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편백나무숲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싶네요. 어머니도 함께..
내가 눈물을 흘린 커피 한 잔
어느 해 봄 저녁 무렵, 창이 큰 커피숍 앞을 지나가다 나는 눈
물을 흘린 적이 있다.
창문 하나를 사이로 어둠이 묻어오는 거리의 지친 걸음들과는 다
른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길게 여민 커튼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두
여자가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인생의 아픔 같은 것은 잊었거나 잠시
유예된 듯한 풍경, 그들을 가둔 아늑한 불빛 때문인지, 그들이 마시
는 커피는 더 향기롭고 따뜻하며, 그들은 한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어쩌면 멀어져 가는 젊음에 대한 아쉬움이 내 발길을 붙잡았는지
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
들은 웃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나는 어디에서도 마음 편히 커피
를 마실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아름다운 시간을 영원
히 놓아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
렀다.
그때 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었기에 우리 가족은 놀라 허둥대기만 했다. 문제는 현실의 한가운데
서 실타래처럼 꼬여 가는데, 그동안 내가 귀중하게 생각했던 것과
의미들은 무기력하게 침묵할 뿐이었다. 현실적인 일들이 생존의 문
제라면,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흔히 ‘문화’라고 한다.
나는 이제 문화적인 생활과는 이별하고 생존의 문제 앞에 공손히 머
리 숙여야 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내 생활에서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 대표적인 품목이 커피였다.
커피숍 창문 옆 테이블의 커피 한 잔 - 그들이 행복해 보이는 만큼
나의 불행은 앞질러 올 것 같았고, 그 절망감이 나를 울게 했다. 그
만큼 나는 커피 마니아였다.
다방 커피에 담배꽁초를 섞는다는 보도가 나돌던 1970년대 초, 명
동에 처음 문을 연 커피전문점 ‘포엠’은 짙은 커피 향과 함께 ‘킬리
만자로’ ‘블루 마운틴’ ‘비엔나’ 등의 전문용어의 메뉴로 우리에게
이국적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벽면 가득히 세계 곳곳의 커피잔을
모아놓고,‘ 생존에 필요 없는 것들’ 중의 대표격인 ‘포엠(시)’을 상
호商號로 사용하던 곳이다.
뒤이어 생긴 종로의 ‘반쥴’은 조금 넓은 공간인데, 실내 탁자마다
장미를 꽂던 유일한 곳이었다.
버스표 한 장을 아끼려고 몇 정거장이나 걸어 다니기는 예사이던
시절, 강원도 산골 출신의 여대생으로 다방의 두 배의 커피 값 때문
에 쉽게 갈 수 없던 ‘포엠’과 ‘반쥴’의 커피를 즐겨 마셨던 것은 ‘생
존에 필요 없는 것들’을 중시하던 나의 비현실적인 습성 때문이고,
이러한 습성에 부채질을 한 분은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딸만 넷을 둔 농부이며, 군내 곡물 상인이었다. 병환 중
인 어머니가 늦둥이로 낳은 내게 젖도 먹일 수 없어 나는 젖배를 곯
아 허약하고 먹성도 좋지 않아, 청소년기까지도 약질로 자랐다. 어
머니도 일찍 돌아가셔서, 안쓰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디건 나
를 따라 다녔다. 그 중에서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일이 가장 큰 걱정이
었다.
그런데 그 걱정은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에게 야릇한 자긍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내가 대부분의 시골아이들이 갖는 ‘먹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
고,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 콜라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코뼈
가 저리다며 입도 못 대는 것을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단숨에 한 병씩
마시는 일. 쓰디쓴 커피를 하루 몇 잔씩 마시는 습관…….
먹고사는 일이 전부이며 전념해야 하는 시골생활에서 아버지는
내가 시골아이들과는 다른 면을 갖고 태어났기에 그들과는 달리 살
아갈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일은
아버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방학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읍
내 중심가의 그릇가게에 가서 ‘우리 딸이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데
깨끗한 색으로 커피잔 한번 내놓아 보라.’며 커피잔 세트를 샀다. 식
품점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풀어가며 커피를 직접 사셨다.
‘다방커피 사건’은 이런 아버지 사랑의 결정판이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 나는 늦잠을 잔다. 그날도 늦게 일
어난 나에게 아버지는 “커피 한잔해야지?” 하셨다. 집에서 준비된
것을 마시겠거니 싶어 웃음으로 대답하니, 아버지는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서울에서 우리 딸이 왔으니, 커피 두 잔 마담이 직접 갖고 오시
오.”
다방에 드나드는 신식 아버지도 아니고, 누구에게 한 턱 쓰는 호
탕한 성격도 아닌 아버지가 우리 집 앞에 있는 다방에 커피를 시키
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내가 집의 커피를 마시면 된다고 하자, 아버지는 “집의 것은 맛이
없으니, 우리 시켜서 마시자. 아니면 세수하고 다방에 가서 마실
래?”하며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마담이 웃으며 보온병을 들고 와서 한 잔 따르자, 아버지는 내게
먼저 주라고 손짓을 했다. 다음 잔을 받아 마시며 “커피만 마시고 살
다시피 하는 우리 딸이 먹기에 커피 맛이 어째 시원찮다.”며 은근히
마담에게 내 자랑을 하신다.
“서울 사람들이 깔보지 않도록 좋은 것 먹고, 옷을 깨끗이 입고 다
녀야 한다.”
다방 커피를 시켜 마시며 아버지가 내게 남긴 간결하고 명료한 말
씀이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딸에게
만은 생존에 필요 없는 것도 음미하며 살 것을 당부하기 위해 마련
했던 그날의 티타임.
요즈음도 나는 아담한 커피숍 앞에서는 발길을 멈춘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놓고 찾을 수 없는 곳. 창가 테이블
에 앉아 커피잔을 앞에 놓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어느 거리
에서나 결코 생존에 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커피 한잔을 매개로 꿈
처럼 천국처럼 밤의 물결을 부유하는 아늑한 공간.
우리는 그 공간을 언제라도 찾아가기 위해서, 한잔의 커피를 여유
있게 마시기 위해서, 문화라는 이름의 천사의 속삭임을 향유하기 위
해서, 지천으로 꽃잎이 날리는 봄밤도 마다한 채, 생존게임에 몰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옥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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