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음식만을 파는 일이 아니다. 손님과 나는 음식을 매개로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의 선택에 의해서 맺어진 인연이지만 허투루 할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으로 시작했던 관계라도 끝은 알 수 없듯, 경계하고 부정적인 첫 만남이었지만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인연을 위하여 - 김연분
“미역국 있어요?”
며칠 전 미역국과 함께 김치를 사 가신 손님이 웃으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참 맛있게 먹었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무염에 가까운 식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사 먹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는데, 우리 가게 음식들은 저염식이라 식성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분이 방문하실 때면 가끔씩 손님들이 몰리는 경우도 있다. 성격마저 꼼꼼한 편이 못 되는 나는 실수도 한다. 반찬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포장도 서툴고 거스름돈을 더 많이 드린 적도 있다. 하루는 장어탕에 넣을 산초가루를 빼고 포장해 드렸다가 잠시 후 그 사실을 알고 상가 안을 뛰어다니며 손님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이렇듯 엉성한 내가 못미더울 만도 하실 텐데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게를 찾아주신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낯빛이 어두워 보인다. 진열장을 꼼꼼히 둘러보시며 위가 아픈데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물어보신다. 병원은 다녀오셨는지 여쭙고, 시래깃국에 우엉과 연근을 추천했다. 빨리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전송했다.
이삼 일 후 미소를 지으시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다. 덕분에 위가 많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날 차를 도로 가에 세워뒀는데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벌금을 내게 생겼다며, 오늘은 상가주차장에 주차하고 오셨다 한다. 그 목소리에는 노여움이나 안타까움이 묻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싱긋 웃어 보이며 진열장으로 시선을 옮기신다.
늘 이렇듯 호의적인 손님만 가게를 방문하지는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있다. 들어왔다가 쓱 둘러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나가는 손님이라도 꼭 인사는 한다.
모든 손님들의 입맛을 맞추기는 힘들다. 보편적인 입맛과 요구사항은 자주 방문하시는 손님들과의 대화나 건의사항을 말씀하시는 손님을 통해서 개선시킬 것들이 있다면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미역국이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요즘 한 끼 식사에 오륙천 원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엷은 미소로 응대한다. 가게를 처음 방문한 손님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반찬값을 물어보고 들었던 것을 내려놓거나, 양이 적다는 말씀을 하시는 손님은 있었지만 계산대 앞에서 두 번씩이나 굳은 표정으로 말씀하신 분은 처음이다. 밑반찬 두어 가지를 사 가시는 그분의 뒷모습이라도 불러 세워 ‘믿고 드셔 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매일 그 손님을 기다렸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염려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 무렵 그분이 다시 오셨다. 모자를 쓰고, 그날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반찬 몇 가지를 고르고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내심 반가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침착하게 계산을 하고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만 했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 가게에 오신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많이 사셨다. 계산대 앞에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서 계신다. 예순은 됐을 것 같은 외모에 숱이 많아 보여, 머리숱이 많으시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모자를 쓰셨을 때는 몰랐다고 덧붙이자, 반색을 하며 둘 중 어떤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지 물어보신다. 그렇게 시작된 담소가 명절 연휴는 언제까지냐고 물으시고는, 그동안 우리는 뭘 먹고 사냐며 미간을 찌푸리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남겨 놓고 가게를 나가신다.
하루에 삼십에서 사십 명의 손님들이 가게를 들른다. 처음 오는 분들도, 가끔씩 들르는 분들도, 단골손님도 계신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저염식에 매일매일 반찬이 바뀐다는 입소문이 나서 전단지 한번 돌리지 않고도, 손님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반찬가게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고, 어려움이 많다. 열한 평 안에서 열두 시간 넘게 보낸다. 그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나온다.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음식만을 파는 일이 아니다. 손님과 나는 음식을 매개로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의 선택에 의해서 맺어진 인연이지만 허투루 할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으로 시작했던 관계라도 끝은 알 수 없듯, 경계하고 부정적인 첫 만남이었지만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얼굴이 가물거리는 사람도 있고, 이름을 잊었거나 기억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결국 소중한 인연의 경중을 말함에 있어, 그 사람과 내가 얼마나 친밀한지 친밀도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친밀했던 이들과 나눈 교감은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모래나 자갈, 물과 바람 같은 사연이 숨 쉬고 있다. 그 사연을 만들어가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하루가 너무 짧다.
김연분 ------------------------------------------------
부산 출생, ≪수필과비평≫ 등단, 계룡수필문학회 · 수필과비평작가회의 ·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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