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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7월호, 권두수필] 미래에 구분된 존재가 되려면 - 윤재천

신아미디어 2012. 7. 18. 17:42

수필과 비평 7월호의 문을 활짝 여는 윤재천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수필의 발전에 수필과 비평이 함께하겠습니다.

 

 

 

 

  미래에 구분된 존재가 되려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여러 가지 기구機具가 만들어지고 기능은 지속
해서 새로워지고 있다.
   현대의 눈부신 기계문명의 발달은 오히려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의 하
나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 같다. 이 현상에 반하여 ‘러다이트(luddite)’ -
기계파괴운동이 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운동은 1811년 영국의 섬유공업지대에서 노동자에 의해 일어났던
반反자본주의 운동이기도 하여, 산업혁명으로 많은 기계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노동현장에서 무작정 쫓겨난 노동자들의 실업 원인이 기계 때문
이라고 판단해 기계를 파괴한 일로, 200년 전 일어난 사건이다.
   문제는 무엇이든 조화가 깨지고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각광을 받거
나 더 가치 있는 것이 뒤로 처져 무시될 때, 그 반발 세력에 의해 야기되
곤 한다.
   요즘을 ‘스마트 폰 시대’라고 할 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이에 매료되어
있어 문제가 심각할 정도다. 전철이나 버스에 타게 되면 승객 중에서도
젊은이는 대부분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검색을 하거
나 문자발송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어, 주변 상황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
는다.
   젊은이들의 ‘스마트 폰에 대한 몰입’은 긍정적인 면보다 그렇지 않은
점이 적잖다. 그런 현상은 전통의 싹을 자르고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 못 된다. 검색창을 열고 사이버 세계로 들어가
분별없이 뒤지고 다닐 만큼 가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다.
   젊은이들은 과연 무엇을 찾고 또 거기서 얻은 것을 어디에 쓰기 위해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것일까.
   요즘 시대는 유식하거나 무식한 사람-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
따로 없다고 한다. 컴퓨터를 열고 들어가 검색을 해 해당 정보를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 쌓여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수박의 겉 껍데기’-굳이 알 필요도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이처럼 두뇌가 할 일을 눈이 대신하고 있으니 더 심해지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인간은 점점 몰락해 ‘저능低能의 금수禽獸’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문명의 이기利器 중에는 마약과 유사한 것이 많다. 고민하거나 애를
태우지 않고 쉽게 얻은 것이라 기계의 작동장치에서 ‘꺼짐 버튼’을 누르
는 순간 그 모두가 사라져버리기에, 사람은 이것이 두려워 앉으나 서나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러다이트 운동’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다려야 한다. 그
것만이 기계에 고용된 피동의 존재에 불과한 파수꾼에서 벗어날 수 있
고, 생의 주체로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채 살게 된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그 안에 영혼이 아닌 속도만 향유하며 살게 되면 일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생生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계를 사용해 일을 시키지만, 한 일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기계는 완전무결한 정답을 내리지 못한다. 기계 그 자체이므로 습관
적 대답만 할 수 있는 것이 구조적 특징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에 매달려 동분서주하면서 길을 찾지 못한 채 오락이나 그보다 못한
것에 일생을 담보하며 몰입되곤 한다.
   진리는 고뇌 어린 탐구와 반복적 도전을 계속하는 이에게만 잠시 보
여주기도 하고, 아니면 에둘러 지나가며 뒷모습 정도나 보여 주곤 한다.
그것을 남이 적어놓은 메모지에서 찾아내려 하는 것은 한낱 도박에 지
나지 않는다.
   요행수를 바라며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댔던 이들은 평생
도박을 즐긴 사람이다. 그들은 마침내 ‘모든 것은 꿈이었다.’는 말로 소
견 피력을 마감하게 되며, 전신기계에서 얻은-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목을 매고 살아왔음을 회고하게 된다.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은 신학교를 중퇴했음에도, 4년여 동안 대양을
가로질러 남아메리카까지 배를 타고 탐사하며 수집한 화석과 생물체를
찾아 연구한 결과 ‘생물은 진화함으로써 그 종種은 영원히 생존할 수 있
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한 사람이다. 다윈도 남이 적어놓은 메모
장이나 뒤적거리고 있었다면 잊혀진 인물이 되었겠지만, 그러지 않았기
에 지금도 그의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과학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는 기존의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미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였기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에 적응하며 불가능하게 여기던 일을 개척해 나갈
때 구분된 존재로서 그 분야에 우뚝 서게 된다. 이미 만들어진 기구에
의존해 수동적 존재로 삶을 영위하게 되면 퇴화에 가속도가 붙어 무력
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수필가도 미래에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는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하고, 젊은 독자를 외면
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과감한 쇄신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주관을
지키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성이 필요하다.
   수필가는 현실에 충실하되 미래를 개척하려는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윤재천  ----------------------------------------------------------------------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저서: ≪수필문학론≫, ≪현대수필작가론≫, ≪나를 만나는 시간에≫,

        ≪구름카페≫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