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모든 것이 있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군요. 책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무한사랑..
구양근교수님의 신작수필도 무한사랑..
책을 버려라
내가 언제부터 책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아
마 대학원에 다니던 어느 시절부터 점점 책을 좋아하게 되어, 아니
좋아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책을 사게 되어, 드디어 책 더미 속에 파묻
히고 만 것 같다.
늑장부리기 선수인 나는 석사 반 하나와 박사 반 두 개를 마치는 대
학원만 20년의 세월을 허비한 탓에 다른 교수들보다 수학 기간이 두
세 배는 긴 것만큼이나 비례하여 책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어디서 주
워들은 지식인지는 모르지만 책을 사는 데는 얼마든지 돈을 써도 좋
다느니,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느니 하는 말이 나에게는 아주 설득
력 있는 말로 들려왔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책방에 들러
서 묵직한 비닐봉지를 흔들거리고 들어오는 것이 나의 생활의 일부
가 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공부하다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갈 때는 가
방에 책만 그득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다 보지도 못하고 고스란
히 그대로 들고 올 때도 많지만.
대만에서 유학하다 일시 귀국한 내 트렁크를 들어주겠다며 받아든
이종형님은 아이쿠! 하면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이렇게 돌덩이처럼 무겁냐는 것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가방을 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형님은 혀를 내둘렀다. 트렁크 안에
는 내의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책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유학하던 5년과 교환교수 1년 합 6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는
거의 매주 간다(神田) 책방거리에 들렀다. 하루에 다 돌지 못하기 때
문에 나누어서 오늘은 이 골목 내일은 저 골목 책을 뒤적이며 고르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관을 2년 이상 매
일같이 자료 수집하면서는 마이크로 복사물이 또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하였다.
유학을 마치고 완전 귀국했을 때는 중국과 아직 수교가 안 되었을
때인지라 중국에 갈 수도 없고 중국 책을 살 방도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 홍콩 삼련三聯서국을 통하여 주문하여 들여오는 길이었는데,
일 년에 두세 차례씩 그렇게 책을 사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 있었
다. 중국과 국교수립이 된 뒤로는 직접 가서 먼저 들르는 곳이 책방
이었다. 책을 박스로 사서 먼저 배로 부치고 여행은 나중에 시작하곤
하였다.
학교의 연구실은 10평짜리 공간이 책으로 가득 채워지고 집의 서
실도 책이 차서 벽뿐만 아니라 방 가운데도 여섯 계단 책장을 중간에
쌍으로 세우고 책을 채웠다. 책장 높이가 모자라 책장 위에다 다시
스페어 책장 1층짜리를 겹쳐 올려놓고 꽂았다.
학생들이나 손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저 책을 다 읽었
느냐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글쎄! 다 읽었을 리가 없다. 다 안 읽었
을 뿐만 아니라 구입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떠들어보지 못한 책마저도
있다. 단 저런 태마의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고 필요할 때
떠들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말년에는 뜻하지 않게 해외 공관장 생활을 하게 되어 또 책이 늘어
나기 시작하였다. 필요해서 산 책도 있지만 무슨 기증본이 그렇게 많
은지 모르겠다. 귀국하면 책 때문에 문제가 될 줄 짐작은 하고 있었
다. 아니나 다를까 귀국하여 상당히 큰 아파트를 세 얻었으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방 하나는 침실로 쓰고, 방 두 개를 내가 차지하고,
방 하나를 아내가 차지하였다. 아내도 공부하는 사람이라 방 하나에
다 도르래 식 책꽂이를 설치하고 꽂아도 부족하여 방구석에 차곡차
곡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방 두 개에 가운데까지 책장을 놓고 꽂아 보았지만 남는 책이
더 많다. 여기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책을 버리자!”
이런 결론이었다.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몇 번 시도도 해보았으나 겨우 프린트물이나 정기간행물 몇 권을 버
리는 데 그치고 말았다. 혹 평생 한 번도 안 본 책을 몇 권 버렸다가도
아까워서 다시 쓰레기통을 뒤져서 되가져오곤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회가 좋다. 3년간이나 연구생활에서 떨어져 있
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애착이 엷어졌기 때문이다. 덜 중요하다고 생
각이 드는 책을 독한 마음먹고 뒤 베란다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디
서 기증을 받아주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버리겠다는 각
오였다. 이왕 그럴 바에야 방 가운데 있는 책장은 치우고 방의 숨통
을 틔었다. 베란다에 쌓인 책이 두 방에 찬 책보다 훨씬 많다.
요새는 도서관에서 책 기증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디지털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종이책은 인기가 없는 것이다. 우리 수필동인
회 회장을 하셨던 분도 학술원 원장까지 하신 분인데도 모교에서 책
을 받아주지 않아 따님이 근무하는 신학교에 겨우 책을 기증하였다
고 한다.
나도 모교에서 책을 받아주면 제일 좋은데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
가, 옳지 총장께 부탁해보자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 청탁을
거절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학의 연구소 설치 건
으로 대만에 들렀을 때 내가 공관장이라는 직분을 이용하여 어려운
청탁을 하나 알선해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만찬자리에서 마침 같은 테이블에 앉을 기회를 이용하여 말
을 꺼내어 보았다. 상상외로 흔쾌히 승낙을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뒤로 감감 무소식이다. 나는 후배 학장에게 전화하여 후속 조치를 부
탁하였다. 드디어 도서관에서 사람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기증
도서는 전문코너를 마련해 주지는 못하지만 분류하여 분산 정리하되
면지에 기증자 이름을 새겨 넣겠다는 배려도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
하다.
책의 분량을 대충 묻더니 2톤 반 트럭을 보내겠다고 했다. 네 명의
인부가 와서 생각보다 책이 많다며 끙끙대고 박스에 포장하여 차곡
차곡 차에 가득 싣는다. 나의 손때가 묻고 혼이 깃들어 있는 책들이
부디 후배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책 기증은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집에 남은 이 책들
은 또 누가 받아줄까. 이렇게 애물단지가 되고 말 것을 기를 쓰고 사
모으던 많은 날들을 생각하며 허공에 대고 피식! 헤픈 웃음을 한번
웃어 본다.
구양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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