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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위험한 방법 - 이동이

신아미디어 2013. 3. 17. 21:03

"장기요양인정 등급을 받기 위해 아버님은 가급적 초췌한 모습으로 정신없는 노인 역할을 하는 중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들의 질문에 턱없는 말을 하려니 쉽지 않으신 게다. 될수록 모른다는 말을 번복하지만 오랜 세월 지켜온 자존심이 손상되는 기분이 얼마나 씁쓸하실까. 아버님의 그 눈빛을 보자 내 편리를 위해 괜한 일을 시도한 게 아닌가 싶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위험한 방법  -  이동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계속되는 질문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아버님은 멀뚱히 그들을 쳐다본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이름 석 자. 그 이름을 입 속에 가두려고 천장을 보며 딴청을 부린다. 방금 전까지 지금은 어떤 계절이냐, 대청에 앉은 저 사람은 누구냐, 화장실은 어떻게 가느냐는 여러 질문에도 아버님은 엉뚱한 말을 웅얼거렸다. 틀니까지 빼놓았으니 말투조차도 어눌하였다.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아버님의 행동과 눈빛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겨우 추스르는 불편한 팔과 다리를 들어 올려보며 거동상태를 재차 확인하려 했다.
   그들의 예리한 심사로 긴장감이 계속되자 내 입이 바짝바짝 탔다. 은근슬쩍 아버님 손등께로 내 손을 올리고는 검지로 꾹 눌렀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시라는 간곡한 신호였다. 그때 나를 향해 배시시 웃는 아버님, 그 웃음은 차라리 허망한 슬픔이었다.
   장기요양인정 등급을 받기 위해 아버님은 가급적 초췌한 모습으로 정신없는 노인 역할을 하는 중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들의 질문에 턱없는 말을 하려니 쉽지 않으신 게다. 될수록 모른다는 말을 번복하지만 오랜 세월 지켜온 자존심이 손상되는 기분이 얼마나 씁쓸하실까. 아버님의 그 눈빛을 보자 내 편리를 위해 괜한 일을 시도한 게 아닌가 싶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쩌다 한 번씩은 그랬다. 한밤중에 일어나 큰방 창문 턱을 넘으며 화장실을 찾았고. 수저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얼른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다. 그럴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몇 해 전에는 자전거가 차에 부딪히면서 크게 부상을 입었다. 그 일로 뇌수술까지 한 터라 뜬금없는 말들은 당혹스러웠다. 혹시나 치매의 시초인가 싶어 아버님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기력이 쇠하여 잠시잠깐 일어나는 현상이려니 생각하고 몸을 보하는 음식을 장만하는 데 마음을 쏟았다.
   그렇게 즐겨 타던 자전거도 무심히 내팽겨졌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바퀴도 거미줄에 걸려 맥없이 섰다. 빨랫줄을 받쳐주는 바지랑대보다 더 힘없는 아버님의 다리였지만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을 받는 곳은 노인병원이었다. 그곳은 쑤시고 결리는 부위를 완화시켜주는 물리치료도 할 수 있고, 한마디 말로도 서로 소통되는 어깨동갑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다녀온 날이면 한결 기분이 좋아보였다.
   출근시간을 삼십 분 앞당겨 노인병원에 모셔다 드린 지 한 달여 되던 날, 이웃에서 귀띔을 해 주었다. 건강보험공단에 신청서를 내고 3등급이라도 받으면 통원차량 혜택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문제였다. 여든을 넘기고 걷기에 불편을 겪는 노인이라도 인지능력에 문제 없다면 등급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물론 위중한 노인이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고령인 노인의 건강상태를 참작해 주지 않는 건강보험공단의 규정이 야속했다.
   문득 아침마다 서두르는 불편한 일들이 앞다투어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 일을 감내해야 할지 뚜렷한 답도 없는 상황이다. 등급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이미 들어 알지만 아버님은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잠깐의 연기로 누릴 수 있는 일 년간의 편리함과 혜택의 당위성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을 했다. 그래도 묵묵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버님께 사정사정을 하여 결국 신청서를 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진단의 한 과정이려니 싶지만 다정하게 어깨를 주무르며 아버님의 건강을 염려한다. 그들의 살가운 말에 경직된 얼굴이 서서히 풀리는 듯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울컥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참 몹쓸 짓을 하였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치매를, 입에 담기조차 싫은 그 질병을 아버님께 종용한 것이 아닌가. 정상인데도 비정상인 행동과 말을 해야만 하는, 그 난처하고 기가 막히는 심정을 내가 어찌 가늠이나 하겠는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연명할 거란 장담도 못하는데 사지 멀쩡한 내가 잠깐의 불편함을 참지 못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버님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흐뭇한 표정이다. 그들이 재차 이름을 묻는다. 차라리 이쯤에서 참고 있던 말, 무너진 자존심 다시 세우며 당당히 외쳤으면 좋겠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천장을 보며 입 속에 가두었던 그 권위 있는 이름
    “내 이름은 〇〇〇이요.”
   비로소 또렷하게 외쳤다. 그 후 그들과의 대화로 인지능력이 정상임을 확실히 드러내 보였다.
   그런데 참 야릇하다.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면서도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까.

 

 

이동이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바람개비의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