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5월호, 제163회 신인상 수상작] 내 마음의 섬, 홍도 - 송신근

신아미디어 2015. 5. 1. 13:42

"거친 파도와 험한 노동에 따뜻한 행복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섬사람들의 삶을 절규하듯 바닷바람이 처연하게 가슴을 적신다. 홍도는 나의 꿈이요, 뿌리의 원천이다."

 

 

 

 

 


 내 마음의 섬, 홍도         -  송신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면 나는 주로 섬을 찾는다. 바다에 떠있는 섬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섬’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태생적 고독 때문일까, 섬을 만나면 내 마음이 열리고, 교감이 이루어지다가 마침내 섬이 된다. 그래서 섬 여행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억새꽃이 산바람에 은빛 물결을 치는 가을의 끝자락, 아득한 어린 시절로의 시간 여행을 해보고 싶어 서해의 붉은 섬인 고향 홍도에 다녀오기로 했다. 내 인생의 출발점인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을 다 잊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동안 벌써 마음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니 답답하던 머릿속이 트이고 마음도 푸른 자연이 된다. 흔적도, 빛깔도 없는 쓸쓸한 바람 속에서 삶의 집착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니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가을인데도 홍도항과 연안여객선 터미널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홍도 관광을 하려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고 관광을 마치고 육지로 가려는 사람들은 쾌속선에 승선하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속에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가는 사람과 고독을 안고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에 희비쌍곡선이 흐른다. 어쩌면 삶은 떠나보내는 것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바다 물결 따라 흐르고 사연은 배에 실려 떠도는 이곳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터미널 이층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항구의 풍경을 내려다보니 내 인생의 파노라마가 커피 잔 속에 투영된다. 그래서 커피 맛이 쓴 것일까.
   내가 태어난 2구 마을로 산길을 걸어서 간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하늘과 바다와 섬들이 삼위일체가 된 원초적인 풍광들을 관조하고, 그 속에 내 마음을 정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가까이 흑산도와 멀리 가거도, 태도가 아련하게 보이고 푸른 바다가 넘실넘실 춤을 춘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이 산길 위에서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환상에 젖어든다.
   ʻ깃대봉ʼ을 지나 ʻ큰재봉ʼ에 이르자 산 아래 고향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순간, 울컥 감정이 솟구친다. 사계절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다양한 해산물을 찾아 바다로 나가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며 삶의 깊이를 쌓았고, 대낮처럼 밝았던 달빛 속에 홀로 마을 앞 갯바위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무수한 생각과 꿈을 매만졌던 젊은 시절, 뒤돌아보니 고향은 나를 성숙시킨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마을 앞바다는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출렁거리고 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일렁거리는 바다의 율동은 어쩌면 섬사람들의 삶을 영속시키는 힘일 것이다. 저 바다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장가를 불러주던 근원적인 어머니이기도 하다. 삶의 절망 끝에서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를 찾아가는 것은 바다에 대한 깊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마을은 서정적인 풍광에 낭만이 가득한 곳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낙원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듯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곳이다. 섬에 폭풍이 지나가면 바람은 초속 20미터 이상 불어 집채만 한 파도가 마을 앞 바위에 부딪치며 우리 집 마당까지 바닷물이 떨어지곤 했다. 섬을 꼭 부숴 버릴 것 같은 성난 파도를 보며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튿날 동녘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함께 바다가 잔잔해지고 어부들은 출어준비를 한다. 눈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 모습들은 보석처럼 가슴에 새겨져 어디에 있더라도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고 그 자리에 볼품없는 건물이 한 동 서 있다. 놀이터는 나무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고 녹슬어 부식된 놀이기구가 잡초 속에 쓰러져 있다. 시대 변화가 만든 거센 물결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 한세상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쌓여온 추억들이 그리운 편린들로 머릿속에서 머문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들이 하나 둘 산처럼 쌓여있다. 세상과 인연을 맺어가며 새롭게 쌓인 일들이 기쁨과 분노, 슬픔 등의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현실적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지금 2구 마을에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커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젊은이들은 일터를 찾아 육지로 나가버리고 노인들은 외롭고 고달픈 삶을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가며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그때의 고향 모습을 찾을 길 없다. ‘절대 고도’였던 홍도가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1구, 2구 마을 집집마다 전기시설이 완비되어 냉장고,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마을 도로와 항만시설이 현대식으로 잘 정비되었다. 친구들과 자주 놀러 다니던 등대도 등탑 부분만 그대로고 신축하여 옛 건물은 볼 수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도 사라져 간다. 이제 꿈속에서 그리던 고향은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그때 그 모습이 가슴속에서라도 영원히 남아 있기를 소망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거친 파도와 험한 노동에 따뜻한 행복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섬사람들의 삶을 절규하듯 바닷바람이 처연하게 가슴을 적신다.
   홍도는 나의 꿈이요, 뿌리의 원천이다.

 

 

송신근  ---------------------------------------------
   전남 신안 출생. 마산대학 백남오 수필창작교실 공부 중. 2014년 경남문학 신춘문예 우수상 수상. 현, 진등재수필문학 회장. 시사랑문화인협의회 영남지회 회원.

 

 

당선소감


   꿈을 꾸면 고향 바닷가에 내가 서 있습니다.
   고향 홍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린 시절 추억은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부자였던 섬마을 아이들, 그 따뜻하고 넉넉하던 유년 시절의 풍경이 지금의 도시생활 속에서 쓰러져가고 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진달래꽃이 유난히 예쁘게 피어있는 봄날 오후, 훈훈한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마음은 화끈 달아올랐으나 몸은 덜덜 떨고 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이 전해지려고 그랬을까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가로수 아래 떨어진 벚꽃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먼저 이런 기쁨의 장을 열어주신 수필과비평사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큰절을 올립니다. 문학을,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시고, 늘 제 서투른 감각들을 짚어주시는 백남오 교수님 감사합니다. 마산대 백남오 수필창작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문우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게 수필은 마음으로 읽는 세상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