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뒤에 붙여놓은 ‘왕초보 스티커’ 때문에 무시하고 위협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하고, 몹시 불쾌하였다. 1년 전 남편이 운전 면허증을 따면서 1년이 넘도록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20년 동안 차를 몰았던 나도 이 차를 이용할 때면 왕초보로 변신한다."
부끄러운 날 - 고영옥
“아주머니, 뭐하세요? 초보운전자가 그렇게 막 달려도 되는 겁니까? 어서 운전 면허증 내놓으라니까요.”
교통경찰관의 검문에 걸려서 중앙선 침범에 대한 벌금과 벌점을 받았다. 돈도 아깝고 벌점도 부담스러웠다.
일주일 전 퇴근하는 길이었다. 앞뒤 간격을 두면서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빵빵’거리며 재촉하는 차가 갑자기 나타났다. 앞 거울로 보니 1톤 트럭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기사의 모습이 비쳤다. 바쁜 일이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담배 연기를 창밖으로 날리며 안달이다.
브레이크를 밟기도 하고, 비상등을 켜 주면서 위협하지 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친구들이 운전하다가 욕이 저절로 나온다고 했을 때 ‘조금만 양보하면 될 것을 너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타박하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속에서 이상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앞에는 큰 트럭이 무거운 짐을 싣고 힘겹게 가고 있다. 1차로밖에 없는 길에서 추월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던 웬 승용차가 내 차와 트럭을 앞질러 쏜살같이 달렸다. 핸들을 순간적으로 틀다가 웅덩이에 빠질 뻔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유리창 뒤에 붙여놓은 ‘왕초보 스티커’ 때문에 무시하고 위협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하고, 몹시 불쾌하였다. 1년 전 남편이 운전 면허증을 따면서 1년이 넘도록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20년 동안 차를 몰았던 나도 이 차를 이용할 때면 왕초보로 변신한다.
트럭이 앞지르기 전에 순식간에 대형차를 앞질렀다. 얄미웠던 뒤의 차를 보기 좋게 따돌리고 나니 속이 시원하였다. ‘이제 왕초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삐익’ 하는 호루라기 소리에 놀랐다. 교통경찰이 손가락으로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주었다. 줄줄이 따라오던 차들이 나 때문에 액땜이라도 했다는 듯이 유유히 사라져 갔다. 내 차를 위협하던 트럭 기사는 화풀이라도 하듯이 교통경찰과 멀어지는 순간 보이지도 않았다.
이틀 후였다. 서울에 있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대구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모처럼 만난 친척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예매한 기차 시간이 빠듯했다. 한 시간 8분 전 서울역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줄 지어 있다. 5분 전에 표를 사지 않으면 눈앞에서 무효표가 된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한 마음에 남편을 줄 앞쪽으로 들이밀었다. 남편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부담스럽다며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은근슬쩍 줄 틈새로 끼어들었다.
20대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염치없이 밀고 들어오는 나를 훑어보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평소 같으면 이상한 눈초리에 기분이 나빴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돌아보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상그레 웃었다. 며칠 전 트럭 기사는 나보다 더 바빠서 경적을 울리며 양보해 달라고 뒤에서 졸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고집스럽게 자존심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였었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던 밴댕이 속 같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서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뒤에 죽 늘어선 사람들의 눈이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정서불안증에 걸린 사람처럼 마음이 휘청거렸다. 줄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그대로 서세요.”
하는 따뜻한 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줄 서 있던 몇몇 청년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아예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구두창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구두 뒤꿈치만 애꿎게 땅바닥에 비볐다.
고영옥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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