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4월호, 제162회 신인상 수상작] 아제 - 최경하

신아미디어 2015. 4. 10. 11:17

"가슴 깊숙이 감사할 일을 묻어둔 사람은 행복하다. 넉넉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며 성장한 아제는 항상 보은의 마음을 가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은혜라며 마음을 곱게 품고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도 아제가 늘 고맙다."

 

 

 

 

 


 아제        -  최경하


   신부전증으로 십여 년째 고생하는 아제를 면회하러 갔다. 삼복더위에 병원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알싸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입원환자 현황판 속에 ‘금선’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어렸을 때부터 ‘금성아제’라고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집에서 어른들이 부르던 호칭을 따라 불렀었는데 이제 보니 본명이었던 모양이다.
   침대 위에서 구부정하게 돌아누워 있는 모습이 아제가 맞다. 머리칼은 부스스하고 긴 병에 검은 얼굴은 북어처럼 바짝 말라 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다가 놀라워하며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어느새 젖은, 불그레해진 큰 눈이 돌아가신 엄마를 닮았다.
   아제은 겨우 여남은 살 때 6·25동란으로 피난 갔다가 부모님을 잃었다. 졸지에 고아가 되었으나 고아원에 입소하지도 못했다. 어쩌다가 직물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지만 당장 먹고 자고 할 공간이 시급했다. 입에 풀칠도 어렵던 시절, 어린 나이에 가족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밑절미가 깡그리 없어진 셈이다. 그런 와중에 공장 근처에서 내 부모님을 만났던 것이 우리 집과 아제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엄마는 무남독녀로 외롭게 자란 탓에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홀로 서 있는 아제를 보고 당연히 연민을 가졌을 것이다. 서로 외로운 처지라는 이유가 통했을까. 오갈 데 없는 아제를 집으로 처음 들일 때에는 하늘에서 툭 떨어진 막냇동생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슴을 닮은 동그란 눈이며 온순한 성격이 실제로 친남매처럼 닮았다.
   아제는 허약한 데다가 고단한 공장 일 때문에 병치레도 잦았다. 입맛을 잃어 굶고 출근을 하면 엄마는 죽을 끓여서 공장 담 너머로 죽 그릇을 넘겨주곤 했다. 엄마는 친자식 대하듯 했다지만 속속들이는 혈육만큼이나 했을지는 아제만 알 일이다. 어린 마음에 헤어진 부모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마음 한쪽에 둔 외로움이 키를 넘는 담장보다 더 높았을 수도 있다.
   성실이 최고의 처세술이었던 아제는 몸이 아파도 결근을 몰랐다. 물 한 모금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다. 또래들과는 걸음걸이도 달랐다. 고사리손에서부터 하루하루 익힌 기술이 쑥쑥 자라서 마침내 큰 직물공장에서 최고기술자 대접을 받았다. 그 결과 약관의 나이에 청춘만큼 빛나는 집을 장만한 젊은이가 되었다.
   엄마는 아제에게 본보기상이었다. 덩실한 집 한 채를 마련하고자 손톱 자랄 틈도 없이 움직이는 엄마의 성실을 닮아갔다. 엄마는 집의 자취생이 더위를 먹으면 칠성시장으로 쫓아가 수박을 사와서 먹였다. 자취하는 학생들에게는 전기세도 받지 않았다.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제에게는 교육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집에서 살았던 환경이 아제에게는 복이었을 수도 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아제는 배필도 엄마를 기준 삼아 견주어 보고 결혼했지 싶다.
   언젠가, 여름휴가를 내서 아제 가족들이 놀러 왔었다. 아제는 소원대로 삼남매를 두어 호박넝쿨같이 올망졸망한 가정을 일구었다. 아제의 가족들은 촌수를 써가면서 우리 식구들에게 언행을 깍듯이 했다. 엄마는 볼 때마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손을 꼭 잡았다. 그런 아제를 열 손가락 중에 엄지처럼 귀히 여겼다. 자연스레 진한 육친애를 느꼈다. 두 분의 얼굴에는 법열에 든 스님처럼 행복감이 돌았다. 지난날 이야기꽃을 낮 내내 피우고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 아제가 되돌아왔다. 황토색 민속장판을 전봇대처럼 둘둘 말아 어깨에 올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찢겨졌던 큰방 장판을 눈여겨본 후 신작로 장판 가게에서 사 들고 오셨던 것이다. 한여름날 눈동자가 따갑도록 떨어지는 흥건한 땀방울에도 아제의 손놀림은 빨랐다. 순식간에 헌 장판을 걷어내고 새 장판으로 말끔히 깔아 놓았다.
   어릴 때부터 바지런함이 어련하랴. 엄마의 힘든 짐도 덜어주고 요모조모 집안일을 예사로이 보지 않았다. 내 집이라 여기니 빈틈이 없다. 그날 밤, 나는 새 장판에 누워서 몸을 흔들며 팔다리로 미끄럼타기를 하고 놀았다. 내 어찌 모를까. 그날 깔았던 새 장판의 감촉이 여태껏 선명하게 살아있다. 지금 생각해도 몸이 매끌매끌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해도 불볕 여름이었다. 아버지 기일에 오신 아제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엄마와 마주앉았다. 같은 해에 엄마는 폐암 선고를, 아제는 신부전증 진단을 나란히 받았다. 어쩌면, 적색경고 신세까지 숙명처럼 닮아 버렸다. 아제는 엄마의 종착지를 짐작이라도 한 듯, 상여처럼 앙상한 엄마의 손을 놓지 못했다. 지난날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낱낱이 꺼내 주고받았다. 피붙이를 또 잃는다는 생각에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리라. 웃다가, 울다가, 침묵도 하다가 헤어졌던 그날 밤이 두 사람에게는 마지막 만남이었다.
   가슴 깊숙이 감사할 일을 묻어둔 사람은 행복하다. 넉넉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며 성장한 아제는 항상 보은의 마음을 가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은혜라며 마음을 곱게 품고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도 아제가 늘 고맙다.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신다. 옆 침대 환자에게 ‘조카’라며 나를 소개한다. 예전에는 병원비가 비싸서 몸 아픈 게 이만저만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며 그 시절을 아찔해 한다. 몸살을 앓을 때마다 생색 한 번 없이 자식처럼 돌보아 주었던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 산소에는 얼마 만에 가보느냐고 몇 번을 묻는다. 그 힘 있고 조리 있던 말솜씨는 오간 데 없고, 가래 끓는 목소리가 엄마의 부정맥 소리와 흡사하다.
   병원 밖으로 나와 그늘 벤치에 잠시 앉았다. 돌아가신 엄마와 아제를 보면서, 타인도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나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연이란 얼마나 끈끈하며 아름다운가. 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바람처럼 두 분을 떠올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최경하  -----------------------------------------------------
   대구 출생. 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 수료. 경주수필 회원. 한서사회복지재단 아하브마을 사무국장.

 

 

당선소감
   이른 출근길, 꽃샘추위가 몹시 을씨년스럽다. 차가운 바람 앞에 인간의 나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람이 매섭고 찬 날에는 살아있는 것이 모두 불쌍하다. 아침부터 춥다는 이유 하나로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 강하게 발동한 나는 근무시간 내내 거창한 ‘인생의 의미’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기다리던 ‘당선전화’를 받지 못함에 대한 합리화를 구상하면서 말이다. 그때 ≪수필과비평≫에서 전화가 왔다. 나의 고민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나의 소망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는다는 성취감과 내 지적 기쁨이 함께 밀려온다. 고맙고 감사하고 으쓱하다. 나에게 오늘은 ‘바람 불어도 좋은 날’이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오늘 같은 추위에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글을 쓰겠노라는 다짐을 강하게 하면서 말이다.
   수필 등단을 대놓고 자랑을 할 수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글쓰기 훈수만 3단인 여동생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 외에 친구들에게는 우아하게 우회적으로 자랑할 참이다. 더 깊어진 눈빛을 하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