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들이 대책 없이 나뒹굴 때쯤이면 알딸딸한 기운을 빌어 옆 상에 앉은 이웃들에게 고기 근이나 소주 몇 병을 호기롭게 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이웃들도 세상을 조신하게 산 사람들이니 나를 보고 어느 동네 뉘 집 손인지 알아차리고, 수십 년 만에 귀향하더니 인사성 밝고 참 인정 있다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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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 김상영
시골이나 도회 할 것 없이 음식점이 많이도 생겼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비싼 곳도 있지만 헐한 음식점도 있다. 나 같이 주머니가 홀쭉한 사람들은 비싸다는 곳은 가지 못하고 이 집 저 집 싼 곳을 가게 된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가게 되니 가랑비에 옷 젖는 격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만만한 삼겹살 구이집이다.
삼겹살은 좀 침침한 골방에서 먹어야 더 맛이 난다. 그 방은 좁아서 아늑해야 하고 적당히 지저분해야 한다. 기름때 낀 포마이카 상의 나사가 헐거워 꺼떡거려도 상관없다. 가스레인지는 기름얼룩이 붙어 있어도 좋다. 방바닥에 사려놓은 가스 줄을 궁둥이로 슬쩍 밀치고 앉은들 어떠랴.
고기마다 어울리는 불판이 있을 거다. 돌판이니 뭐니 해도 삼겹살엔 그저 툭박진 무쇠로서, 둥근 귓바퀴에 동그란 걸개가 떨렁거리며 멋을 부린 불판이 좋다. 거기에다 자글자글 노릇노릇 잘 구워질 수 있도록 윤이 나게 질이 났으면 더 좋다.
삼겹살에 파절임이 빠진다면 팥소 빠진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다. 그런 파절임은 낙동강 하구 명지대파처럼 대가리가 허여멀쑥하고 굵어서 그 달콤한 즙이 입안을 한가득 적셔주니 더할 나위 없다. 상치와 들깻잎은 기본인데 사각대는 배춧속까지 등장할 때가 있어 그들먹하고도 푸짐하다.
고기는 숙성된 것으로서 맛있다고 소문난 걸 내놓고는, 돈 천 원 더 받으니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바다 건너 왔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진국 같은 주인을 만났으니 제대로 맛이 날 거다.
주인장은 아줌마가 편하며, 뚱뚱한 데다 펑퍼짐하면 후해 보여 더 좋다. 살 뺄 여유 없이 장사에 전념하였을 것이므로 그만큼 음식 맛도 좋을 것이다. 여인네 뱃살을 숨기기엔 월남치마가 좋겠으나, 나 좋아라고 한물간 그 치마를 입어 줄 리는 만무하다. 소주 회사 판촉용 앞치마로 월남치마 시늉을 해주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반찬 쟁반을 든 손은 여느 촌부처럼 툭박지면 좋다. 설거지하다 그냥 들어온 양, 젖은 손이 좋다. 그 손에 들린 살얼음 살짝 낀 소주병은 구식舊式 방망이 수류탄을 닮아 우리를 쓰러뜨릴 기세다.
주인장이 정식定食에나 올리는 생선구이를 슬쩍 들이미는 건 단골손님에 대한 정표라서 고맙다. 그뿐이랴, “너거는 어예 그클 다정하이꺼?” 하며 부러워 해주는 주인장이 좋다. 삼겹살의 온전한 맛은 인정이 가미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언감생심 옛 시골에야 삼겹살이 있었을쏘냐. 큰일 치를 때 삶아 빚어내는 넓적 살을 장물에 찍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목기쟁반에 걸쳐진 초승달 같은 그 돼지고기는 딱 한 조각이 고작이었다. 끓는물을 끼얹어 식칼로 대강 밀어낸 탓에 털이 숭숭 난 것이 얻어걸릴 때도 있었다.
삼겹살 구이가 돼지고기의 진수란 걸 알게 된 것은 걸신들린 그 세월을 지나 대처에서 살 때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고소한 그 맛에 홀딱 반한 나는 하루가 멀다고 퇴근길에 동료와 어울려 삼겹살집을 거쳤다.
그렇게 삼겹살집을 거친 이유도 가지가지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혼자는 외로워서, 복잡한 일 괴로워서, ‘자네 한 번, 나 두 번’ 사게 되는데. 그렇다 한들 얻어먹을 때는 불안하고 내가 낼 때는 허리가 휘청하니 분위기와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겠는가. 그래서 즐겨 가게 되는 곳은 그 칙칙한 삼겹살집일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안식의 전당은 삼겹살집이다. 그런데 요즘 들락거리는 삼겹살집의 친애하는 아줌마도 자꾸만 방을 늘리고 새 시설을 갖추고 싶은 욕심을 가진 듯하다. 그 명당이 없어진다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돈을 벌고, 나보다 더 훌륭한 고객을 맞고 싶은 것을 어찌 말리겠는가. 다만 내가 들락거리는 장터에만은 오래도록 그냥 그대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나는 어느 어스름한 저녁, 술 고프고 출출할 때 내 친구들을 몰고 그 집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소주 일병과 맥주 이병을 우선 청한 뒤 간을 맞추고서, 불판이 달궈질 아까운 막간에 잔 대어 보자고 외칠 것이다.
"위하야!" 그러면 아내는 은근한 잔소리로 말릴 것이다. "앗따, 고기 꾸버지마 조근조그이 마시소." 나는 그 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며 느긋해 할 거다. 나는 불판의 불을 조절하여 삼겹살에 걸맞게 딱 세 번만 뒤집어 최고의 맛을 낼 것이다.
술병들이 대책 없이 나뒹굴 때쯤이면 알딸딸한 기운을 빌어 옆 상에 앉은 이웃들에게 고기 근이나 소주 몇 병을 호기롭게 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이웃들도 세상을 조신하게 산 사람들이니 나를 보고 어느 동네 뉘 집 손인지 알아차리고, 수십 년 만에 귀향하더니 인사성 밝고 참 인정 있다 할 것이 아닌가.
김상영 님은 수필가. 2008년 월간 《한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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