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던 나그네가 제집 뜰에 핀 매화나무에서 봄을 보듯이 나 역시도 생사를 놓고 헤매돌다가 고희를 넘긴 이제서야 내 몸 가운데의 태극을 본다. 생사生死란 음양의 순환이요, 자연의 변화에 다름 아닌 것을. 그래서 장자는 아내의 시신 앞에서 울음을 그쳤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던 것이리라. ‘오직 나와 저 해골만이 알고 있다. 일찍이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것을―’"
복復의 말씀 - 맹난자
보라는 봄인가.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어린 생명, 경이롭고 은혜롭다.
천한지동의 동짓달, 비록 땅 위의 샘물이 얼지만, 땅속[坤]에서 움터[震] 나오는 하나의 기운, 이것을 기호로 형상한 사람은 중국의 임금인 복희씨였다. 위는 땅[地]이요, 아래는 우레[雷]인 괘상으로 땅속에서 시생始生한 하나의 양陽이 오음五陰을 뚫고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다시 회복한다는 ‘복復’의 뜻을 담고 있는 지뢰복地雷復괘로 주역의 스물네 번째 괘이다.
동지冬至달 밤은 가장 길다. 그러나 극점極點을 마크한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이날을 기점으로 밤의 길이는 줄어들고 대신 낮의 길이가 늘어난다. 낮이 가장 긴 때가 하지夏至이다.
음(밤)이 극점에 달하면 양(낮)으로 바뀌는데 이것을 ‘변變’이라 하고, 낮(양)이 극점에 달하면 밤(음)으로 바뀌는데 이것을 ‘화化’라고 한다. 주야晝夜의 반복 교대交代, 이 변화가 바로 천도天道의 운행방식이다.
지일至日이란 하지와 동지를 말한다. 하지는 5(午)월괘로 천풍구天風姤에 해당하고 동지는 11(子)월괘로 지뢰복괘에 해당한다. 구姤와 복復은 자오子午선으로 지구의 중심축을 이룬다. 비로소 동지에 하늘, 땅이 처음으로 회선回旋을 시작하고 음과 양이 변화를 시작한다. 이에 ≪주역≫ 단전은 말한다.
“복復괘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復其見天地之心乎).”
동지에서 시생始生한 일양一陽은 입춘과 입하를 거쳐 소만小滿에서 양의 기운이 꽉 차게[乾]되고, 하지에서 시생한 일음一 陰은 입추, 입동을 거쳐 소설小雪에서 음의 기운이 극성極盛하게[坤] 된다.
음양으로 보면 지뢰복이 양의 시始이고, 건이 양의 종終이며 천풍구가 음의 시始이고, 곤이 음의 종終이다. 계절로는 봄이 시始, 겨울이 종終이며 겨울이 다하면 봄이 오나니,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 이치가 그것과 다르지 아니하다.
역易에서 양이 시작해서 종終하게 되면 양은 사라지고 음이 시작된다. 음이 시작해서 종終하게 되면 음은 사라지고 양이 시작된다. 이러한 음양소식消息의 이치를 앎으로써 사람이 생生하면 사死하는 생사거래生死去來의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이니 “시始를 근원하여 종終을 돌이키면 생사를 안다.”라고 말씀하신 공자의 원시반종原始反終이 그것이라고 하겠다.
밤과 낮, 그 ‘주야晝夜의 도’를 통해서 생사의 이치를 안다는 것은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도를 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라는 가을인가.
나는 매양 나목에서 푸른 잎을 떠올리고 봄에는 가을을 생각한다.
가되 어디로 가는가?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한때 ‘만법귀일萬法歸一’을 붙들고 ‘일귀하처一歸何處’를 화두로 삼은 적도 있었다. 야부冶父선사의 말씀처럼 천지天地에 앞서도 그 시작이 없고 천지의 뒤에 하나 그 마침이 없는 한 물건. 하나로 시작해도 그 하나가 없고, 하나로 마쳐도 마친 그 하나가 없는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의 태극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주역에서 보면 태극으로 하나가 둘을 낳는 것은 태극이 음과 양을 낳는 것과 같다. 우주 만물은 태극과 음양기운을 근원으로 하여 나온다. 만물은 태극의 씨앗을 받아 생명활동이 있게 되고 소멸되어서는 본래의 태극으로 돌아가나니 이것이 만법귀일이 아닌가. 모든 사물은 반드시 극처極處에 달하면 원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종시終始가 없는 일물一物, 그 하나는 본래의 태극으로 돌아가나니 “간다간다 하지만 본래 그 자리요. 이르렀다 이르렀다 하지만 떠난 그 자리네(行行本處 至至發處).”라고 의상스님은 이렇게 원시반종과 생사불이生死不二의 도리를 설파하셨다.
“한평생을 돌고돌아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았네. 본래 그 자리, 그것은 천지天地 이전以前에 있었네.”
월산스님의 임종게도 여기에서 다르지 않다. 천지 이전에 있었던 한 물건. 그것은 태극이며 성품性品이며 이치理致이며 도道가 아닐까.
봄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던 나그네가 제집 뜰에 핀 매화나무에서 봄을 보듯이 나 역시도 생사를 놓고 헤매돌다가 고희를 넘긴 이제서야 내 몸 가운데의 태극을 본다.
생사生死란 음양의 순환이요, 자연의 변화에 다름 아닌 것을.
그래서 장자는 아내의 시신 앞에서 울음을 그쳤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던 것이리라.
‘오직 나와 저 해골만이 알고 있다.
일찍이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것을―’
눈부신 생명 앞에서 나는 지뢰복괘의 말씀, ‘종즉유시終則有始’의 깊은 뜻을 되새긴다.
맹난자 ---------------------------------------------
≪에세이문학≫ 발행인,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 역임, 수필집: ≪빈 배에 가득한 달빛≫, ≪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기억하라≫, ≪라데팡스의 불빛≫,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전2권) 외 다수. 현대수필문학상, 남촌문학상, 정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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