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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여름호, 다시 읽는 좋은 수필-아버지] 아버지의 뒷모습 - 주쯔칭

신아미디어 2012. 6. 21. 17:33

나라와 시대를 떠나서 '아버지'는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뒷모습

 

   지난 2년여 동안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그때 아버지의 뒷모
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일자리를 잃게 되었
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북경北京을
떠나 서주徐州로 향했다. 아버지와 함께 조모상祖母喪을 치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서주에 도착하여 아버지를 뵈었지만 가슴이
아팠다. 너저분하게 어지럽혀져 있는 세간을 바라보며 할머니를 떠올
리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푸념하듯 말씀하셨다.
   “기왕 당한 일을 어찌하겠냐? 너무 괴로워할 것 없다. 그래도 사
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구나.”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팔 만한 것은 팔고 저당 잡
힐 것은 잡혔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아버지가 진 빚은 다 갚았다.
하지만 할머니 장례를 치르느라 진 빚은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할
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닥쳐온 불행은 앞
날을 캄캄하게만 했다.
   장례식을 다 치른 뒤,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경南京으
로 떠날 채비를 하셨다. 나 역시 북경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해야
했다. 우리 부자는 남경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남경에서 친구의 권유로 시내를 구경하느라 하루를 머물렀다. 이
튿날 오전에 강을 건너 포구浦口로 간 다음 오후에 북경행 기차를 타
기로 했다. 아버지는 볼 일이 많으셔서 역까지 나오지 않기로 하셨
다. 대신 여관에 잘 아는 심부름꾼에게 나를 배웅해 줄 것을 부탁하
였다. 그래도 아버지 당신 마음이 안 놓이시는지 주저하시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부름꾼이 생각처럼 잘 대해주지 않을 것 같았던 모양이
다. 사실 당시 나는 스무 살이었고, 북경을 이미 두세 차례 다녀왔던
터라 그리 염려될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결국 당신이 직접 배웅해 주기로
결정하셨다. 굳이 그러실 것 없다며 몇 번 말렸지만, 아버지는 단호
하게 잘라 말씀하셨다.
   “애쓸 것 없다. 저 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 부자夫子는 강을 건너 기차역에 이르렀다. 나는 아버지께 짐
을 지키고 계시라고 하고는 역사 안으로 들어가 차표를 샀다. 짐을
옮기려면 아무래도 짐꾼에게 웃돈을 얹어줘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는 그네들과 한바탕 흥정을 벌이고 계셨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아버지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
는 끝내 당신이 품삯을 흥정하고야 말았다.
   나는 기차에 올랐다. 찻간까지 따라 오신 아버지는 창가 쪽에 자
리를 잡아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 아버지가 주신 자주색 외투를 깔
았다. 아버지는 작별인사를 하듯 이야기하셨다.
   “얘야, 조심해서 가거라. 밤에는 각별히 주의하고, 그리고 감기 들
지 않도록 잘 해라.”
   아버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기차 안의 심부름꾼에게 나를 부
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의 어리숙함을 비웃었다.
   ‘돈만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은 무슨 부탁! 더군다나 나같이 이렇
게 다 큰 청년을 맡기다니. 내가 스스로 알아서 어련히 잘 할라구.’
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난 지나치게 똑똑하게 굴었
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투로 말했다.
   “아버지, 이제 그만 가보세요.”
   아버지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창 밖을 바라보시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내가 나가서 귤 좀 사올 테니 너는 여기 가만히 있거라.”
   나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쪽 플랫폼 난간 밖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려면 철로를 건너야 했다. 그것도 이쪽 플랫폼에서 뛰어
내린 다음 다시 저쪽 플랫폼으로 올라가야 했다. 몸이 뚱뚱하신 아
버지로서는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마땅히 내가 가야 할 것 같
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사코 당신이 가시겠다는
것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검은색 마고자에 남색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철로 변을 약간 휘청거리면
서도 천천히 살펴가고 계셨다. 이때의 아버지는 그다지 힘들어 보이
지 않았다. 이제 철로를 다 건너서 저쪽 플랫폼에 오르려고 할 때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먼저 양손을 플랫폼 위 바닥에 댄
채 두 다리를 모으고는 위로 오르려고 한껏 뛰셨다. 순간 뚱뚱한 몸
이 중심을 잃으며 왼쪽으로 기우뚱하였다. 몹시 힘겨워하시는 모습
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얼른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훔쳤
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였지만 무엇보다 아버지한테 눈물 자국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아버지는 주황색
귤 한 꾸러미를 안고서 이쪽을 향해 돌아서고 계셨다. 철로를 건너
야 할 것 같자 아버지는 먼저 귤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
고는 조심스럽게 기어내려 오셨다. 아버지는 다시 귤 꾸러미를 안고
서 철로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쪽 가까이 오셨을 때 나는 지체없
이 달려나가 아버지를 부축하였다.
   아버지와 나는 기차에 올랐다. 아버지는 귤 꾸러미를 내 외투 위
에 내려놓으셨다. 이제야 당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신 듯 옷에 묻
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셨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만 가 보련다. 도착하거든 편지하거라.”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내려가면서도 아무런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
다. 다만 돌아서서 가시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버지는 몇 발
자국 못 가서 멈춰 섰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손짓
하셨다.
   “어서 들어가거라. 차 안에 사람이 없을 때 들어가라니까…….”
   나는 잠자코 서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로 역을 빠져나가
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비로소 나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 자리로 돌아와 앉은 나는 절제되어 있었던 감정이 솟구쳐
올라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요 몇 년 동안 아버지와 나는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은
더 나아질 게 없었다. 아버지는 소년 시절에 이미 객지로 나가 먹고
살 궁리를 했던 분이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며 그동안 큰일을 많이
벌이셨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어 이렇게 참담하게 되실 줄이야 누
가 알았으랴. 현재 처지를 한탄하시며 상심해 하시는 것도 당신 스
스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당신 마음속에 응어리진 울분을
종종 표출하곤 하셨는데, 집안의 사소한 일에 괜한 분노를 터뜨리시
는 것이었다. 나를 대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으셨다. 그러나 근 2년
동안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지 나에 대한 불만은 아예 잊어버리신 듯
했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시고 손자를 더욱 그리워하시는 눈치였
다. 북경으로 온 뒤 아버지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 몸은 그런대로 괜찮다. 단지 어깨가 자꾸 결리면서 통증이 점
점 심해지는구나. 젓가락을 들거나 붓을 쥐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
니다. 아마 갈 날도 멀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까지 읽어 내려간 나는 편지를 잠시 접어 두었다. 눈가에 맺
힌 눈물 방울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검은색 마고자에
남색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아……. 아버지를
언제 다시 뵐 수 있을는지…….

 


주쯔칭(朱自淸(주자청), 1898~1948)  -----------------------------------------------

중국의 시인 겸 평론가. 현실 긍정의 입장에 선 작풍의 신선미로 시단에 올랐다.

《 중국신문학대계·시집》을 편집하는 등, 시의 비평가로 이름을 떨쳤다.

새로운 문학론《표준과 척도》등을 저술해 고전문학과 신문학의 통일적인 연구법을 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