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가끔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셔서는 한숨을 내쉬며 활기를 되찾으시고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시던, 안쓰러우신 어머니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의 내 상태를 자식들이 모를까봐 늙은 티를 내며 사사스럽게 엄살을 떨고 있어요."
가시로 힘을 주시나요 - 권신자
일을 잘하시는군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가시’로 여기저기 찔러보셨는지 다 아시지요. 따끔한 맛에 퍼뜩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계산이 맞아떨어지셨군요. 그 때문에 조금씩 철이 들어가긴 합니다. 이번에는 또 뭐예요. 가장 약점인 눈입니까. 눈은 좀 가만 둬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그런데도 이러실 수밖에 없다면 제가 어떤 투정을 부리라고요.
눈을 살핀 의사는 백내장수술과 노안을 교정했지요. 잘 아시지만, 가살스러운 제게 임플란트를 할 때도 그랬듯이 또 까탈이 붙는군요. 남들은 각막수술만으로 훤히 잘 보인다는데, 저는 4,5개월 남짓이나 고생을 하면서 사삭스러운 자신을 보게 하시는군요.
수술하기 전, 나의 일상을 들어본 의사는 책읽기와 글쓰기 위주의 가까운 거리가 잘 보이도록 시술했지요. 예전 20대 중반에 내 고집을 꺾느라고 어머니가 때리신 매로 상한 왼쪽 눈의 망막상흔 때문에 의사는 오른쪽 눈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양쪽 눈을 다 수술하니 바로 앞은 잘 보였지만, 2, 3미터만 떨어지면 흐릿하여 안 보이는 것이 탈이었지요. 그 후 2, 3개월 동안 회복을 기다리다가 다시 레이저로 오른 눈 각막을 깎아냈어요. 이제 먼 거리가 아니고는 웬만큼 보이는데, 바짝 눈앞은 흐린 상像이 겹쳐져 보이니 컴퓨터나 책을 읽으려면 부득이 돋보기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되는군요. 차츰 나아질 거라며 손을 잡아주는 의사의 위로 말에 우울하던 마음이 풀렸어요. 말 한마디에 심사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참 한심스럽군요. 한 달 후에 다시 오라 하니 눈에 약을 넣으며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눈이 밝아야 온몸이 밝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나름대로 잽싸게 돌아간다고 믿었던 두뇌가 둔해진 것이 틀림없네요. 잘 보이지를 않으니 자연히 판단도 더뎌지는군요. 한참을 따지며 생각해보고 추측해야 한다니까요. 모양새보다 그것이 주는 느낌을 중시하게도 됩니다. 나중에 후회도 하게 되니, 이렇다 저렇다 판가름을 하던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어요. 쉽게 판단하고 결정을 하던 용기가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괜한 자신감으로 잘난 척 뽐내며 살아온 지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벌써 금년도 다 가는 12월이군요. 새해에 제가 일흔 살이 됩니다. 전에는 일흔이 어느 정도의 나이인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스물에 나를 낳으신 어머니가 내게는 젊은 시절만 기억되는, 강단지시던 분이 일흔에 돌아가셨으니 감이 올 리가 없지요. 노인들을 보면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늙으셨다는 것은 실감하지 못했어요. 나를 보면, 젊어서는 나이 듦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 알겠군요.
어머니는 아들이 둘이나 있어서 손주들 학교 때문에 읍내에 살면서 자주 뵈러 가긴 했겠지만, 외진 야산의 아버지 묘소와 동그마니 남은 목장 집을 비워놓지 못해 홀로 지키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가 되고 보니 허리와 팔, 다리, 어깨, 눈, 귀 그리고 이빨, 어디 하나 성한 데 없이 허물어지는군요. 남편과 자식들이 곁에 있는데도 마음이 적적하다는 것을 알고서야 겨우 자식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이 이해가 되는군요. 전혀 내색이 없으시던 어머니께 철이 없어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지 싶습니다. 어머니가 가끔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셔서는 한숨을 내쉬며 활기를 되찾으시고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시던, 안쓰러우신 어머니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의 내 상태를 자식들이 모를까봐 늙은 티를 내며 사사스럽게 엄살을 떨고 있어요.
깜냥으로는 이런 몸이라도 떠날 때까지 잘 지탱하려고 운동을 하며 삐어져 나온 척추물렁뼈에 침을 맞고, 근육과 신경을 자극하는 물리치료도 받고, 장기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적게 먹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느라 채식을 하기도 하고, 둘째딸이 사준 영양제를 아침저녁으로 챙겨먹는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면서 자꾸만 몸을 찔러대는 ‘가시’와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낡아빠진 몸뚱이라 만만한가 보지. 어림도 없어. 이 정도에 나가떨어질 줄 아나?” 하고 응수합니다. 벌떡 일어설 수 있도록 당신이 힘을 주시니까요.
몇 년 동안 줄곧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먹느라고 살림에 손을 놓았던 내가 둘째 아들을 분가시키고는 끼니때마다 적은 양의 식사지만 영양가를 따져서 상을 차리는 즐거움이라니, 자식들이 어릴 때 영양보충에 신경을 쓴 이후 다시 얻은 큰 보람이어요. 스스로 얼마나 기특한지 내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혈압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늘 편찮은 허리여서 앉을 때는 곧추세우느라 정신을 가다듬고 똑바른 자세로 걸으려고 애를 쓰고, 잠잘 때도 오른쪽 왼쪽으로 고루 돌아누워 가면서 버티려고 애를 썼지요.
대충대충 살던 생활방식을 바꾸어 집안뿐 아니라 마음 깊숙이까지 손길이 가고, 한집에서 살아가는 가축들 그리고 화분들의 생명에까지 눈이 가서 정성스레 돌보는 기쁨에 둔한 몸을 날래게 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는 즐거움을 찾는 것도 쉬워졌어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의 풀 한 포기도 마음으로 보고 또 대화를 나누는 요즘이고 보니 자식들 키울 때의 마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모두가 소중한 생명들이니까요.
제게 ‘가시’들을 주지 않으셨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주제를 모르고 마음대로 살았겠지요. 핑계 댈 것 없이 행한 대로 받는 것은 인간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내 몸에 행한 것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군요. 지으신 만물의 주인이 당신인 것을, 몸을 내 것인 양 건강 이치에 맞지 않게 멋대로 부려먹은 탓이지요. 균형 있는 영양보충과 수면시간이라든가, 운동이나 스트레스라든지, 정서활동에 마음을 잘 쓰지 못했으니까요.
정신을 차리라고 지금까지 경고해주신 덕분에 유지할 수 있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알려주세요. 몸뿐 아니라 의식 밑바닥에 깔린 숨은 것까지도 유심히 챙겨야겠습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 제 손을 놓지 말아주세요. 가족들과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도 잊지 마시고 도와주셔요!”
권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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