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희님이 『좋은수필』에서 여러분들을 2,500평 아파트에 초대합니다. 와주실꺼죠!
2,500평 아파트에 사는 여자
오늘은 경칩이다. 양지쪽에 나가 있으면 봄나물들이 서로 시샘이
나 하듯이 뾰족뾰족 고개를 내민다.
따뜻한 봄볕은 정말 고맙고 눈부시다. 이 태양을 비닐봉지에 담아
서 안고 자면 보일러 안 돌려도 될 텐데…….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봄나물을 뜯는 재미는 농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
한다.
봄에 나오는 새싹들은 모두가 독이 없는, 몸에 좋은 나물이라고 하
지만 나는 아는 것만 뜯는다. 제일 먼저 캐는 냉이도 두 가지가 있다.
잎은 짧은데 뿌리가 길면서 통통한 황새냉이와 잎은 큰데 뿌리는 짧
은 조선냉이, 조선냉이는 국을 끓이고 황새냉이는 나물을 무친다.
다음은 소루쟁이, 난초잎같이 생겼는데 된장국을 끓이면 근대국처
럼 맛있다.
향기로운 쑥도 뜯는다. 국도 끓이고 쑥밥도 하고 튀김도 하고 떡도
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은 내 손바닥만 하게 만들어서 찌는 쑥개
떡이다.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간식으로 쪄먹는다.
다음은 길 옆에 노란 꽃이 피는 민들레, 꽃이 피기 전에는 나물로
먹는데 이와 비슷한 씀바귀와 고들빼기가 모두 쓴 나물이다. 봄에 입
맛 없을 때 해먹으면 입맛을 돋워주는 약초나물들이다. 산속에 살던
토끼가 자기 몸이 부실하다고 느끼면 씀바귀와 고들빼기 있는 곳을
찾아와서 몸보신으로 뜯어 먹는다고 한다.
돌미나리는 향이 좋아서 생걸 그대로 겉절이도 하고 삶아서 나물
도 해 먹는데 혈압에 좋고 술 해독에 좋아서 아주 인기 많은 나물이
다. 봄나물들이 끝나면 산나물을 뜯어 먹는다. 취나물, 고사리, 혼잎,
두릅, 도라지, 갈퀴나물.
요즘에는 산나물 뜯으러 가려면 뱀이 무서워서 장화 신고 남편들
하고 같이 가야 한다. 우리 집은 텃밭에다가 돌나물과 달래, 곰취, 구
기자 나물을 심어놓고 뜯어 먹는다.
어쩌다 동창회에 나가면 “요즘 반찬 뭐해 먹어?”하는 게 가장 많은
대화다. 친구들은 모두 도시에 산다. “너희들 쉬는 날 우리 집에 와
봄에는 자연이 주는 영양 덩어리 봄나물 뜯고, 여름부터는 내가 씨뿌
려서 가꾸어 놓은 상추, 아욱, 쑥갓, 고춧잎, 깻잎, 호박잎, 고구마순
등등 뜯어다 먹어. 어제는 딸하고 질경이를 뜯었어. 나 초등학교 때
질경이 나물하고 무말랭이 많이 싸가지고 다녔는데…… 그럼 너 질
경이가 왜 질경이인줄 알아?”
“응. 길 옆에 많이 나잖아. 사람들이 질경질경 밟아서 질경이라며?
요즘 간암에 좋다면서 캐러 다니는 사람도 있어.”
민들레는 폐암에 좋다고 한다. 따로 심고 가꾸지 않아도 자연이 주
는 행운의 나물. 도시 사는 주부들은 장바구니 들고 마트 갈 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돈 한 푼 안 들고 자연으로 나간다. 동창들 만나
면 듣는 말 세 마디가 있다.
“남편 뭐해? 애들 어느 대학 갔어? 아파트 몇 평이야?”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남편 일해, 애들 대학 다녀, 아파트 내가 아침부터 저
녁까지 밟고 다니는 오이밭 2,500평(비닐하우스) 있어. 바람 불면 바
람 막아줘 비 오면 비 가려줘 온종일 속옷 차림으로 다녀도 누가 뭐
라 하는 사람 없어.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는 2,500평이지.”한다.
“너희들 25평에 살지? 나는 아파트 100채를 지니고 산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너무 아름답고 시골 사는 게 행복하다는 생
각이 든다. 내가 자연을 돌보는 게 아니라 자연이 나를 돌보아주는
거다.
붕붕. 남편이 1톤 트럭 몰고 들어오는 소리다.
분명 배고프다고 하겠지? “여보, 밥 줘. 오늘 점심 밖에서 사먹었는
데 왜 똑같은 밥인데 사먹는 밥은 금방 배가 고프지? 어디 집 밥 파는
데 없나?” 당연히 사먹는 밥은 금방 배가 고프지 아내 사랑이 안 들
어갔으니. “맞아 나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주는 밥이 최고 맛있어
정말이야.”
내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남편한테 밥 차리기 귀찮을 때는
큰소리로 “내가 전기밥솥으로 보이냐, 밥통으로 보이냐?” 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여보, 앞으로는 소리 안 지르고 밥 차려줄게.”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라고.
유봉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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