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계간문예/계간문예 본문

[계간 계간문예 2015년 봄호, 시] 울음이 터졌다 외 1편 - 강우식

신아미디어 2015. 6. 26. 16:22

계간 『계간문예』에서 '강우식'님의 시 2편을 소개합니다.

 

 

 

 

 

 울음이 터졌다    외  1편        /  강우식


사람들은 같이 살던 짐승들이 죽으면
더러는 묘도 만들고 혈육처럼 슬퍼하나
꽃나무들은 “어 죽고 말았네”
“아깝군” 정도로 버려지면 그만이다.
나는 돌아가신 장모께서 주신 설중매 분을
한 30여 년 나름 정성스럽게 돌봤으나
수명이 다했는지 시름시름 마르며
주는 물도 못 먹더니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같이 생명을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감정을
잎으로 줄기로 뿌리로 껍질로
말 대신 온몸으로 나타내던 설중매 한그루.
나이 들었어도 어린애 돌보듯이
처음과 끝이 더하고 모자람이 없이
한결같아야 했던 설중매.
누가 나이테로 물무늬 짓는 나무들에게
묵묵한 정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말을 못하지만 마르며 앓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그동안 사귄 정 때문인지 왈칵 울음이 터졌다.

 

 

 

 

 국화빵


추억은 늘 새롭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유년의 일들 중에
국화빵이 있다.
엄동설한의 부두거리에서
동네 친구끼리 누군가 돈이 생겨서
사먹었던 국화빵.
무쇠의 빵틀에서 구워 나오기 바쁘게
서로가 게눈 감추듯이
입천장이 데는 줄도 모르고
아니 개의치도 않고
먹기보다 삼키기 급했던 국화빵.
그 낱낱에도 먹고 살려는
생존에의 엄연한 현실이
알게 모르게 깃들은 대오 속에서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는
매번 꼴찌였었다.
그래서 인생도 늘 꼬라비였다.
국화빵 하나만큼 귀신같이 먹던 친구들
다시 만나 옛날처럼
잊었던 그리움을 뜨겁게 먹고 싶다.
오늘 이 얘기를 마누라 앞에서 나누니
국화빵 앞에서는 불문하고 모두가 같았는지
둘이서 눈물 나게 웃어본다.
부부끼리라도
사는 게 이렇게 같았으면 좋겠다.

 

 

강우식  ----------------------------------------------
   66년 《현대문학》지로 등단, 저서 《강우식시전집》 등 다수, 김만중문학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