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는 다양성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모두가 똑같은 세상은 숨이 막힐 만큼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울 것만 같다. 아마 죽음과 다르지 않으리라. 다름은 아름다움이다. 수많은 다름 속에서 조화의 꽃을 피워내는 과정이 우리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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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미학 / 최제영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느라고 TV 채널을 돌리다 보니, 화면 한 귀퉁이의 ‘Wife Swap’이라는 영어 자막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내 교환’이라니. 아무리 미국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이런 부도덕한 제목이? 거부감과 동시에 순간 강한 호기심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얼마동안 보자니 이건 내가 생각하던 그런 아내 교환이 아니었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두 가정의 주부들을 상대방의 가정에서 2주일 동안 주부 노릇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두 가정의 주부를 생소한 환경 속에 들어가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아주 기발한 발상이었다. 생식生食을 하는 집과 육식을 하는 집의 아내들을 서로 바꿔 놓은 것이다.
생식을 하는 집 부엌에는 음식을 익히는 가스레인지라든가 오븐같은 게 전혀 없다. 주부는 밖에서 동물보호 캠페인을 벌이기에 바빠서 살림할 시간조차 없다. 중학생 딸 하나가 있는 이 가정에서는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집안일을 한다.
육식을 하는 집의 냉동고에는 남편이 사냥해온 동물 고기가 가득하다. 다른 먹을거리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아내는 집안 청소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남편은 사냥 다니기에 바쁘다. 거실 벽에는 사슴 같은 뿔이 달린 동물의 머리가 박제되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아들 둘은 노상 치고받고 싸우니, 엄마는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이토록 이질적異質的인 두 가정의 주부들이 자기 집을 떠나 남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받는 충격이 어느 만큼인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짐작된다. 처음에는 엄청난 ‘다름’에 당혹해하던 그들이 그 가정의 분위기와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충격과 거부감을 다스리는 동안에 첫 1주일이 지나간다. 다음 주에는 그 가정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바꾸어 보려는 생각을 하다가 또 1주가 지나가 버린다.
우리는 의외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와 사는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물론 똑같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남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위에서 본 두 가정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인간은 다양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지구상의 60억이 넘는 인구중에 똑 같이 생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어딘가 다르니 말이다. 그 다양성 때문에 세상은 재미가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려면 그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도 각양각색이다.
개성이 다른 두 남녀가 사귀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동질성을 어느 정도 확인하게 되면 드디어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이렇게 다를 수가!’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부터 새 부부는 ‘다름’과 부딪히게 된다. 아내는 치약을 밑에서부터 눌러가며 쓰는데, 남편은 한 가운데를 꾹 눌러놓는다. 그녀는 얼굴을 닦은 타월은 제 자리에 다시 펼쳐서 걸어놓는데, 그는 바닥에 던져 버린다. 그녀는 국에 밥을 말아먹는데, 그는 국이 있어도 물에 말아먹는다. 그녀는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는 잠옷을 입지 않는다.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름’에 말문이 막힌다. 부부의 마찰과 갈등은 여기서부터 싹이 튼다.
고부 갈등도 이 ‘다름’ 때문에 일어난다. 옛 어른들은 “집집마다 오이 베어 먹는 법이 다르다.”는 말로 각 가정의 생활습관이 다름을 인정하고 딸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생소한 남의 가정에 들어온 며느리는 수많은 다름에 당황한다. 어떻게 대처할지를 몰라 서투른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내 집에서 사는 방식을 새 식구에게 하루 빨리 가르치려니 잔소리가 시작된다.
결혼 전에 나는 시금치를 데치면 즉시 냉수에 헹궈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절대로 헹구지 말라고 하셨다. 헹구면 시금치의 단맛이 빠진다고.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사실조차 시댁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그 외의 수많은 다름은 이루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갈등과 소외감으로 한동안 무척 힘들고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우레처럼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기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다름은 개성個性이다. 그리고 개성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려면 먼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인정하고 나면 이해와 수용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거기에 양보가 곁들여지면 평화로운 공존이 시작되는 것이다.
창조주는 다양성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모두가 똑같은 세상은 숨이 막힐 만큼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울 것만 같다. 아마 죽음과 다르지 않으리라.
다름은 아름다움이다. 수많은 다름 속에서 조화의 꽃을 피워내는 과정이 우리 삶이 아니겠는가.
최제영 님은 2013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그래도 오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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