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꽉 쥔 주먹손 위에 파도를 가르던 바다 사나이의 억센 손이 얹어 보인다. 또한 열차 승객을 향해 미소짓는 열차 보안요원의 샤카 사인이 겹쳐 보인다. 상어에게 손가락을 잃은 뒤에도 계속 바다 사나이로 의연히 살아갔을 그의 알로하 정신은 알로하 사카를 할 때마다 하와이안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빛을 발할 것이다. 또 장애를 입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 비웃던 사람들에게조차 정겨운 사카 사인을 보냈던 농부이자 열차 보안요원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듯, 우리 가문에서 아버지의 주먹손 이야기는 대대손손 이어지리라. 그 뭉뚝한 주먹손이야말로 빈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9남매를 버젓이 키워낸 위대한 손이었다고."
알로하 사카와 주먹손 - 최선욱
하와이에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서로 눈만 마주치면 유쾌한 목소리로 “알로하!” 하면서 손인사를 나눈다. 중앙에 있는 세 개의 손가락은 접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세워 흔드는 제스처, 알로하 사카shaka는 하와이 전통 인사법이다. 사카 사인을 보낼 때는 반드시 손등이 상대편을 향하도록 하고 흔들어야 한다. 상어에게 먹혀 없어진 세 손가락을 드러내지 않았던 서퍼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하와이안들은 알로하 사카 속에 담긴 서퍼의 불굴의 정신을 존중하며 계승하고 있다. 이것을 일러 ‘알로하 정신Aloha Spirit’이라고 한다.
‘알로하’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등 여러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애초에 알로하Aloha라는 단어는 친절, 조화, 기쁨, 겸손, 인내에 해당하는 하와이어의 머릿글자를 따서 조합했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하와이안 정신이 깃들인 인사말이라 풀이할 수 있다.
하와이 섬에서는 해마다 상어의 밥이 되는 사람이 생겨나도 여전히 원주민들은 상어를 보호한다고 한다. 상어를 되살아난 조상의 혼, 즉 가정 수호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어의 이빨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상어가 바다의 풍랑에서 가족을 지켜주고 바닷속 고기를 모아주어 풍성한 삶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상어를 숭배하고 있다. 상어는 성장이 늦고 번식률이 낮기 때문에 과도한 어획을 자제해야만 해양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바닷속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상어가 사라지면 하위 어족 자원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원주민들은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가. 상어 숭배도 어쩌면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레 익힌 알로하 정신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하와이를 다녀온 후 더욱 상어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언젠가 TV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에서 상어 포획 현장을 방영한 적이 있다. 샥스핀, 스쿠알렌, 캐비아 등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갈수록 많은 상어가 무차별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상어의 지느러미가 값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산 채로 지느러미만 잘린 채 바다에 버려지는 상어가 세계적으로 매년 1억 마리 정도란다. 상어의 생명력은 지느러미에 있다. 그것이 없이는 멋지게 헤엄칠 수도, 먹이를 낚아챌 수도 없다. 몸통만 덩그마니 남은 상어는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부력을 잃고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핏물을 하염없이 쏟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차라리 상어를 조상신의 생환으로 보는 하와이 원주민의 순진함이 진실로 기꺼웠다.
내가 맨 처음 다녀온 해외여행지가 하와이다. 연중 온화한 열대성 기후에 천혜의 청정지역, ‘태평양의 진주’ 혹은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하와이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로 꿈꾸던 곳이었다.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하와이의 상징 꽃목걸이를 달아주며 환대해 줄 때부터, 부드러운 바람결에 형형색색 꽃이 흐드러진 가로수, 호텔 입구에서부터 코를 자극하는 플루메리아 향기 등 이국적인 풍광에 취하기도 전에 꽃향기에 취해버렸던 추억을 떠올리며 30년 만에 다시 하와이를 찾게 되었다.
하와이안의 매력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여인들의 훌라춤. 초침보다 빠른 리듬으로 흔들어 대는 무희들의 동작은 예나 다름없이 섹시하고 아찔하였다. 그림같이 펼쳐진 쪽빛 바다와 청명한 하늘이 맞닿아 있고, 가없는 수평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야자수들이 쪽 곧은 몸매로 무리지어 서 있는 환상의 섬. 하와이 해변의 대명사격인 와이키키에는 겨울철임에도 여전히 새파란 젊음이 들끓고 있었다.
30년 전보다도 하와이는 더 싱그럽고 발랄하고 멋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세월을 이길 장사 없다고, 이젠 빡빡한 일정으로 피곤에 지친 여행은 무리다. 주마간산 격으로 수도가 있는 오아후섬 하나만 돌았다. 마음은 여전히 와이키키 파도에 몸을 맡겨보고도 싶고, 물속이 너무나 맑은 하나우마만(bay)에서 스노쿨링하며 바닷속 물고기를 쫓고도 싶었다. 섬 면적이 가장 크고 화산 활동이 진행 중인 빅아일랜드에 가서, 활화산 분화구 불구덩이에 산다는 불의 여신 ‘펠레’가 화가 나서 머리카락이 용암처럼 새빨개지는 모습을 경비행기 속에서 바라보는 체험도 해야 하는데……. 여행 뒤엔 항시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하면서 ‘알로하 사카’의 또 다른 유래를 알게 되었다는 점, 그 속에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주먹손을 떠올리며 그분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를 바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옛날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하마나 칼릴리Hamana Kalili라는 농부가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사탕수수를 압착기에 넣고 짜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그만 실수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성실하기 이를 데 없는 그였지만 그곳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마침맞게 열차 보안요원 자리가 생겼다. 열차가 오면 손을 흔들어 사람들에게 사인을 보내는 일이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치켜세워 흔드는 그의 독특한 사인을 주변 사람들이 인상 깊게 보고서 그 후론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처럼 손가락을 접어서 인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생 농사꾼이셨던 아버지. 빈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하기까지, 당신이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9남매 자식들 다 학교 보내고, 한 명씩 한 명씩 분가시키기까지 온통 신산한 삶을 맨주먹으로 헤쳐나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발동기인지 경운기인지 체인에 손이 딸려 들어가 손가락 세 마디를 잃었다. 그나마 왼손인 게 다행이라며 여전히 땅을 일구는 일에 주춤거릴 새 없이 바지런히 움직이셨다. 그런 중에도 손가락 장애로 인한 불편한 점이나 불평을 들어 보지 못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고, 아버지는 불평 불만할 여유가 없이 사셨다. 그래서인지 살아생전에도 그랬고 돌아가신 후에도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손은 다친 손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마치 애초부터 그 모습인 것처럼. 손가락 장애가 때로는 부끄럼일 수 있고 여러 가지 불편함도 많으셨을 텐데, 한 번도 아버지 입장에 서서 주먹손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자책이 이제야 든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남 앞에서는 항상 손을 꼭 쥔 모습만 보이셨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중에 아마 아버지의 손가락 장애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내 아버지의 꽉 쥔 주먹손 위에 파도를 가르던 바다 사나이의 억센 손이 얹어 보인다. 또한 열차 승객을 향해 미소짓는 열차 보안요원의 샤카 사인이 겹쳐 보인다. 상어에게 손가락을 잃은 뒤에도 계속 바다 사나이로 의연히 살아갔을 그의 알로하 정신은 알로하 사카를 할 때마다 하와이안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빛을 발할 것이다. 또 장애를 입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 비웃던 사람들에게조차 정겨운 사카 사인을 보냈던 농부이자 열차 보안요원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듯, 우리 가문에서 아버지의 주먹손 이야기는 대대손손 이어지리라. 그 뭉뚝한 주먹손이야말로 빈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9남매를 버젓이 키워낸 위대한 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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