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보시면 어떠실지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제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씌어졌는데 글 속에서 저는
평소에 직접 아버지 가슴에다 대고 원망할 수 없는 것만을 토로해댔
지요.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
정이었습니다. 그건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지만 제가 정해놓
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갔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얼마나 부질없
는 짓이었는지요! 그것은 이야기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저의 삶 속에
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일 뿐이며 - 그 일이 만일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일어났다면 결코 눈치 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 일은 어렸을 때는 어렴풋한 예감으로서, 나중에는
희망으로서, 더 나중에는 종종 절망으로서 제 삶을 지배해왔고 이를
테면 또다시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제가 몇 가지 작은 결정을 내릴
때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직업 선택의 경우가 그 한 가지 예입니다. 확실히 아버지는
그 일에 있어서 만큼은 마치 인심을 쓰시듯 관대하게도 저에게 완전
한 자유를 허락하셨지요. 다만 그때 아버지가 그렇게 하시기로 한
데에는 유대인 중류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아들을 다루는 법이나 아
니면 적어도 그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지요. 그
와 더불어 또한 저라는 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오해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
서의 자부심에서, 혹은 제가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모르셔서,
혹은 저의 허약한 모습으로부터 거꾸로 추론을 하셔서, 저를 대단히
부지런한 인간으로 여겨오셨지요. 아버지가 보시기에 저는 어렸을
때는 부단히 무언가를 배웠고 나중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댔으
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약간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오히려 저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배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오랜 세월을 지내며 제 머
릿속에 약간의 지식이나마 남아있게 된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
니다. 제 기억력이 남들만큼은 되고 이해력도 아주 형편없는 편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제가 갖게 된 지식이란 다 합쳐 봐도 -
특히 그 기초에 있어서는- 겉으로 보기에 걱정 없고 편안해 보이는
삶을 살며 들였던 시간과 돈에 비하면, 더구나 제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경우에 비해서도, 너무나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것
입니다. 초라하긴 해도 저로서는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저는 줄곧 정신적 생존의 문제에만 너무도 깊이
몰두해왔기 때문에 다른 일들은 모두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유대인 출신으로 김나지움 학생인 경우는 금방 눈에 띄게
마련이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한없이 환상에 빠져들면서도 냉정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아
이로서 저의 무관심은 차갑고도 거의 노골적이었으며, 무엇에도 흔
들리지 않았고, 어린아이답게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보처럼 보일
만큼 어처구니가 없었고, 동물처럼 자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저는 더욱더 유별난 존재였을 겁니다. 제 자신도 그런 모습
의 무관심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역시 불안
과 죄의식으로 인해 신경이 마멸되는 일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지요. 저는 오직 제 자신에 대해서만 몰두했는데 그 방식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가령 제 건강에 대한 염려도 그 한 가지였습니
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되었지요. 그러다 차츰 소화 불량, 탈모,
척추만곡脊椎彎曲등등에 대한 가벼운 불안으로 나타났고 그 불안은
무수히 많은 단계들을 거쳐 고조되다가 마침내는 실제로 병이 나버
리게 됨으로써 끝이 났지요. 그런데 저는 무슨 일에도 자신이 없었
고, 매순간 저의 존재를 새롭게 확인해야 했고, 나 자신만의 확실한
소유물, 오직 나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라곤 하나도 없
었기 때문에 -사실 저는 무슨 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자격이 없는 내
놓은 자식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제 자신의
몸조차도 확실치 않게 되었습니다. 키만 껑충하게 자랐지 아무짝에
도 쓸모가 없었지요. 웬만한 짐은 너무 무거워 등이 휘어져버렸지
요. 몸 움직이는 일을 꺼려했으므로 기계 체조 같은 것은 엄두도 내
지 못했지요. 그래서 저는 내내 허약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나의 소유로 느껴지는 것이 있을 때면 저는 마치 기적을 본 듯이 놀
라워했지요. 가령 저의 뛰어난 소화력과 같은 경우가 그런 예입니
다. 그러니 그것을 잃는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지요. 이제 우울증 증
세를 보이는 일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겠다는 엄
청난 결심을 한 후(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가
히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되면서는 그만 각혈을 하고 말았지요.
그렇게 된 데에는 아마 쇤보르 궁의 방도 한몫을 단단히 했을 겁니
다. 제가 굳이 그 방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단지 글을 쓰는 데 그 방
이 그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 글도 그 방에서
쓴다면 잘 어울릴 텐데 말이에요. 따라서 그간의 일은 아버지께서
늘 상상하셨던 것처럼 무슨 엄청나게 큰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
었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저는 넘치도록 건강하면서도 아버지가 병
드셨을 때를 포함해서 평생 동안 소파에 누우셨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파에 누워 빈들거렸던 적이 있었지요.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듯 저는 황급히 아버지한테서 달아나곤 했는데 대개는 제 방
에 들어가 드러눕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무실에서나(그곳에선 게으
름을 피워도 잘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소심한 성격 때문에 저의 게
으름은 도를 넘은 적이 없었지요.) 집에서나 제가 하는 일의 양은
다 합쳐 봐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제 생활을 위에
서 내려다보실 수 있다면 기가 차서 입을 다무시지 못할 겁니다. 아
마도 저는 기질상 결코 게으른 편은 아니지만 제가 할 일이 별로 없
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저는 비난을 받고, 저주를 받고, 무참히
짓눌렸지요. 그래서 다른 곳으로 피신하고자 무진 애를 써보았으나
그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몇 번의 작
은 예외가 있긴 했지만 제 힘으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의 독일 소설가(1883~1924).
유대인으로,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파헤쳐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에 <변신變身>, <아메리카>, <성城>, <심판>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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