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대웅전에는 지붕을 받치는 버팀목이 서 있습니다. 날아오를
듯한 추녀 아래 붉은빛 원통형 쇠기둥이 지붕 네 귀퉁이마다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그렇게 서 있어 이젠 대웅전과 한몸이 된 듯
합니다.
조계사 대웅전 보수공사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하곤 마음이 급해졌
습니다.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으면 으레 발길이 그리로 향했던 까닭
은 바로 그 기둥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부터 오십 년 전,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아버지가 손수 세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공사
를 한다면 혹 그 버팀목도 제거하지 않을까 싶어 왠지 가슴 한편이 허
전해집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을 보노라면 그걸 세울 때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오릅니다. 오래전
에 세상을 뜨신 아버지의 손길이 경복궁을 비롯하여 보신각, 종각 등
에 남아 있긴 하지만 고건축에서 느끼는 위엄과는 달리 조계사의 쇠
기둥은 온갖 아픔을 이겨내고 지금껏 굳건히 서 있어 장한 느낌을 줍
니다.
전쟁을 치르느라 만신창이가 된 것이 어디 건축물뿐이던가요. 사람
마음에 박힌 파편이나 상흔이야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만큼 깊이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궁궐이나 사찰 같은 곳의 중수, 보수가
한창일 때 고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조계사 대웅전 보수공사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곳곳에 총탄 자국이 나 있고, 금방이라도 지붕
이 내려앉을 것처럼 파괴된 대웅전의 모습은 참담하였을 것입니다.
보수가 어려우면 새로 지어도 좋다는 제안을 받고 며칠 동안 정밀 조
사를 한 끝에 아버지가 내린 결론은 지붕에 버팀목을 세우고 총탄 자
국을 메워 보수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공사를 하다 지붕이 무너지
면 그때 새로 지을 터이니 어떤 일이 발생해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각
서를 받아내고 일을 시작하였다니 당시의 심각한 상황을 미루어 짐작
해 봅니다. 재정이 풍부하였다면 처음부터 새로 짓는 게 편하겠지만
당시의 상황이 워낙 어려웠을 때라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서울시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지만 그땐 헐고 새로 지어도 되었던 것
이지요.
아버지가 생각해낸 것은 사방에서 동시에 지붕을 들어올리고 버팀
목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기와지붕을 네 귀퉁이에서 동시
에 들어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엔 건축공법이 발달하여 그 정
도야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오십여 년 전에는 그런 공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말렸다고 합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기와지붕이 우르르 무너질 염려가 있으니 무모하다고 생각
할 만했겠지요. 기단에 돌을 앉히곤 그 속을 갈아내어 쇠파이프를 올
려놓은 뒤 지붕을 살짝 들어올려 추녀 아래에 맞춘 다음 다시 살그머
니 내려놓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작업이 진행되는 내내 살얼음판 걷
듯 조심 또 조심해야 했을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땐 수평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기
초를 다질 때부터 수평을 잘 맞추면 그만큼 힘이 분산되어 집이 안전
하기 때문입니다. 버팀목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대웅전 안에 한 아
름도 넘는 기둥이 여럿 있어도 기와 밑에 들어간 흙을 잔뜩 이고 있으
니 오죽 힘이 들겠습니까. 네 귀퉁이에 세운 버팀목은 지붕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어 그토록 오랜 세월 무리 없이 지탱해온 것이
겠지요.
추녀를 들어올려 이윽고 원하던 자리에 기둥이 세워졌을 때 아버지
등에는 큰 물줄기가 흘렀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일
꾼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노라면 긴박감
이 느껴집니다.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추녀와 쇠기둥 사이에 자
끼라 불리는 지렛대를 끼워 조금씩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힘들다고 중간에 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움직여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 그럴 때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수평을 맞추어 일을
진행해나가던 아버지 모습을 오라버니를 통해 들을 때마다 손에 진땀
이 나곤 합니다.
그렇게 세운 기둥이 대웅전을 오십 년 동안이나 지탱해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혹 조계사 스님들이 각목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매스컴을 통해 방송될 때마다 정작 우려했던 건 휘둘리는 각목에 맞
아 혹여 버팀목 하나가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만
쓰러져도 그 쪽으로 힘이 쏠려 결국 대웅전이 무너지고 말 테니까요.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기에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것입
니다.
보수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조계사를 둘러보니 지붕을 몽땅 들
어내었더군요. 그런데도 아버지의 기둥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습
니다. 새 지붕을 올려도 철거하지 않을 거라니 마음이 놓입니다. 기와
를 들어낼 때 그 안에서 흙이 엄청나게 나왔고, 문화재급 유물들도 상
당히 쏟아져 나왔다고 하더군요. 기와 불사할 때 신도들이 넣어둔 갖
가지 경전이나 소망을 담은 글 혹은 물건들이지요. 그러고 보니 기둥
은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을 받쳐 들곤 하늘의 응답을 기다리고 서 있었을 기둥.
아버지의 팔을 만지듯 기둥을 쓸어봅니다. 차가운 쇠로 만들어졌지
만 내겐 체온이 느껴집니다. 울뚝불뚝 근육이 강건하였던 아버지의
팔뚝에 매달려 그네를 타던 어릴 적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버
지의 기둥은 백 년이 흐르고 천 년이 흘러도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것입니다. 첨단공법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나 다리가 우르르 무너
지는 걸 볼 때마다 아버지의 기둥이 생각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온 마
음을 다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준열하게 일깨우고 있는 조계사
대웅전의 버팀목.
아버지가 그리울 땐 조계사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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