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막이나 황무지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다. ‘사랑이 담긴 언어’라는 물을 공급한다. 그래서 끝내 그곳을 아름다운 정원과 쉼터로 만들어 나간다. 드넓은 대지 위에서 이미 크고 많은 일을 해온 일꾼들에게서 나무와 화초를 가꾸는 일을 배워가는, 아직은 모든 게 서툴기만 한 신출내기인 나이지만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 내 몫의 일을 해내고 싶다. 언젠가 정원의 한곳이 나로 인해 아름다워져 있을 그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작가 - 정찬경
모임에 나갔다.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반겼다.
“어이, 정 작가 왔어?”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왁자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전에 다른 모임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웃으며 생각했다.
‘작가라 부를 때 왜 모두 웃었을까, 작가라는 말이 그렇게 웃긴 단어인가 아니면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웃기다는 걸까.’
예전에 한 국제야구대회에서 어떤 투수가 나와 점수를 자꾸 줘서 다 이겨놓은 게임을 아슬아슬하게 겨우 이겼다. 아나운서가 “저 투수, 앞으로 별명을 작가라고 해야겠네요.” 라고 말해 많은 이가 웃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가, 작가….’ 속으로 되뇌어 보다가 ‘발음이 웃음을 유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소리 나는 대로 적어보면 ‘자까’다. ‘ㄲ’이나 ‘ㄸ’ 같은 경음이 들어가는 단어는 우스꽝스럽거나 부정적인 감정, 상대를 비하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 단어가 많다. 예를 들어 꽝, 깡패, 꼴통, 뚱딴지, 짝퉁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게다가 가짜를 짜가라 부를 때 더 익살스런 느낌을 준다. ‘짜’ 자가 앞에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자까와 가짜, 짜가의 말소리가 서로 비슷하다. 발음처럼 작가가 거짓된 가짜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사람 정치적인 사람이야.’ ‘그 사람 정말 배우 뺨쳐.’ 혹은 ‘그 사람 정말 말이 좋아.’ 할 때 언행이 하나 되지 못함에 대한 은근한 비꼼이 들어있듯 ‘어이, 정 작가.’ 하는 말 속에 그런 묵시가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해졌다.
누군가는 친구가 무심코 내던진 농에 뭐 그리 심각히 반응하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희화적인 웃음거리로 잠깐이라도 전락한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작가라는 호칭이 웃음을 끌어온다는 건 내가 진정한 작가다운 삶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럴 만한 글을 쓰지도 못했기 때문일 거라 자책을 하게 된다.
작가의 사전적 의미는 ‘문학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언어를 재료로 하여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이 작가다. 어떤 글을 써야 이 작가라는 고귀한 이름 앞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내 이름 앞에 붙은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환히 빛나게 될까. 남들 앞에서, 아니 내 자신에게만이라도 떳떳한 작가가 되고 싶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글을 쓴다고들 한다. 어떤 이는 치유를 얻기 위해, 어떤 이는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는 고상한 취미로 여가를 선용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글쓰기의 동기 중 첫 번째가 ‘순전한 이기심’이라 했다.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도 있음을 부연하긴 했지만 이기심이 동기라는 말에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 뭔지 모를 뜨끔함을 느꼈다.
주기 위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읽는 이가 사랑과 위로를 받는 글, 많은 이들에게 유익과 지혜를 주는 글…. 이런 글은 자연과 비슷한 글이다. 자연은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기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소년에게 모든 걸 주었다. 하지만 소년처럼 인간은 받기만 하고 줄 줄을 모른다. 태양, 별, 달, 나무, 공기, 물, 구름, 하늘, 많은 자원과 에너지, 영감을 주는 날씨, 무수한 생명체들과 생명 그 자체까지 주기만 하는 자연, 그런 자연을 닮은 글이라면 절로 빛을 발할 것이다.
4년 전 얼결에 등단을 했다. 당시 참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문학의 바다에 방금 요트를 띄운 듯한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아무리 감격스럽고 기쁜 일도 시간이 가면 무뎌지고 시들해진다. 이젠 등단작가라는 사실이 내게 주는 의미나 가치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는 노력도 줄어들었고 작가라는 자의식 또한 점점 희미해지는 걸 느낀다.
작가라는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어 낼 그날을 위해 성실한 땀을 흘리고 바지런한 걸음을 내디뎌야겠다. 덩그러니 버려진 돌덩이를 작업대에 올려놓아 깨끗이 닦아낸 후 쪼아내고 깎아내고 다듬어야겠다. 내 안의 진정한 ‘작가’를 찾아내고 싶다. 더불어 글과 삶이 닮도록 애써야겠다. 김태길 선생의 말대로 먼저 나의 자아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리라. 그래서 작가는 웃기는 사람이 아닌 고맙고 존경스러운 사람,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와 빛을 주어 세상을 따스하고 밝게 만드는 고귀한 이임을 알려주고 싶다.
작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막이나 황무지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다. ‘사랑이 담긴 언어’라는 물을 공급한다. 그래서 끝내 그곳을 아름다운 정원과 쉼터로 만들어 나간다. 드넓은 대지 위에서 이미 크고 많은 일을 해온 일꾼들에게서 나무와 화초를 가꾸는 일을 배워가는, 아직은 모든 게 서툴기만 한 신출내기인 나이지만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 내 몫의 일을 해내고 싶다. 언젠가 정원의 한곳이 나로 인해 아름다워져 있을 그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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