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나는 내가 바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어디에다 내놓고 보일 수도 없었다. 답답하고 어설픈 내 속을 분해하여 다시 맞출 수도 없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자기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느낄 때 희열을 느끼는가 보다. 먼 길을 돌아 많이 걸어온 걸까. 나의 보이지 않는 삶의 지문에 묻어 항구를 걸어본다."
삶의 지문이 묻어 있는 포구를 거닐며 - 정곤
항구는 텅 비어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폐선에 머물렀다. 방치된 폐선들은 주인을 잊은 지 오래되어 시뻘건 녹물과 개펄을 머금고 있었다. 인간의 삶처럼 녹슬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내 지문을 찾아보았다. 생선과 국밥을 팔던 아주머니의 투박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북적거리며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술 마시던 뱃사람들, 그 뱃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싱싱한 생선들이 가판 상자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항구의 아침, 그물을 손질하며 서해를 그리워하던 뱃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밀려왔다. 골목마다 생선을 말리던 장독대에는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 있다. 분주하던 삶들은 모두 정지되어 어디로 갔을까. 강을 가로막은 방수문 사이로 힘찬 물줄기를 쑥 뿜어내고 있어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줄기 사이로 무지개가 피고 그 밑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자주 왔다. 삼촌을 따라 생선을 사기 위해 왔었고 친구들과 칠선바다의 싱싱한 생선을 구경하고 싶어 왔었다. 어릴 적 거센 서해바다의 물결도 좋았다. 이곳은 전북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 있는 해창이라는 곳이다. 해창海倉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세금으로 쌀을 거두어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었다. 당시에는 진봉반도 주변에 만경강 하구의 심포와 화포, 신평천의 옥포, 그리고 원평천 하구의 해창 등의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는 옛 기록이 있다. 지금은 창고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설치한 방수문이 육지와 바다를 막아 주로 논농사를 짓는 관개용수로 사용되고, 최근까지 어선들이 드나들어 해산물을 사고파는 어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이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방수문 안쪽으로 민물고기 낚시터가 형성되어 수많은 조객釣客들이 찾기도 했다. 나는 이곳이 고향이라 그런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곳이 되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한 편의 그림처럼 응축되어 멀리 객지에서도 서해바다의 물결이 그리웠다.
이십 년 전 어느 겨울, 서리꽃이 곱게 피던 날 동생은 이곳으로 시집을 갔다. 동생은 농사를 지으면서 억척같이 삶을 이어갔다. 밤낮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든든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다며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사는 모습이 부러울 정도였다. 딸 둘을 낳고 단란하게 살았다. 그런데 가끔 입버릇처럼 아들을 낳아야겠다고 하더니 노산인데도 임신을 했다.
출산하는 날, 모 대학병원에서 임신중독으로 산모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동생에게 아기를 살리겠는가. 아니면 당신이 살겠는가?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기를 낳겠다며 남편의 권유도 완강히 거부했다. 그녀는 핏덩이 아이를 남겨두고 아무 장식 없는 시골 방에서 초승달을 바라보며 늙어 갈 겨를도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생의 이별은 항상 익숙하지 않았다. 정말 바보 같은 생이었다. 한동안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다. 어이가 없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원망도 했었다. 난, 남자라서 여자에게 지닌 거룩한 모성애를 몰랐었다.
안개 낀 아침 항구에 바람이 불었다. 물씬 밀려오는 개펄 냄새를 맡아 보았다. 서해의 바닷바람이 괜히 서운하고 싫었다. 언제부턴가 서해바다의 바람 소리를 그렇게 원망하면서 살았다. 비바람이 부는 날 혼자 그녀를 그리워하며 원망하고 괜히 욕을 하며 트집을 잡고 싶었다. 이제 지난날의 일들을 하늘에 대고 이야기하며 속을 풀고 싶어졌다. 아무리 외쳐도 그건 내 슬픈 언어의 되새김이었다.
항구에 올 때마다 밀려오는 기억들, 조금씩 수년간 적어 두었다. 그러다보니 일상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감당하기 어려운 때에도 문득문득 가던 먼 길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간의 일들을 다시 되짚어보면서 원고를 정리하고 사진도 찍어 보관해 두었던 것들을 이 글을 쓰면서 태워버렸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내가 바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어디에다 내놓고 보일 수도 없었다. 답답하고 어설픈 내 속을 분해하여 다시 맞출 수도 없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자기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느낄 때 희열을 느끼는가 보다. 먼 길을 돌아 많이 걸어온 걸까. 나의 보이지 않는 삶의 지문에 묻어 항구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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