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되면 전반기 강의가 시작된다. 나에게는 두 번째 강의가 되는 셈이다. 벌써 마음은 강의실에 가 있는 듯하다. 하루 빨리 수필 창작 강의를 받아 마음속에 오래 간직했던 아름다운 씨앗들이 터져 나오기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거야 - 김양택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자 한다. 나도 오래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닫혀 있는 문을 열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다. 어쩌면 글 쓸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국어 교사로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다 보니, 정작 글쓰기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이제 세월이 흘러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맞이하게 됐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는 것처럼 퇴임은 나에게 새로운 일을 하라는 경종警鐘이기도 했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글을 쓰고자 마음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교직생활 사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셈이다. 더 늦추면 글 쓸 기회를 놓칠 것만 같은 조바심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아름다운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곰곰이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러던 차에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창작 강의를 개강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기회가 왔다는 들뜬 생각에 용기를 내어 사무실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도 이제 수필 쓰기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첫 강의 시간, 강의실에 들어서니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들이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재빠르게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아 앉았다. 강의 시간이 되자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말쑥하게 옷차림을 한 교수님이 들어와 인사를 하더니, 이내 아기자기한 수필 강의로 분위기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수강생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교수님의 강의에 푹 빠져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 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강의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처지가 뒤바뀐 모습이다. 오랜 시간 앉아 있자니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 온다. 괜히 시계만 자주 만지작거린다.
그 순간 문득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시절이 떠올랐다. 학생들도 수업시간 처음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잘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한 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강의를 듣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 너머 능선을 따라 하얀 눈꽃으로 덮여 있는 한라산이 마치 어머니 품같이 정겹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가까이로 눈을 돌려보니 산딸나무가 보인다. 아직 겨울 추위가 가지 않았는데, 유월에 피는 하얀 꽃이 계절을 잊은 채 서너 송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름답기보다는 가엾어 보인다. 며칠 후엔 혹한이 다시 몰아친다는데…….
나뭇가지에는 까치 한 마리가 추위에 떨며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철을 잃은 하얀 꽃과 마주친다. 그 순간 자연의 섭리에 한계를 느꼈는지 울음을 몇 번 토해 낸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수필 창작 강의도 어느새 육 개월이 지나 끝자락에 와 있다. 그동안 함께했던 수강생들과도 많은 정이 들었다. 몇몇 수강생들은 자신이 쓴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작품 중에는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내용도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 발표하는 수강생들은 여러 학기 수필 창작 강의를 열심히 받아 글쓰기의 기본 틀은 어느 정도 몸에 익힌 사람들이다. 이들에 비하면 초년병인 내가 지금 수필 쓰기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은 아마추어가 프로를 넘보는 격이다.
‘성공은 구십구 퍼센트가 노력이고 일 퍼센트만이 영감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나도 다른 수강생들처럼 열심히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내 마음속에 있던 단상斷想들이 빗장을 열고 소우주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삼월이 되면 전반기 강의가 시작된다. 나에게는 두 번째 강의가 되는 셈이다. 벌써 마음은 강의실에 가 있는 듯하다. 하루 빨리 수필 창작 강의를 받아 마음속에 오래 간직했던 아름다운 씨앗들이 터져 나오기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기에, 나의 간절한 염원인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볼 때 그것은 나의 삶에 물심양면物心兩面의 전진하는 발자취이며, 인생의 축도縮圖가 되리라.
김양택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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