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년문학/소년문학 본문

[소년문학 2012년 4월호, 아름다운 책 앞에] 똥바지 대신 입은 아이 - 김완기

신아미디어 2012. 6. 6. 10:50

아이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똥바지 대신 입은 아이


   연초록 새잎이 돋는 따뜻한 봄날이었다.
   나와 반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너 시간 걸어야 하는 보현사 절터
로 소풍을 갔다. 봄볕에 포시시 눈을 뜨는 산꽃들이 반갑게 맞는
다. 다람쥐도 바위틈으로 빠끔 내다본다.
   산 중턱을 오르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울상이 되
어 주저앉는 것이다. 아이들이 몰려가 왜 그러냐고 했지만, 벌써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침 먹은 것이 체해 배탈이 난 것이다. 모두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지만 우리 반 승민이는 달랐다.
   “괜찮아. 우석아, 빨리 날 따라와!”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승민이는 손으로 말하는 수화로 배탈난
우석이를 붙잡고 계곡으로 흐르는 골짜기 샘물가로 데려간다. 농
아라고 놀림받던 승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아주 민첩한 행동이
다. 샘물이 아주 차가웠지만 괜찮은 듯
   “어서 벗어! 내가 빨아줄게.”
   승민이는 차가운 샘물로 우석이 궁둥이와 다리를 씻기는 것이
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자기 바지를 벗어 입히는 그 광경이 뒤쫓
아간 나에게 평생을 잊지 못하게 한 큰 감동으로 남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데리고 천천히 올라 가세요. 제가 우석이를
데리고 갈게요.”
   수화로 손짓하며 씩 웃는다. 흐르는 물에 바지를 빨아 툭툭 물기
를 털더니 그대로 젖은 바지를 입는다. 우석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똥바지 대신 입은 승민이는 우석이 손을 잡고 어서 뒤
따라 가자고 재촉한다. 바지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이때, 어디서 모였는지 째째짹 째째짹 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에서 바라보던 산새들이 기막힌 구경을 했다면 한 마디씩
쫑알댄다. 산속을 흔드는 소리다.
   “이 세상, 천사가 어디 있는가 했더니 여기 똥 묻은 바지 바꿔입
는 네가 천사야!”
   산새들도 감탄하면서 승민이 머리 위를 신나게 날고 있었다. 앞
서 가던 아이들도 눈이 똥그래진다. 배탈난 우석이 바지는 보송보
송하고 벙어리 승민이 바지가 젖어 있는 걸 보고 알아차린 것이다.
   승민이는 의협심(義俠心)이 강했다. 남의 어려움을 돕는 데 앞장
서 자기를 희생하는 어린이였다. 운동장에서 세게 찬 축구공에 맞
아 쓰러진 친구를 얼른 업고 교문 밖 의원 댁에 달려가기도 했다.
그림(판화)과 달리기에 뛰어나도 조금도 뽐내지 않았다. 100미터
학급 육상대회에서도 만날 꼴찌만 하는 친구에게 슬쩍 양보하는
착한 아이였다. 화장실 청소와 꽃밭 풀뽑기도 앞장이었다.
   나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그런 맘이 아니었다. 말 못하는 벙어리,
듣지도 못하는 귀머거리란 놀림을 받으면서도 판화와 육상 연습에
열심이었다. ‘땅!’ 출발신호 총소리를 듣지 못해서 나중에 육상은
포기하고 나무 판화와 고무 판화에 정성을 쏟도록 했다. 나는 승민
이가 꿈을 키우도록 도왔다. 참으로 뿌듯했다.
   똥바지 대신 입는 아이, 아픈 아이를 업고 숨차게 끙끙거리며
의원 댁으로 달려가던 벙어리 승민이는 역경을 딛고 꿋꿋이 달려
갔다. ‘나무도장 새기기’로 시작해 나중에 읍내에 ‘벙어리 도장포’
를 차렸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는
‘벙어리 도장포’ 아저씨로 소문이 났다. 어릴 적 습성(習性)이 그대
로 이어진 것이다.
   작더라도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마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
는 일이 아닐까. 까만 눈 산새들이 쫑알대며 칭찬하던 그 순박하고
선량한 천사처럼…….

 

 

김완기  ----------------------------------------------------------------

본지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