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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현대수필가 100인선 엿보기] 나루터 가는 길 - 엄정식

신아미디어 2012. 1. 15. 14:27

   나는 평소에 이 세상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어왔다. 하
나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을 잘 보기 위하여 우리는
안경을 쓰기도 하고 전문가들은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하기도 한
다. 아마 과학은 이러한 세상을 더 잘 보아내기 위하여 형성된 지식의
체계일 것이다. 천문학이나 물리학, 화학이나 생물학에서 그 좋은 예
를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이
러한 장치를 가지고서는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을 볼 수는 없다. 상
상과 의미의 세계는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가령 별들의 세계에 관해 생각해보자. 천문학자는 성능이 좋은 망
원경을 가지고 있을 경우 안드로메다 성같이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별
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의 위치와 크기, 운동 등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망원
경을 지니고 있더라도 알퐁스 도데의 ≪별≫이나 생텍쥐패리의 ≪어
린왕자≫에 나오는 그 별, 혹은 윤동주의 그 별을 보거나 그 의미에 관
해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별들은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눈을 감
아야 보이는 세상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 적이 있다. 마침 3년 전 대학에서 정년으
로 퇴임한 얼마 후 그런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과학기술교육
부의 도움을 받아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열의 학자들이 모여서 이
른바 ‘문진問津포럼’이라는 것을 발족시켰던 것이다.‘ 문진’이란 이름
은 위원 중에 국문학자 한 분이 제안한 것으로서 ≪논어≫의 ‘미자微
子편’에서 따온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여행하던 중에 어느 날 “나
루터 가는 길이 어디인지 물어보라.”고 부탁한 대목이 있는데 우리는
그 이름에 모두 찬동하였다. 사실 전공이 다른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
에 임할 때는 그 방법과 자세가 매우 중요하게 마련인데 바로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
면 결론을 얻는 데 급급하지 않기 때문에 심한 논쟁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다각도로 넓게 접근하는 데 효
과적이었다. 나루터가 여행의 궁극적 목적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토론을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매달 한두 번씩 만나면서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많은 이야
기를 나누었고 그동안 각 분야에서 40여 명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이
모임에 참여해왔다. 가령 행복, 리듬, 소통, 교육, 위험 등 다소 추상적
인 것으로부터 요즈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주제는 철학자들만의 모
임인 학회에서도 다룰 수 있는 것이지만 물리학자와 화학자, 생물학
자와 수학자는 물론 의사와 작곡가, 화가, 건축가, 교육학자, 사회학
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 등 여러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때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적 호기심을 자
극하고 또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행복을 주제로
논의를 전개할 때 나는 철학적 관점에서 주로 그 개념을 명확하게 정
립하려고 노력했지만, 심리학자는 심리적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지 규명하고자 하며 경제학자는 선진국에서 보
다 후진국에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해명
하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그렇게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 자체가 나로서는 엄청난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 이 모임에서 특이한 것은 어떤 주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사
회자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누가 전문적인 입장에서 발제
를 하거나 논의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한 사람이 너
무 오랫동안 발언을 독점하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고 자율
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는 그 내용을 녹취해서 돌려 본 다음 필요하면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러한 기회에 자기의 의견을 좀 더 완숙한 형태
로 다듬기도 하지만 때로는 터무니없는 발언도 했음을 스스로 인식하
고 실소를 금치 못할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이러한 형태로 의견이 다
듬어지면 대중을 상대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고 논문 형식으
로 주제를 보완하여 총서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스
스로 자부심을 가졌던 것은 연구와 토론의 성과보다는 그 주제에 임
하는 자세와 과정이 개방적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나루터 가는 길을
묻듯이 주위의 풍광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고 나그네의 여정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어느 정도 아쉬웠던 것은 바로 그 나루터 가는 자세를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고수해 온 데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다. 의도적으로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어떤 담론을 심
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공리공담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
다. 더구나 이 포럼을 후원하는 기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직접적으로
나 간접적으로 정책의 입안에 반영될 수 있는 구체적 성과물을 기대
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것을 의식할 때마다 다소 불안한 느낌을 갖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문적 탐구의 가치가 실용적 도구만을 창
출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것 자체에도 있다면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문진포럼
의 분위기가 적어도 당분간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너무 조급하게 앞만 보고 달
려가며 전리품을 탐하는 전사들처럼 매사에 근시안적 성과물에만 급
급해 온 것 아닌가. 심지어 종교에서까지 기복 신앙에 몰입하는 것도
그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이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우선 이 격
동의 시대에 여러 중요한 개념들이 급격하게 변모하여 그것들을 신중
하게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원활하게 사유를 전개할 수 있고 또 효과적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행복이나 사랑, 교육 같은 표현
들이 쾌락이나 성욕, 혹은 훈련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시간과 공
간, 생명과 죽음, 인간과 정신 등의 기초 개념들도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다음 나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더욱 확고하게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
였다. 대부분의 경우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때로는 나 자
신이 스스로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논
의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을 의식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은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세상과 눈을 감아
야 보이는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서로 소통
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나갈수록 눈을 떠야 보이는 세상을 눈을 감고 보려는 경향이
있으며, 반면에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을 눈을 뜬 채로 보려는 경우
도 많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논의가 거듭될수록 상대방의 입장에
서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점점 더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당분간 매사에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 자세로 임해야 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