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말은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 그런데도 말하는 기술을 중요시 여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내용물보다 포장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과 글을 무기 삼아 살아가는 나 역시 그럴 듯한 말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는 않았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을 아끼기는 훨씬 어려워지는 듯하다. 어떤 말이든 쉽게 쏟아놓고 돌아서면 이유없이 허탈하고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고독한지 모른다."
침묵沈黙 - 조 낭 희
홀로 차를 마시거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캠퍼스를 거니는 사람을 유독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무엇이 그 사람을 사색케 만드는지 궁금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자의 고독은 참으로 건강해 보였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지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면서 조촐한 즐거움을 누렸다. 가끔씩은 지극히 철학적인 단어를 떠올리며 단절된 그만의 세계에 초대받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놀려댔다. 내면의 깊이는 고사하고 무미건조하거나 성격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경계하라는 충고의 말까지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 버릇은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 무조건 후한 점수부터 주고 본다. 게다가 언행이 굼떠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 재치있는 사람보다 훨씬 인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의도적이지 않은 어눌한 말씨는 세속적이지 않아서 좋다. 오히려 못 다한 말 뒤에 감추어져 있는 세계가 더 없이 넓고 신비스럽다. 침묵 안에 숨겨진 언어를 찾아내는 일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서점 앞에서 호떡을 굽는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 절제된 언어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녀는 언어장애자였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 속에서 왜 하필이면 호떡이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포장마차 앞에 멈춰선 나를 보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이미 구워져 있는 호떡이 따뜻한지 묻는 나에게 애교스런 몸짓으로 자기의 장애를 알렸다. 그리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반죽을 떼어내더니 호떡을 굽기 시작했다.
“얼마쯤 기다려야 될까요?”
그녀가 언어장애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무심코 뱉었다. 대답이 없다. 그녀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호떡을 굽는 데 열중이다. 내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입술을 빠져 나온 말은 방향을 잃은 채 비틀거리다 뜨거운 팬 위로 무기력하게 떨어졌다. 머쓱해진 나와 달리 그녀의 표정은 무심할 정도로 맑다. 한때는 그녀를 좌절시켰을지도 모를 언어가 지금은 침묵 앞에서 빛을 잃고 만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부끄럽다.
아무래도 갓 구운 호떡을 먹기에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구워 놓은 것을 포장해서 달라고 그녀처럼 손짓으로 이야기했다.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나의 특별한 언어였다. 그녀가 또 다시 웃으며 눈빛으로 아쉬워했다. 표정과 손짓, 게다가 미소까지 섞어 갓 구운 걸 주고 싶다고 했다. 호떡보다 달콤한 그녀의 몸짓언어. 둘의 대화는 완벽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신선하고 따뜻했다. 혹시 우리는 동문서답하며 미소를 주고받은 건 아닐까. 그러면 어떠랴. 품위와 예의를 갖춘 말조차도 함부로 믿지 못하는 현실에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말은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 그런데도 말하는 기술을 중요시 여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내용물보다 포장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과 글을 무기 삼아 살아가는 나 역시 그럴 듯한 말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는 않았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을 아끼기는 훨씬 어려워지는 듯하다. 어떤 말이든 쉽게 쏟아놓고 돌아서면 이유없이 허탈하고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고독한지 모른다.
토론하기를 즐기던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사색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악처인 크산티페의 잔소리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다. 신이나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는 그의 살아있는 언어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은 변했다. 절제된 말과 풍성한 마음만으로 서로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가 못하다. 누군가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처세술도 없을 게다. 드러나지 않은 것보다 가시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말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다면 좋겠다.
수없이 쏟아지는 공허한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침묵의 세계를 꿈꾼다. 침묵은 깊고 강인하기에 지금도 내 삶의 전부를 맡기고 싶을 만큼 흠모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워 담지도 못할 말들을 습관처럼 흘리고 다닌다.
오늘도 호떡집 여인이 생각난다. 말의 홍수 속에서 숱하게 느끼던 현기증 때문에 그녀가 그리운 걸까. 말을 많이 한 날에는 간단한 수화 몇 개라도 익혀서 찾아 가고 싶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빛을 발하는 참다운 언어를 배워 오리라. 말보다 눈빛과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어쩌면 그녀는 구업口業을 짓지 않아도 되니 나보다 훨씬 행복할지 모른다.
조낭희 -----------------------------------------
경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수필과비평≫ 등단, 푸른방송, 산업정보대학, 육군 삼사관 학교에서 글쓰기 강사 역임, 한국 문인협회, 한국 수필가 협회, 대구 문인협회 회원. 영남수필 회원. 수필집: ≪그리운 자작나무≫.
작가메모
지금까지 글을 써 오면서 대표작이라 내세울 만큼 좋은 작품이 없어 부끄럽다. 고민 끝에 <침묵>을 골랐다. 그때의 기억을 들춰내노라면 좀 더 겸손해지는 내 목소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떡 굽는 여인과의 만남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환영처럼 살아남아 팍팍하고 나른한 일상에 윤기를 더해 주거나 의미심장하게 영혼을 깨우기도 한다.
말은 나를 알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본질을 찾아가는 데 가끔씩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장황한 말보다 따뜻한 눈빛이나 덥석 잡아주는 두 손이 훨씬 감동적일 때가 많다. 제대로 된 침묵의 세계는 아주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다. 그 경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를 살피고 진리를 찾고자 하지만 참으로 쉽지 않다.
많은 말을 쏟고나면 어김없이 상실감에 휩싸인다. 그런데도 호떡집 여인은 늘 멀리 있거나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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