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운전자들의 면허기간을 줄이거나 아예 운전 가능 상한연령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을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고령운전자들이 지나치게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
고령 운전자 - 맹광호
서울 성모병원 사거리에서 반포대교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려다, 급히 왼쪽으로 한 차선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을 알았다. 서둘러 방향등을 켜고 곁눈질을 해가며 차선을 바꾸려는 순간, 그때까지 다소 거리를 두고 천천히 오던 차 한 대가 갑자기 속력을 내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내 차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내 차의 앞부분이 옆 차선에 들어서면서 왼쪽 백미러가 그 차 오른쪽 백미러를 때렸고, 그로 인해 두 차의 미러 덮개가 조금씩 깨졌다. 부득이한 상황이었긴 하지만 역시 내가 끼어들기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내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차가 외제차라는 점이었다. 백미러 하나를 바꾸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어떤 외제차 백미러 값은 작은 국산 자동차 한 대 값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온 그 차 운전자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나이 든 나를 본 그는 잠시 멈칫하는 눈치였다. 당연히 내 과실이라고 판단한 그가 견적을 받아 연락을 하겠으니 명함을 달라고 했다. 나는 여러 해 전에 대학을 퇴직한 사람이어서 지금은 명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이에 내 휴대폰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종이를 받아든 그의 표정이 처음 나에게 다가올 때보다는 조금 부드러워 보였다. 하루 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지낸 그날 저녁 그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잔뜩 긴장을 한 채 다음 얘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그는 “정년퇴직하신 교수님이라고 하셨지요? 제 차는 제가 처리하도록 할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그 대신 연세를 생각해서 이제부터는 정말 운전 조심하십시오.”라고 했다. 나는 너무 감격해서 거의 눈물을 쏟을 뻔했다.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터널에서 있었던 대형 트럭사고의 운전자 나이가 76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고령운전자 문제가 한동안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이 있다. 실제로 최근 교통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70세 이상 우리나라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지난 10년 사이에 4배로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전에 없이 빠른 인구 노령화로 고령운전자의 절대수가 늘어서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연령대별 사고 발생비율로 보아도 이 연령대의 사고가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여러 기능이 떨어지고 특히 안전운전에 필요한 시력이나 인지능력, 그리고 신체 반응능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사고위험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노인이 되면 되도록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이유다.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접어든 대부분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벌써부터 고령자 운전사고 예방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65세부터 차츰 운전면허 기간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적성검사 기준도 강화하고 있으며, 80세가 넘으면 아예 면허발급을 중지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부터 6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해 면허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고 있는데 최근 고령운전자 사고가 늘면서 2018년부터는 75세 이상에 대해 이 기간을 3년으로 줄일 것이라고 한다.
별것도 아닌 자랑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40년 넘게 운전을 해오면서 가벼운 접촉사고 서너 번 말고는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운전을 잘 해왔다. 이제까지의 이런 행운은 내 운전기술이 좋아서라기보다 평소 속력을 많이 내지 않는 저속운전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에서도 나는 80km를 넘어 본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저속운전 습관은 그동안 내가 운전한 차들이 대부분 중고차들이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30대 초반 미국에 유학 가서 운전을 처음 시작한 나는 새 차를 사서 쓸 형편이 아니었다. 미국 친구들로부터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공짜로 얻어 쓰거나 몇 백 불짜리 값싼 중고차를 사서 운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차를 몰곤 했다. 이런 저속운전 습관을 나는 국내에서도 지금껏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이런 저속운전만으로 안심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신체반응 능력은 이런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령운전자들의 면허기간을 줄이거나 아예 운전 가능 상한연령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을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고령운전자들이 지나치게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1960-70년대 여성 운전자들의 숫자가 적었을 때, 서툴게 차를 운전하는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 남성운전자들이 “집에서 살림이나 할 일이지!” 라고 중얼거리며 언짢은 내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성운전자가 많아지면서 더 이상 이런 현상이 없어지고 지금은 오히려 주차장마다 여성주차우대 구역까지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역시 사회적 운전약자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고령운전자들에 대해서도 운전 중이나 주차를 할 때 젊은 사람들이 조금은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한 동棟짜리 주상복합 건물인 우리 아파트에는 10여 년 전 처음 입주를 시작할 때부터 주민용 주차장 상위층에 70세 이상 고령운전자에게 주차구역을 우선 배정해 주던 전통이 있었다.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주민모임에서 참석자들 모두 동의했고 그런 우리 아파트를 주위에서도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몇몇 젊은 주민들이 극구 반대를 하는 바람에 고령운전자들도 이제는 매년 제비뽑기로 주차 구역을 배정받고 있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제비뽑기에서 나는 지하 6층 좁은 구석자리 하나를 배정받았다. 들고날 일이 여간 걱정이 아니다.
2009에 갱신한 내 운전면허 기간이 금년 2018년 5월로 끝난다. 이번에 다시 면허를 갱신한다면 3년짜리가 될 것이다. 이 기회에 아예 운전을 그만두어야 할지 어떨지를 놓고 요즘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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