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2012년 여름호, 정진권의 우리 고전수필 산책] 정약용丁若鏞의<농아광지農兒壙志> - 정진권

신아미디어 2012. 7. 10. 17:06

우리 고전수필에 대해 정진권선생님과 같이 산책을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아쉽게도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시는데요, 다음에 더 좋은 글로 같이 산책하는 것을 기대해봅니다.

 

 

 

 

 정약용丁若鏞의<농아광지農兒壙志>

 

 

   농아農兒는 곡산谷山2)에서 잉태孕胎되어, 기미 십이월 초이일(己未十
二月初二日, 1799)에 나고, 임술 십일월 삼십일(壬戌十一月三十日, 1802)
에 갔다. 홍역을 앓다가 마마가 되고 마마를 앓다가 악창惡瘡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강진康津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3). 해서 글 한편을
써서 이 아이의 형에게 보내 아이가 묻힌 곳에 곡哭하고 읽게 했다. 아
이를 곡하는 글은 다음과 같다.


   네가 세상에 와서 머무르다 간 것이 겨우 세 해인데 그 가운데 나와
떨어져 산 것이 두 해다. 사람이 60년을 산다고 하면 그 중 40년을 아
비와 떨어져 산 셈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네가 태어났을 때 내 시름이 너무 깊어 네 이름을 농農이라 했다. 이
는 이미 집안에 죄罪가 미치어4) 너로 하여금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나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나는 죽으면 흔연欣然히 황령黃嶺을 넘고 열수洌水를 건널 것
이다5). 그러니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
은 나는 이렇게 살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 너는 이렇게 죽었으
니,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도 있느냐?
   내가 네 곁이 있었어도 너를 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 어
머니의 편지에, 네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돌아오면 내가 나을 텐데, 나을 텐데.”
했다 하니, 네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비가 돌아오는 것으로써 큰 의지依支를 삼았던 것인데, 그 소
원을 이루지 못하고 갔으니 아비의 마음이 또 어떻겠느냐?
   신유년(辛酉年, 1801) 겨울의 과천果川어느 객점客店, 너를 안고 나를
전송餞送하던6) 네 어머니가 나를 가리키며 아버지라고 했더니 너도 따
라 나를 가리키며 아버지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 너는 아직 아버지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니, 생각하면 또 이렇게 마음이 아
프구나7).
   이웃 사람이 간다 하기에 그 인편에 소라껍데기 두 개를 보내어 네
게 주게 했는데8), 네 어머니의 편지에
   “아이가 매번 강진에서 사람이 오면 소라껍데기를 찾다가 얻지 못
하고 늘 풀이 죽곤 했습니다. 그러더니 죽을 때에야 겨우 소라껍데기
가 왔습니다.”
하니, 아비의 이 슬픔을 무어라 말하겠느냐?
   네 얼굴은 깎아낸 것처럼 예뻤다. 코 왼쪽엔 검은 점이 하나 작게 있
고, 웃으면 흰 이가 둘 뾰족하게 드러났다. 아, 나 이제 오직 네 얼굴만
을 그리며 있는 대로 내 마음을 너에게 전한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정약용(1762~1836) ; 조선 정조 때의 문신, 학자. 호는 다산茶山, 여유당與猶堂. 천
주교 세례명은 요안. 조선 후기 실학實學을 집대성했다. 저서로《여유당전서》.


1) 농아農兒는 이 글의 주인공인 죽은 아이, 광지壙誌는 묘지墓誌, 즉 죽은 사람의 행
    적行蹟등을 적어 관棺과 함께 묻는 글. 그런데 이 글은 아이가 묻힌 곳에서 읽게
    한 것이니, 그 후에 묻었는지는 미상. 이 글 뒤에 지은이의 6남 3녀 중 2남 1녀가
    살고 4남 2녀가 죽은 이야기가 붙어 있다. 이것은 사실상 별도의 글이므로 여기
    싣지 않는다.
2) 황해도 소재의 한 지명.
3) 지은이는 1801년 천주교天主敎박해辛酉迫害때 경상북도 장기長?에 유배流配되었
    다가 곧 전라남도 강진康津에 이배移配되어 있었다.
4) 농아農兒가 태어나던 해(1799), 지은이는 천주교 신자라 해서 공서파攻西派의 탄핵
    을 받고 사직한 일이 있다. 이것은 신유박해辛酉迫害2년 전이니, 지은이는 이미
    집안에 화禍가 미칠 것을 예측했던 것 같다.
5) 황령黃嶺은 미상, 열수洌水는 대동강大同江의 고조선 때 이름. 그러나 여기서는 높
    은 산과 깊은 물, 즉 세상의 속박(束縛, 또는 막힘)을 비유한 말일 것이다. 지은이
    는 그런 속박(가령 귀양 같은)으로 해서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6) 신유년辛酉年은 천주교 박해로 인해 지은이가 귀양을 떠나던 해, 과천果川은 경기
    도 소재 지명으로 서울의 관문, 객점客店은 여관. 지은이의 세 가족은 거기서 자고
    헤어진 것.
7) 아버지가 아버지라는 것을(아버지가 너에게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고 죽
    었다면 덜 슬플 것이라는 뜻일까?
8) 소라껍데기를 보내기 전에 보내겠다는 말을 미리 전한 모양.

 

 


독후감
  
지은이는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농農이라고 지었다. 입신양명
立身揚名을 최고最高의 효도孝道로 알던 그 세월에, 그런 것 다 그만두
고 농사나 지으면서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죄罪가 미친 집안, 이 아이에게는 다
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어찌해서 이름이라도 얻게 된다면 자기
처럼 세상에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먼 땅에 와 귀양살이하는 자신
의 모습과 아이의 더없이 험난險難할 장래를 생각하며 이런 이름을
지을 때, 한 아버지로서의 지은이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런데 그런 아들이 죽었다. 세상에 머무른 것이 겨우 3년, 그 중
2년은 지은이와 떨어져 산 아이다. 아버지가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그 아이는 갔다. 지은이의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나는 이렇게 살고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나은 너는 이렇게 죽었으니,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도 있느
냐?”
고 하던 한 마디가 오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은이는, 아버지가 오면 내가 나을 거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얼마나 아이에게 날아가고 싶었을
까? 그러나 유배지流配地에 갇힌 몸, 한숨만 쉬고 또 쉬고 했을 것이
다. 황령黃嶺도 열수洌水도 흔쾌히 넘고 건널 그였지만 이 유배지의
사슬은 어찌할 수가 없었던가 보다.
   유배지 강진康津은 바닷가에 있다. 그러니 예쁜 소라껍데기도 많
았을 것이다. 지은이는 그걸 보며 앓는 아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리고 제일 예쁜 것으로 둘을 골랐을 것이다. 강진에서 사람이 올 때
마다 그 소라껍데기를 찾다가 풀이 죽던 아이, 이제 그 아이는 세상
에 없다. 지은이의 마음이 갈가리 찢겼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글에는 비슷한 길이의 부기附記가 붙어 있
다. 이 부기의 마지막 한두 줄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한동안 숨을 멈추
게 한다.


   무릇 6남 3녀를 낳아 2남 1녀가 살고 4남 2녀가 죽었으니 죽은
아이가 산 아이의 두 배다. 오호嗚呼라,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
혹殘酷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하랴.


   지은이의 시에「경안(驚雁, 놀란 기러기)」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1801년에 지은 것인데, 과천果川에 도착해서 지었다(到果川作)는 주
註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과천 객점에서 헤어지던 그때를 읊은 것이
아닌가 한다. 함께 읽고 이 독후감을 마치기로 한다.


동작銅雀나루 서편에 조각달 찬데,
기러기 놀란 한 쌍
물을 건너네.


갈 숲 흰 눈 속에 이 밤이 새면
슬퍼라, 내일은 또
헤어질 것을.


銅雀津西月似鉤, 一雙驚雁度沙洲.
今宵共宿蘆中雪, 明日分飛各轉頭. -『與猶堂全書』
月似鉤; 달이 갈고리 같다. 달이 가늘게 휜 모양.
沙洲; 한강(漢江)의 모래밭(沙場)을 말한 것.

 

 


※ 본 란은 이번 20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친다. 장장 5년간이나 좋은 글 써주신
정진권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