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을 버리는 것이 욕심을 버리는 것이란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비우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비우는 삶을 산단다. 아침운동을 하고 참선으로 수행하며 깨달음을 찾으며 죽음 따라 가겠다고 한다."
조 선생 - 신노우
새벽운동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 조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평소에도 약간은 엉뚱한 면이 있긴 했다. 그날도 운동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건강원을 운영하는 배 사장에게 뜬금없이 작두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했다. 늘 약초를 썰어야 하므로 배 사장으로서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작두를 하나 줄 테니 내일은 새벽운동에 꼭 나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조 선생님을 만난 것은 9년여 전이다. 내가 사는 인근에 우레탄 트랙과 인조잔디구장이 잘 조성되어 있는 초등학교로 새벽운동을 나갔다가 만났다. 자그마한 체구에 등이 약간 굽은 모습이었다. 유난히 눈빛이 반짝이고 꼬장꼬장한 성품을 지닌 전형적인 교육자 출신이었다. 걷기 운동을 마치고 철봉에 매달려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흔 나이에 천으로 만든 두꺼운 끈을 철봉과 손목에 감더니 360도를 자유자재로 빙빙 돌았다. 턱걸이 한 번을 하려 해도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안간힘을 쓰는 나로서는 부럽고 부끄러웠다.
안동이 고향인 조 선생님은 혈기 왕성할 때 농촌계몽운동을 배경으로 한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감명을 크게 받았단다. 그 실천으로 배우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학교가 공립학교로 자리를 잡으면서 교사 자격이 없었던 조 선생님은 그만 손을 떼야 했다. 내 손으로 하나하나 힘들게 만들고 꾸린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실감에 몇 날을 술로 허우적대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추슬러 꼭 교사가 되리라는 일념으로 교사 자격고시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교사가 되어 40여 년을 후학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농촌을 잘살게 하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 후배들은 조 선생님을 선각자라고 부르며 따랐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열정을 쏟다보니 교장이 되었고 어느새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자녀들도 모두 반듯한 사회인으로 키웠다. 딸 둘은 한의사, 국세청 공무원이며, 아들 둘은 육사를 나와 중령으로 근무하고 있고 막내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거래소에 근무한다.
퇴직 후에는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는 둘째 딸네 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때맞추어 출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퇴임하고도 자유로운 시간을 갖지 못하고 외손자 양육에 매달렸다.
아기 키우는 일은 예순 중반을 넘긴 부부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아기들을 보육원에 맡길 즈음에 조 선생님은 암 수술을 받고 3년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부인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본래 살던 대구로 내려 왔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인지 허리가 굽어졌다.
대구에 내려와서도 혈육사랑은 계속되었다. 요즘도 작은딸네 집에 매일 출근을 한다. 하루 일과가 새벽운동을 하고 낮에 불교대학을 갔다가 외손자·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공부를 가르치러 그곳으로 간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건강하게 해줘서, 걱정을 없게 해서 고맙다.’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예불을 올린다. 큰 부처님 앞에 서서는 ‘일체 중생을 행복하게 해 달라, 대한민국의 안정과 번영을 빈다.’고 한다. 새벽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매일 108배를 하기 위해서란다.
조 선생님은 남과 나를 똑같이 생각한다.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승용차의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났다. 자전거와 사람이 차량 밑으로 깔리는 사고였다. 급히 사고차량의 여성운전자가 조 선생님을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접수를 하고 30분을 기다려도 아직 차례가 멀었다. 조 선생님이 이제 정신도 들고 몸도 괜찮은 것 같으니 그냥 가자고 하였다. 여성운전자가 진료는 꼭 받고 가야 한다고 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병원에서 나오던 조 선생님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 진료를 받지 않았으니 접수비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운으로 내가 다쳤고, 당신 사고 났을 때 보니까 손을 덜덜 떨던데 걱정 말고 집으로 가서 쉬라고 했다. 늘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삶을 살아 왔다.
물욕을 버리는 것이 욕심을 버리는 것이란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비우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비우는 삶을 산단다. 아침운동을 하고 참선으로 수행하며 깨달음을 찾으며 죽음 따라 가겠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집안에 있는 물건 중에 지금 쓰고 있지 않는 것을 정리하고 있다고 하였다. 제일 먼저 책부터 정리했단다. 예전에 큰 마음 먹고 장만했지만 한번도 쓰지 않은 비싼 그릇세트 버리는 일을 두고 부부가 언쟁을 하였단다. 아내는 남의 것을 누가 쓰겠느냐며 그냥 쓰레기 봉지에 넣어서 버리자고 했다. 조 선생님은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으니 아파트 내에 설치된 재활용 상자에 갖다 놓자고 하였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조 선생님 생각대로 재활용 상자에 담아 두었단다. 이튿날 궁금증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빈 상자만 남았더란다.
그렇게 집안 살림을 정리하다가 한의사인 딸이 사준 작두가 눈에 띄었다. 작두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을 떠올린 사람이 건강원을 운영하는 배 사장이었다. 몇 번 쓰지 않은 새것이었다. 이튿날 운동하러 나오면서 작두를 메고 왔다.
왜, 그렇게 미리 살림살이를 정리하는냐고 여쭈었다. 이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자식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고 가고 싶단다. 여든이 다된 나이에 철봉에 매달려 다람쥐처럼 운동하는 것을 보면 백수는 누릴 것 같다.
살면서 정이 들고 삶의 때가 묻어 추억을 간직한 내 물건 내 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해 가는 실천이 존경스럽다.
지금까지 남의 도움으로 살았기에 아프리카 기아 돕기(BUD)에도 2구좌를 들었단다. 시신 기증 카드를 보여 주며 마지막 자신의 몸까지 의술을 배우는 의대생들을 위해 기꺼이 부부가 함께 기증하고 간다며 가볍게 말을 했다.
두 분은 늘 함께 새벽운동을 나온다. 운동장을 돌다가 부부가 마주치면 어디서 많이 뵌 분이네요,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오늘은 또 어떤 지난 삶을 정리하고 계실까?
신노우 ---------------------------------------------
≪수필과비평≫ 수필 등단, ≪해동문학≫ 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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