과잉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라 서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역사가 그래왔다. 이러한 결핍과 과잉의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지 우리는 그 균열의 아픔에 괴로워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순의 아픔이 불가피하게 야기하는 바로 그 근원적 막막함과 쓸쓸함으로 문학적 외연을 넓히고 미학적 진화를 거듭해온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은 서로 상이하고 뚜렷한 특징을 가지는 문학작품을 근원적인 어떤 하나로 돌려놓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고 사실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문학은 끊임없이 관례적이고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원초적 유형으로 돌아가 그 자체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몸짓을 보인다. 도덕과 윤리가 통례로 부르는 저열한 것, 파괴적인 것, 모독적인 것 등에 문학은 자신의 자리를 잡으려 한다. 물론 문학적 전환의 표현기교를 통해 그 자리를 확보하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이는 신화적 언어가 과학적이고 합리적 이해에 선행하여 진실을 향한 직관적이고 근원적인 형태로 특징지어지는 것과도 같다. 문학작품에서 근원적인 원천을 찾으려는 기도에 있어 우리는 작가들이 아이 같거나 야만인 같다는 말을 한다. 이는 비방하는 말이 아니다. 심리학과 인류학은 이와 같은 말에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권위를 부여해주고 있다. 이들 학자들은 문학과 비합리성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며 문학 작가를 ‘고상한 야만인’이라고 표현한다. 예술가를 야만인이라고 비유하는 이런 표현은 비난이 아니라 실상은 상찬의 표현이다. 문학 작가들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특별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통상 억압하려는 개성의 열등한 측면이다. 예술가는 바로 ‘인간이 아직 끌고 다니는 보이지 않는 꼬리’를 내보이는 자인 것이다.
   변종호는 가슴에 큰 못이 박혀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아픈 꼬리를 끌고 다닌다. 그는 이번 작품집에서 가슴에 박힌 대못과 아직도 끌고 다니는 꼬리를 보여주기 위해 옷을 벗었다. ‘고상한 야만인’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관례와 합리로부터 벗어난 자신의 저열한 모습에 대해 소리 없는 통곡으로 절규하였다.
   그의 근원적인 막막함과 쓸쓸함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머니! 나는 지금까지 변종호의 원초적 아픔의 그림자인 ‘어머니’를 모셔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위와 같은 여러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참에 작가에게 더 큰 대못을 박으려 한다. 나에게도 박으려 한다. 그리고 모든 ‘고상한 야만인’들에게도 박으려 한다.


2.
   우선 표제작 <섶다리>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들어본다.

 

   바쁜 가을걷이를 마치면 마을을 사이에 둔 양쪽 마을사람들은 울력으로 강폭이 좁은 여울목에 다리를 놓았다. 아낙네들은 강가에 가마솥을 걸고 닭으로 육개장을 끓였다. 막걸리를 받아다 바가지로 돌리며 도타운 정을 나눴다. 바야흐로 축제의 장이다. 이럴 때면 마을 간에 쌓인 자잘한 감정들은 흐르는 강물에 모두 띄워 보냈다.// 시기적으로 무서리 내리는 시월이니 다리가 시릴 만도 했다. 그러나 장정들은 허리춤까지 차는 차가운 물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여럿이 힘을 모아 다릿발을 비스듬히 맞세운다. 마주보는 다릿발이 연결되는 통나무에 쐐기가 박힌다. 저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일꾼들이 상판을 대신하는 서까래 굵기의 나무들을 다릿발 위로 촘촘히 깔아놓으면 축축 늘어진 청솔가지가 겹쳐 깔린다. 그 위에 흙을 덮으면 마무리가 됐다.

  -<섶다리>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섶다리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지만 별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위 인용문을 그대로 백과사전에 등재해도 모자람이 없을 성싶다. 다리를 만드는 장소, 시기, 방법, 효용, 동원되는 인력 등 모든 것이 위의 문장에 갈무리되어 있다. 작가는 같은 글에서 섶다리는 강으로 갈라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로 “소통의 언어가 넘나들었고, 고단한 산촌의 삶을 이어가는 양식이며 필요한 물품이 건너” 다니는 길이었다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하얗게 달빛이 부서지는 밤이면 흐르는 물에 흠뻑 빠진 달이며, 별들은 흔들거리면서도 어른거리는 빛으로 섶다리를 덮어주었다.”라고 아름다운 달밤의 서정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서정적인 정경을 배경으로 “해거름이면 삽짝 문 앞에서 섶다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는 어깨가 축 처진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니다. 다리를 건너올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애잔한 모습이다. 화자는 어머니와 돌 지난 자신을 두고 “떠나간 아버지 사연”을 듣게 된다. 그는 신흥종교에 현혹되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이 잠든 사이 떠났다. 매정하게 처자식을 버리고 혼자 다리를 건너갔다. 동네사람들에게 ‘축제의 장’이었고 ‘통로의 장’이었던 섶다리는 이제 화자에게 “헤어지는 아픔”과 아버지가 떠나간 “슬픔이 각인된 다리”가 된다. ‘만남의 기쁨’이라는 섶다리가 주는 일반적 의미는 작가에게 있어서는 ‘별리의 아픔’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된 것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면 평생 슬프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면 평생 외롭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자신의 “유년시절은 항상 외롭고 풀이 죽어있었다”고 토로한다. <섶다리>에서 우리는 작가의 유년시절과 부모와의 구체적인 정황 모두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이는 ‘슬픈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의 모습은 작품집 전체를 관류하는 작가의 자조自照적 고백에 결정적인 단초가 되고 있으며, 다른 작품 수많은 곳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러 양상으로 교직되어 나타나고 있다.


3.
   작가의 유년시절과 당시의 정황이 잘 그려진 대목을 보자.

 

   나이 차가 많았던 형제들, 아침상을 치우기가 무섭게 들로 산으로 일을 나가시던 어머니, 한나절이 지나 그림자 길게 늘어선 텅 빈집은 온통 내차지였다. 약골에다 소심했던 나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서 있는 제방만 넘어서면 언제나 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강은 외롭게 커가던 나의 놀이터요, 쓸쓸함을 덜어주는 변함없는 친구였다.// 서산에 걸터앉은 석양이 일렁이는 강물에 금빛 물감을 풀 즈음이면 물 위를 차고 오르는 피라미들의 묘기는 장관이었다. 또한 그곳은 재 너머 장에 간 어머니를 땅거미 질 때까지 기다리던 곳이기도 했다.

 -<마음으로 흐르는 강>에서

 

   수려한 고향의 강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석양에 “물 위를 차고 오르는 피라미들의 묘기”는 선연한 시각적 심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풍광이다. 그러나 인용문의 행간에는 작가의 외롭고 쓸쓸했던 유년시절과 어머니의 신산한 삶이 나타나고 있다. 강은 “외롭게 커가던” 작가의 ‘놀이터’요, “쓸쓸함을 덜어준” 변함없는 ‘친구’였다. 어머니는 “아침상을 치우기가 무섭게 들로 산으로 일을 나가”셨다. 때로는 “재 너머 장에 간 어머니를 땅거미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단한 생을 살고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인용문에서 작가는 자신을 “약골에다 소심했던 나”라고 고백한다. “나이 차가 많았던 형제들”과는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강이 놀이터가 되고 친구가 돼 주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은 작가의 성격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더듬거려도 진솔한 말”을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나직한 울림의 소리”를 내고자 한다(<소리>). 작가는 자신의 성격의 일단을 진솔하게 작품의 곳곳에서 표출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찾아 정리하고 재인용할 뿐이다.
   확실히 작가는 소심했다. 처음으로 장인 장모가 사위가 될 작가를 만나러 왔을 때 작가는 어른들을 뵙는 것이 두려워 “역까지는 갔지만 나설 수가 없어 전봇대 뒤에 숨어” 그들을 훔쳐봤었다(<첫인사>). “나이에 비해 유독 주름살이 많”아 “다른 아이들에게 할머니로 불리는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을 싫어했다(<늙은 감자와 인생>). 작가는 또한 <만만한 사람>이다. “고스톱을 치면 내 돈을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고 말할 정도로 ‘만만한 사람’이다. 그만큼 당하고 살았다는 소리다. 크게 속고 나서 “도망간 소를 기다려봐야 소용은 없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겠다는 심정으로 관상학을 배우려고 평생교육원에 문의”까지 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껍데기 없는 민달팽이”처럼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작가의 인상이 참 좋다고 말해도 그는 “칭찬 같지만 속내는 이 사람에게도 만만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피해의식을 갖는다.(<만만한 사람>) 작가는 자신의 이기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한다. 그리고 작가에게는 “만성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투석”을 하는 삼십 대 중반의 문우가 있었다. 그녀는 “헛구역질에 시달려야 했고 어지럼증에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그녀가 혈액형이 뭐냐고 물어왔을 때 작가는 “조건이 맞으면 신장 하나를 떼어 달라는 소리”로 알고 “지레 겁을 먹고 말까지 더듬거렸던” 일이 있다. 작가는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내 몸의 일부를 기증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기적이다. 그러나 “천당과 극락 갈 때 장기臟器는 안 가져가도 됩니다.”라는 방송에 나온 의사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인향(人香)>). 갈등하고 있음이 내비쳐진다. 작가의 이런 생각은 다음에서도 표출된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피 끓는 나이에 목숨을 던진 119구조대장의 숭고한 희생과 평생 참된 성직자의 본을 보여주고 마지막 길에서도 장기를 기증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셨다.// 이승을 떠날 때 낡은 옷처럼 훌훌 벗어 던진 육신이지만 그분들의 남기고 간 각막은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것이며 또 다른 잘기는 새 삶을 얻은 사람들 몸속에서 살아 있을 것이다.

 -<다시 피는 꽃>에서

 

   그래서? 작가는 말이 없다. 그러나 행간에서 그분들을 따라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적 존재간의 간극에서 갈등하고 고뇌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이외에도 작가는 자신이 “짠돌이”였다고도 하고(<하수(下手)의 훈계>), “숫기 없어 샌님”으로 불렸다고도 하며 “숙맥”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가슴에 묻은 하얀 손>). 그만하자. 변종호는 작정한 사람처럼 자신의 어둔 그림자를 이번 작품집 여기저기서 내보여주었다. 그가 “더듬거려도 진솔한 말”을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졌다. 그리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나직한 울림”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실상 소심과 이기와 만만함은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한 꺼풀만 들쳐보면 현실적 존재로서의 ‘나’도 ‘고상한 야만인’인 우리 모두에게도 당연히 해당되는 얘기다. 그러나 변종호의 원초적 그림자인 ‘슬픈 어머니’ 얘기는 이제 시작이다. 대못은 이제부터 박히기 시작한다.


4.
   남편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가사와 양육뿐 아니라 농사일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유일한 삶의 목적이자 희망이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자식들의 두 가지 경우만 살펴본다.

 

   햇볕이 내리쬐는 날, 강냉이밭을 매자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도 어깃장을 놓듯 낚싯대를 들고 강으로 내달리던 형들이 생각났다. 의지할 가장도 없는데다 자식마저도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구부정한 허리에 뒷짐을 지고 홀로 비탈진 강냉이밭으로 향하시던 가냘픈 어머니의 뒷모습은 슬프기만 하였다. 

 -<어느 노점상>에서

 

   아무런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온 초췌한 누님의 몰골을 보자 어머니는 금세 주르르 눈물을 흘리셨다. (…) 얼마나 힘겨웠으면 엄동설한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백여 리 눈길을 걸어왔을까. 집을 나서기는 했지만 막상 친정을 향한 발걸음은 천근만근의 무게였으리라.// 퉁퉁 부은 눈으로 친정을 나서던 그날도 함박눈은 그칠 줄 몰랐다. 어머니는 새끼줄로 누나의 신발 가운데를 동여매주며 울고 계셨다. 팔다 남은 옷 보퉁이에 서너 됫박의 양식을 머리에 이고 발자국마다 눈물을 찍던 누님의 모습이 아련하다.

 -<눈 내리던 날의 단상>에서

 

   위의 두 인용문은 작가의 탁월한 묘사로 굳이 해설적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들을 내버려 두고 홀로 비탈진 강냉이밭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밟히듯 선연하다. 특히 함박눈 퍼붓던 날 친정을 찾아온 누님의 모습은 슬픈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우리의 누선을 적신다. “발자국마다 눈물을 찍던 누님의 모습”은 한 편의 서정시다.
   철모르는 아이가 여름날 밭 매는 일 대신 낚시질 가겠다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다. 눈길을 헤쳐야 했던 간난의 삶은 누님 탓도 아니다. 그러나 생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자식들의 이런 모습에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으랴.
   나는 이 글을 쓰며 수없이 작품집 여기저기를 뒤적거리게 된다. 부지불식간에 한 ‘어머니의 생’이라는 서사구조를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은 두 개의 측면을 가진다. 즉 ‘이야기’면서 동시에 ‘담화’다. 어떤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에, 즉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말하므로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책뿐 아니라 영화로도, 목격자의 입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기 때문에 ‘담화’이기도 하다. 담화에 있어서는 진술되는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방식과 메시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평론가들은 ‘담화’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에서 ‘그리고 다음은? and then?’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머니의 뒷얘기가 궁금한 것이다. 서사구조로 보면 팽팽한 플롯을 갖는 이 글은 이제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작가가 어머니 묘소를 찾았을 때 “하얀 머리를 바람에 날리고 있는” 할미꽃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과 오버랩 된다. 어머니에게는 생전에 가르마를 타면 “오십 원짜리 동전만한 상흔”이 있었다. 말벌에 쏘인 자국이다. 오래전 “밭을 매다 말벌에 쏘이는 순간 하늘이 노랗고 정신은 혼미했단다.” 그러나 애비 없는 어린 작가를 두고 죽을 수 없어서 ” 먼 길을 “구르고 기어서” 돌아왔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 “꼭 살아야 한다는 모성애”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벌초하다 말벌에 쏘여 쇼크사 했다는 보도는 자주 접하는 일이다(<어머니와 할미꽃>). 아버지의 사랑은 ‘결핍’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충만’을 넘어선 ‘과잉’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같은 글에서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고달팠던 삶은 순전한 당신의 몫”이고 “자식한테 짐 되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작가는 말한다. 그 “염원이 통하셨는지 병석에 눕지도 않으시고 서둘러 떠나셨다.”고.
   이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 볼 차례다.


5.
  
작가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한결같은 집념이 있었다. 이런 마음은 글의 여기저기에서 산견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도 집장만하고 가정을 꾸릴 생각으로 “봉급의 80%를 저축”하고 “짠돌이를 자처하며” 살았던 것이다(<하수(下手)의 훈계>). 최소한 가난의 고통과 불편함을 겪지 않기 위해 작가부부는 맞벌이를 했고 당연히 양육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짐작하는 대로 희생은 원래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돌봐줘 하는 칠순이 가까웠던 어머니는 당시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셨다. 아파트 5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고통을 당시에는 헤아리지 못했다. 철없고 생각이 짧았던 우리 부부는 용돈을 한 번도 넉넉하게 드린 적이 없었다. 몇 푼 드린다 해도 아이의 군것질과 보따리장수에게 사 입히던 옷값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짐>에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쩔 수 없이”라는 수식어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어머니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운명에 순종하는 한국여인의 전형을 본다. 그래서 답답하고 더 안타까워진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어머니는 아이를 업은 채 자빠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얼굴에 큰 상처까지 입게 된다. “꽁꽁 언 땅에 뒷짐을 지고 앞으로 엎어지셨으니 온전할 수가 없었다.” 뒷짐을 지고 있으니 일어나기나 제대로 될 것인가. 일어나려 애쓰는 할머니의 등에서 “아이는 업힌 채 깔깔대며 웃더라”는 얘기를 듣고 작가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독자들의 가슴도 터질 것 같다.
   “귀엽지만 아이 보기를 힘들어 하시던 어머니”는 이 사고를 당하신 후 한 달이 못돼 이승의 끈을 놓으신다. 여기서도 “힘들어 하시던”이란 수식어가 눈에 띈다. 어머니는 손자가 귀여웠지만 아이보기는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든 노역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때 발을 헛디딘 게 아니라 잠시 뇌경색이 온 것이었다.”
   이제 ‘어머니 이야기’는 죽음의 ‘정점’을 지나 ‘대단원’에 접어든다.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큰 슬픔에 작가는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고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이제 상장의례대로 상을 치러야 한다. 염습이 시작된다.

 

   염습을 하던 염사가 어머니의 양손을 배위로 올려놓았다. 마디가 갈라진 손가락에는 광택을 잃은 구리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생전에 금붙이라곤 몸에 지녀 본 적이 없었던 어머니셨다.

-<구리반지>에서

 

   질곡의 삶 속에서 한 많은 생을 살다가 한 여인이 이렇게 떠나갔다. 금반지도 아니고 구리반지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갔다. 작가는 같은 글에서 20년이 넘도록 반지를 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니 어머니의 구리반지를 생각하면 낄 수가 없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 사십 년이 넘도록 친정 한 번 못 가본 어머니, 그 친정이라는 것도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야 단 두 번 가보셨다고 한다. 작가는 이런 어머니를 그대로 떠나보낸 단장의 슬픔에 소리 없는 통곡으로 절규하고 있다. 독자들의 가슴까지 먹먹하게 하는 슬픈 사모곡을 부르고 있다.


6.
   이번에 상재된 변종호의 ≪섶다리≫를 관통하고 있는 근원적인 막막함과 쓸쓸함은 바로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품집에 나타나는 어머니 삶의 편린片鱗을 몇 가지 더듬어 보았지만 이는 작가만의 아픈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아픔이기도 하다. 글을 읽으며 우리는 함께 안타까웠다. 폭폭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안다. 그가 우리를 폭폭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에 뛰어난 표현력으로 그 진실을 고백했음을 의미한다.
   문학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문학이 인생을 외면할 때 그것이 공염불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자연을 노래하든, 사회를 노래하든, 사랑을 노래하든, 아니 무엇을 노래하든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다. 삶의 체험과 그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생의 구경究竟적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문학은 인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그 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변종호는 바로 어머니의 특별한 삶을 통해 생을 되돌아보는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글이 그의 상처를 덧내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못을 박기로 작정했고 그 못은 우리 모두에게도 박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주말에는 꼭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뵈어야겠다. 변종호의 글은 사람을 이미 바꿔놓고 있다.

 

 

호병탁  ----------------------------------------

   부여 출생. 한국외국어대와 원광대대학원에서 어학‧문학전공(문학박사).  시집: ≪칠산주막≫, 평론집: ≪나비의 궤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