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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문학, 장편동화] 너와집 산소년 - 김상삼

신아미디어 2012. 1. 7. 10:54

                     너와집 산소년
                                                       글 김 상 삼
                                                    그림 라 환 희

12. 행복한 집


수업이 끝난 오후였습니다.
‘한남이에게 엄마 소식을 물어볼까?’
이렇게 망설이다가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교실 모퉁이를 돌아
가려고 하는데 한남이가 나왔습니다.
“배고플 텐데 이것 마셔.”
한남이가 우유봉지를 내밀었습니다.
“나를 주려고 우유 급식할 때 먹지 않았단 말이야?”
한남이는 대답 대신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는 베트남 사람들을 많이 아니까 시간 날 때 우리 집에 와
봐.”
“네 집이 어딘데?”
“장미아파트 2동 22호야.”
한남이는 부끄러운지 떨리는 목소리로 이 말만 남기고 돌아섰습
니다.
‘월남 사람들끼리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지. 그렇다면 엄마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모르더라도 서로 소식을 물어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했습니다. 어서 한남이네 집에 가보
고 싶었습니다. 축구 연습을 하면서도 엄마와 한남이네 집 생각은
잠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감독님은 이런 찬이의 마음을
이미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천리마, 너 지금 다른 생각하고 있지?”
‘한남이네 집에 가면 엄마 소식 알 것 같은데 일찍 가면 안 될까
요?’
이런 말이 목구멍을 넘어왔지만, 꾹 참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
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과 학생들이 찬이를 지켜보
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미안한 마음에서 엄마 생각
은 접고 다시 힘을 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부지런히 뛰며 공을 찼습니다. 산비탈에서 다져
진 체력은 좀처럼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찬이의 발은 자석
이었고, 공은 철이었습니다. 발에서 떨어지지 않던 공이 발끝을
떠나자 총알처럼 날아 골문 네트를 흔들었습니다.
보고 있던 교장 선생님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부드럽게 수비를
제칠 때도 박수를 보냈습니다.
“찬이, 원시생활 속에서 한 연습을 보여줄래?”
감독 선생님 말씀에 찬이는 공 세 개를 운동장에 놓았습니다.
여러 명의 수비수가 앞을 가로막아 벽을 만들었습니다. 찬이는 공
을 앞에 놓고 뜰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위벽을 향해 차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때처럼 발등 안쪽으로 감아서 찼
습니다. 발등을 떠난 공이 벽의 오른쪽을 돌아 골네트에 꽂혔습니
다. 네트가 심하게 출렁거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두 번째 공은 발
등 바깥으로 감아서 찼습니다. 이번에는 골대 왼쪽 모서리에 꽂혔
습니다. 마지막 공은 똑바로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네트를 출렁거
리게 했습니다.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찬이는 신이 났
습니다.
“찬아, 이번엔 산비탈 버섯작전이야.”
선생님은 아이들을 운동장 곳곳에 세우며 말했습니다. 그 친구
들은 나무가 되고 공은 버섯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버섯도 놓치지
않고 따듯이 빠른 동작으로 공을 몰았습니다. 나무 사이의 버섯을
딸 때처럼 몸은 바람처럼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갔습니다. 꼬부랑
비탈길에서 발끝과 발바닥과 발등으로 몸을 비틀며 공을 몰던 그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또다시 구경꾼들이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야, 산골에서 얻은 실력이 놀랍구나.”
감독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연습을 마쳤습니다.
“나 좀 다녀올 데가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올게.”
찬이는 석이한테 이렇게 말하고 한남이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한남이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옹기종
기 모여 저녁을 먹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저렇게 살았는데.’
엄마의 한 자리가 행복을 엮는 데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습니다.
찬이는 행복한 한남이네 집을 보며 너와집을 떠올렸습니다. 등불
마저 없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할머니와 아빠의 쓸쓸한 모습이
눈에 어렸습니다.
‘나마저 없으면 누렁이도 신이 안 나 사냥도 안 할 텐데…….’
찬이는 누렁이가 토끼 사냥을 하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토끼는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길어 산비탈을 잘 오릅니다. 그러나
눈이 내리면 먹이가 눈에 덮여 토끼는 굶습니다. 먹지 못해 힘이
빠진 데다가 눈에 앞다리가 빠져 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렁이
가 보기만 하면 토끼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나마저 없는데 누렁이라도 있어 다행이야.’
이렇게 누렁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남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말한 찬이란 친구야.”
“아이구, 네가 바로 찬이로구나.”
한남이 엄마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한남이네 엄마도 우리나
라 말이 조금은 서툴렀습니다. 떠듬거리는 말씨가 엄마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음성뿐만 아니라 얼굴 모습도 엄마를 닮아 정겨웠습
니다.
“네 엄마 이름은 뭐니?”
“딘티난이라고 하고요, 다낭이 고향이래요.”
한남이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다낭에서 온 친구가 하나 있는데 확인해 볼까?”
한남이 엄마는 당장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와는 달리 한남이네 엄마는 무척 당당하게 사는 것 같았습
니다. 찬이는 가슴을 조이며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찬이를 도와
주려는 마음이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전화를 거는 짧은 동안 찬이의 가슴은 몹시도 뛰었습니다. 말없
이 지켜보는 짧은 순간에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한껏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습
니다.
설렘으로 부푼 풍선은 그 순간에 터져버렸습니다. 그 빈 가슴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더욱 진하게 쌓여갔습니다.
“네 엄마를 모른대.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 마라.”
아주머니는 다시 희망을 주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모임이
있으니 그때마다 알아봐 준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어디에서 왔어요?”
“난 사이공에서 왔지. 내 이름은 비엔티안이라고 하지.”
“난 한배라고 해.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는 뜻이고, 한남이는 한국과 월남에서 따온 이름이야.”
한배 형이 이름에 대해 풀이해 주었습니다. 처음 만난 가족이지
만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어느새 한남이네와 한가족
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에 있으니 찬이도 덩달아 행복
한 것 같았습니다.
“찬아, 네 엄마 사진 있니?”
중학교에 다니는 한배 형이 물었습니다.
“뭘 하려고?”
“응. 한국에서 사는 베트남 사람들의 카페인 ‘한월’에 올리려고.”
“그런 카페가 있어?”
“응, 한국에 살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
한배 형은 한월카페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베트남 말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운영한다고 했습
니다. 처음에는 카페 힘이 약했습니다. 그런데 올여름에 공사판에
서 일을 하다 사고로 6명이 죽었습니다. 그 중 월남 사람이 5명이
나 되었습니다. 월남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하다 죽었습니다. 그런
데도 보상은 너무 적었습니다. 그때 월남 사람들은 바로 이 한월카
페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억울한 일을 카페를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카페는 베트남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창이었습니다. 작은 힘
을 보태고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이면 누구나 이 한월카페를 많이 드나든다고 했습니다.
‘엄마도 한월 카페에 들어가실까?’
찬이는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카페에 올리면 금방 소식이 올
것만 같았습니다.
“사진은 내일 한남이한테 보내줄 테니 잃어버리면 안 돼.”
“걱정 마. 쓰고 돌려줄게.”
한배 형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가지 않았다
면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습니다.
‘하늘은 엄마를 찾으라고 감독 선생님과 한배 형을 만나게 해준
거야.’
찬이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신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엄
마를 찾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한배 형을 만난 뒤로 찬이에게 또 하나의 기쁨이 생겼습니다.
바로 한남이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아침을 맞는 일입니다.
한배 형이 카페를 통해 ‘엄마 찾기 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에 가슴
설레는 나날이 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엄마 소식이 올 것만 같았
습니다.
‘오늘은 한남이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까?’
이런 기다림으로 축구연습을 하면서도 눈은 정문에 붙박여 있습
니다. 마침 한남이가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찬이는 크게
눈을 뜨고 지켜보았습니다.
한남이는 못 본 체 얼굴을 돌렸습니다. 오늘도 기쁜 소식이 없다
는 뜻입니다. 반갑게 마주보며 아침 인사하는 것도 한남이는 신경
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는 꼭 엄마의 소식이 올 거야.’
찬이는 이런 희망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다 가
도록 엄마의 소식은 깜깜했습니다.
‘내가 카페를 너무 믿은 것 같아. 땀은 배신하지 않고, 꿈은 이루
어진다고 했으니 내 힘으로 엄마를 찾자.’
찬이는 자기 힘으로 엄마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쉴 때도 찬이는 공을 몰며
운동장을 달렸습니다.
“야, 천리마. 이리 와 봐라.”
감독 선생님이 찬이를 불렀습니다.
선생님 곁에는 낯선 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쩐지 엄마의 소식
을 가지고 오신 분일 것만 같았습니다.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와
환한 얼굴이 그런 예감을 갖게 했습니다.
“선생님, 왜요?”
“이분이 상주시청에 근무하는 내 친구인데 너를 위해 왔단다.”
선생님 말씀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네 엄마 이름이 뭐니?”
시청에 다닌다는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예, 딘티난이라고 합니다.”
“우리 상주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가 있지. 다른 지역에도 협조를 구해 찾아보
마.”
아저씨는 이렇게 희망을 주고 떠났습니다.
‘그래, 어쩌면 카페보다 외국인 명부로 찾으면 더 쉬울 거야.’
찬이는 엄마를 찾는다는 희망으로 신나는 나날이 되었습니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를 찾을 수 있다
는 믿음이 개나리 가지의 꽃눈 부풀듯 부풀었습니다.
양지바른 학교 뜰에는 벌써 톡톡 개나리가 노란 꽃눈을 터뜨렸
습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에서 엄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노란색을 좋아했습니다. 입학식 할 때도 노란 옷을 입었
습니다. 울면서 집을 떠날 때도 노란 옷을 입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노란 옷을 입었을 거야.’
찬이는 잠시 멍하니 엄마 생각에 잠겼습니다. 엄마만 있으면 찬
이네도 한남이네처럼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엄마만 있다면 원시생활을 해도 행복을 엮어가는 집이 될 텐
데…….’
찬이는 엄마와 더불어 꾸려가는 행복한 너와집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습니다. 엄마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의 상상만으로도 행복했
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