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머니 가게를 틈새 시장이라고 불러본다. 큰 것이 자리할 수 없는 곳에 작은 것이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한 곳이다. 틈새는 좁고 빈약해 보이지만, 생명력이 강하다. 보도블록 사이에 비집고 피어나는 도시의 민들레 같다."
민들레 - 서순옥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찻길이 아닌, 사람들이 드나드는 골목길이 있다. 그 길은 길게 휘어진 오래된 나무들의 그늘이 있어 걷기에도 좋고 기분도 상큼하게 해 준다. 그 길을 따라 큰길로 나오면 바로 상가로 이어진다.
상가 앞 틈새에 야채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라고 이름 붙여주기에 민망한 노점상이다. 유원지나 절 입구에서 장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아주머니는 사계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좌판도 없이 땅바닥에 물건들을 내려놓고 장사를 한다. 주인이 앉을 자리에 그늘막과 바람막이가 전부다.
주위에 백화점, 대형마트, 재래시장도 있지만 그곳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댄다. 어쩌다 늦게 들러보면 사고 싶은 채소들이 다 팔리고 없다. 그래서 매일매일 야채들이 싱싱하다.
나도 가끔씩 그곳을 이용한다. 그곳에 가면 아날로그 감성이 되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철 따라 나오는 나물들을 맛볼 수 있고 무, 배추 심지어 콩나물, 두부까지 판다. 아주머니는 물건을 사가라고 사람을 불러 세우지도 않는다. 주변 아파트 사람들이 단골이다.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고 말수도 없고, 바쁘지도 않고 느긋하다.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봉지 봉지 담아놓고 파니 계산도 쉽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대형 마트의 일 그램의 오차도 없는 비정한 저울눈금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정과 덤 때문이다. 깎아달라 더 달라 요구하지 않는데도 아주머니는 값을 내려 받기도 하고 슬그머니 한 봉지를 밀어 넣어 주기도 한다.
아주머니는 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가지고 간 현금이 부족하거나 빈 손으로 갔을 때, 두말 않고 다음에 주겠거니 하고 보낸다. 마트나 백화점에서는 신분증이라도 맡기면 가능할는지도 모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끔 지하철을 타다 보면 지하도에서 강원도 땅속에서 나는 더덕 냄새가 진동할 때가 있다. 입구 쪽 좁은 틈새에서 더덕 껍질을 부지런히 벗기고 있는 노인을 본다. 더덕 향이 진하여 한 무더기를 사 올 때도 있다. 틈새는 결코 화려할 수가 없고 애처롭고 끈질기다.
나는 아주머니 가게를 틈새 시장이라고 불러본다. 큰 것이 자리할 수 없는 곳에 작은 것이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한 곳이다. 틈새는 좁고 빈약해 보이지만, 생명력이 강하다. 보도블록 사이에 비집고 피어나는 도시의 민들레 같다.
서순옥 -----------------------------------
≪수필과비평≫ 등단.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세상 마주보기] 내 꿈은 오늘도 새벽을 달린다 - 이선화(파인) (0) | 2013.03.20 |
|---|---|
| [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세상마주보기] 조 선생 - 신노우 (0) | 2013.03.20 |
| [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세상마주보기] 맨발 - 김희자 (0) | 2013.03.19 |
| [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세상마주보기] 팔자소관 - 김재환 (0) | 2013.03.19 |
| [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세상마주보기] 가시로 힘을 주시나요 - 권신자 (0) | 2013.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