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표현과 구성의 묘미를 아는 것 같다. 흥분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회상한다. 아버지가 잘라주던 손톱의 추억이 아버지의 슬픈 인생이야기로 풀어내 전개에 무리가 없고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슬픔을 담아내는 글 솜씨도 좋다. 사춘기다운 아버지에 대한 반항도 반전으로는 훌륭했고 곧이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자식의 손톱을 잘라주면서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하는 결말의 여운도 돋보였다. 그러나 매양 비슷한 표현들과 은유적인 표현들이 자주 눈에 띄어 지루한 면도 없질 않았으며 때로는 직설적이고 정직한 표현들도 감동을 자아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본 잘 쓴 수필 한 편이다."
봄날의 설화 외 2편 / 강미희
어떤 기억은 아프고, 달콤하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또 어떤 기억은 점점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낯섦 속에는 긴장감과 설렘이 포개어져 있다. 그날 내 손톱을 잘라 주었던 아버지는 낯설었다. 순하게 작은 손을 맡긴 채 두터운 큰 손에 나는 시선이 멈추었다. 뒤뜰에서 불어오는 아카시아 향에 가슴이 몽글거렸다. 내 속에 작은 고래가 간질거려 내 몸의 질량이 느껴지지 않는 멀미가 났다. 앞마당 텃밭의 살구나무는 연분홍 봄볕을 털어내고 초록 열매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봄날 흙 만지며 놀던 손톱은 늘 지저분했다. 방바닥 위로 떨어져 나간 손톱은 미련 없어 보였다. 다듬어진 손톱의 끝은 동그라니 여름이면 주황으로 익을 살구 엉덩이를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이렇게 동그랗게 자를 수 있을까. 열한 살의 나에겐 닿을 수 없는 완성도였다. 몇날 며칠을 문득 문득 손톱을 쳐다보며 그 둥글음에 감탄했다. 난 애교 많은 딸이 아니어서 열 개의 손톱을 자르는 그 시간이 말없이 지나갔고 아버지는 무어라 하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 속에 손톱을 잘라 준 것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또 잘라 주었으면 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맏이로 자라나 일찌감치 응석이나 바람이나 이런 것은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내안의 기질과 외부환경이 본능적으로 알게 했다.
아버지는 조용한 분이었다. 손재주가 좋아 집안의 사소한 것을 잘 만들었다. 마당의 강아지집도 뒤뜰의 물놀이 공간도 아버지의 작품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그 치열함을 가장으로 살아왔다. 회사에서 퇴근할 때 아버지가 왼쪽으로 가느냐, 오른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우리 가족의 그날 저녁풍경은 달라진다. 퇴근길에 막걸리 마시는 것을 좋아하였다. 동네 어귀엔 작은 잡화가게, 방앗간, 이발소, 막걸리 집은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살고 하는 일에 관여했다. 술을 마시면 늘 아버지를 버릴 때까지 마신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버리려고 마시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 버림 속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명료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처음 하는 말처럼 자꾸 한다. 내면의 아버지는 열 살 아이가 되어 슬픔 알코올을 하염없이 토해낸다. 울타리 안을 잘 지킨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불속의 나는 오른쪽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어느새 잠이 든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온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엄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빳빳하게 풀 먹인 아버지의 출근복을 다려 준비한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지킬 수 있음이다.
아버지는 갓난아기 때 엄마를 잃고 누나와 형수 밑에서 자라났다. 시장에 가던 형수의 뒤꽁무니를 좇다 놓쳐버린 어린 아버지는 논두렁에 앉아 울기도 했다고 한다. 어미에 대한 허기짐은 어른이 된 다음에도 늘 가시로 다가와 아버지를 괴롭힌다. 술은 아버지의 진통제였다. 과거가 현재를 흔들어 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사촌 오빠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손톱에도 영혼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면 생쥐가 그 손톱을 주워 먹고 또 다른 내가 된다는 이야기, 아버지는 어린 시절 사랑이 허기질 때마다 손톱을 너무 많이 물어뜯어 먹어서 그 어린아이가 아버지 속에 계속 머물러 자꾸 부르는 것일까!
그 이후 나는 손톱을 몇 번이나 잘랐을까, 중학교 교복을 입게 되었고 아버지는 여전히 진통제를 마시고 들어온 어느 봄날 밤이었다. 작은 방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소리에 내 심연의 알 수 없는 곳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뾰족한 무엇 때문에 잠을 뒤척였다. 다음날 오후 술을 마시지 않고 아버지가 내게 미래에 대한 훈계를 하였던 것 같다. 어제 밤 균열을 비집고 나온 내 손톱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할퀴고 말았다.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요구하며 처음으로 대들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에 대한 나의 심장은 돌이 되고 건조한 예의만 남았다. 그땐 아버지를 이해하기에는 어렸다.
혼란스런 이십대는 가끔 외부를 바꾸어 내면까지 채워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이땐 손톱을 바짝 자르지도 않았고 길러진 손톱에 색색깔 입혀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금방 까이고 벗겨진다.
결혼을 하여 첫 아이를 낳은 한 달쯤 지났을까, 아기가 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퀼까하여 여물지 않은 손톱을 잘라줄 때였다. 아기의 손톱 끝에서 꿈인 듯 아카시아 향이 코끝으로 달려왔다. 그때는 구월이었다. 작은 손톱 끝에서 기억이 자꾸 부풀어 아버지는 왜 그날 내 손톱을 잘라줄 마음이 생겼을까. 그것은 어느 봄날 찾아온 뜨거움의 잔잔한 표현이었을까. 내 속의 뾰족함을 자르고 나니 아버지가 평상시 내게 보냈던 따뜻한 눈빛으로 내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봐 주었던 일들이 머리에서 심장으로 들어왔다. 만져지지 않던 사랑의 기별이 먼 길을 돌아 젖비린내 나는 내 아이의 손끝에 그렇게 밀물되어 와 닿았다. 내 눈빛으로 내 육신으로 매일 매일 크는 아이의 손톱 끝에 웃자란 하얀 싹을 자르며 나는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가야 동그란 손톱으로 너도 할퀴지 말고 세상도 할퀴지 마라.
슬픈 설화를 가슴에 지닌 채 휘몰아치는 산업화의 큰 바퀴 속에서 울타리를 지켜내려 애쓴 아버지, 진통제 속에 가끔은 버림이 필요했으리라.
엄마의 시간
고모는 세상을 뜨기 전 치매로 십년 가까이 고생을 했다. 생전에 엄마와 함께 몇 번 병문안을 갔다. 고모의 눈빛은 낯설었고, 하는 말이 사리 분별 있는 어른의 말도 아니고 천진한 어린것의 말도 아니었다. 고모의 시간은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되어 엉키고 설켜 출구를 잃어버렸다. 시간을 잃어버린 말들이 엉킨 사이를 비집고 삐죽삐죽 튀어나와 질문을 한다. 답이 곤란하다. 이미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은 다시 난감하다. 그 질문이 답이 되기도 전에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강한 표현으로 달음박질친다. 큰 소리로 집안을 호령하던 고모는 과거 삶의 파편들을 맥락 없이 쏟아냈다. 고모는 당신의 동생 이름은 기억하면서도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였다. 고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고모 기억의 총량 안에 나에 대한 조각도 암실 어딘가에 각질이 되어 말라붙어 있을까. 고모는 망각의 강가 한가운데 그렇게 주저 앉아버렸다. 살아 퍼덕이던 생명의 언어는 이제 삶의 그 끝에서 대롱거릴 뿐 우리에게 건너와 의미가 되기는 어려워졌다. 고모는 마치 삶의 과정이 망각의 과정인 것처럼 갈 때까지 그 과정에 충실했다.
고모를 보고 돌아오는 길 엄마의 눈빛이 늘 서글프다. 그 서글픔은 무엇일까. 고모의 영혼과 육체의 불일치에 대한 서글픔인지, 한인간이 생의 끄트머리를 인지 못함에 대한 측은지심인지, 아니면 엄마에게 다가올 미래 때문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엄마는 나이듦에 대한 서글픔보다 혹시 올지 모를 치매를 두려워했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일 것이다 특정 지워지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울 뿐이다. 그 무서움은 둘째딸을 잃고 난 후 오래된 기억에 불빛을 켜기 시작했다. 아득한 골짜기 숨어 있던 기억들이, 엄마에게 반딧불 작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암과 힘겹게 싸우던 동생은 고모가 떠난 즈음에 우리 곁에서 떠나버렸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명을 다한 것이 엄마의 탓인 것처럼 날카롭게 찔러왔다. 동생이 어렸을 때 젖을 마음껏 먹이지 못한 기억들, 어느 날 잠결에 뜨거운 것에 등이 데어 어린것이 고생했던 기억, 부족함에 대한 기억들은 엄마를 각성시키며 깜박거렸다. 그 불빛의 의미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기억들로 확대되고 재생산되었다. 엄마의 눈물의 재고량은 늘어만 갔다. 차라리 동생에 대한 부분만이라도 치매에 걸렸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했다. 지켜보기 힘든 나의 이기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의 안쪽 작은 기억마다 불 밝히는 것은 엄마가 동생을 보내는 경건한 의식이었으며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이었다. 그 불빛에 겁먹은 치매는 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엄마는 마치 삶의 과정이 지난 시간의 안쪽에 남아 있는 흔적들에 불 밝히는 과정인 것처럼 갈 때까지 그 과정에 충실했다.
고모의 기억은 무당벌레만한 크기로 왔다가 포르르 날아가 버리고, 엄마의 기억은 바위처럼 굴러와 짓누르며 죽음 저편까지 지고 가야했다. 삶의 과정에 불행은 균등하게 오지도 않았고 더더욱 예고는 없었다. 그저 예기치 못한 어느 날 오거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붙어 있다가 스멀스멀 약 올리며 다가왔다. 그것은 예의도 없고 인정도 없는 무색무취의 도둑이다. 현재를 야금야금 훔쳐 먹는 비정한 도둑이다. 그렇게 두 분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도둑맞았다. 두 분이 불행했다고 기억하는 것도 어쩌면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기억 자체가 지워진 고모는 불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아픈 기억으로 해석하고 앞에서 오는 시간들을 시간의 안쪽에서 견뎌내고 있었다. 기억은 두고 가야 하는 것일까, 가져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삶 자체일까. 시간 바깥에서의 고모의 삶, 시간 안쪽에서의 엄마의 삶, 그것은 앞에서 거침없이 달려드는 현재를 주어진 만큼 살아내는 처절한 방법이었다.
빈들에 피어나는 자줏빛 자운영 꽃도 한때는 향기로 가슴 벅찼다. 엄마의 삶이, 고모의 삶이 찬란하거나 영롱하지 않았다고 해도 삶의 모퉁이마다 향기는 뜨거웠겠지. 그 어느 한 모퉁이에서 나는 생겨났다. 나는 세상에 올 때 하얀 기억이 서러워 목청껏 울었을 것이다. 뿌리 없이 위태로워 주먹을 꼭 쥐었을 것이다. 그 어설픈 생명은 뜨거운 자운영 향의 녹비로 단단한 뿌리가 되고, 웃음도 짖는 사람이 되었다. 자주색 꽃물로 내 핏줄이 일어섰다. 나의 오래된 기억이다.
그 여름
우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모여들었고, 조잘거렸고 조잘거림은 커졌고 커지는 순간 흩어졌다. 그 거리는 절대로 좁아지지 않았다. 이상할머니는 입이 크고 덩치는 황소만 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나있는 머리 뒤쪽에 짧은 은비녀를 고집스럽게 꽂고 다녔다. 이상할머니집 앞은 놀기 좋은 장소라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주 놀았다. 놀이는 신날수록 아이들은 모여들었고, 모여들수록 조잘거림은 커진다. 그러는 순간 담장 안에서 손에 막대기를 들고 달려 나오는 황소 소리, 아이들은 송사리떼 날랜 몸놀림으로 흩어진다. 정말 빠르다. 경계 안에 들어서면 안 되었다. 이상할 만큼 화를 잘 낸다고 하여 할머니 이름은 이상할머니가 되었다. 동네 어른들도 모두 그렇게 불렀다. 어쩌다 혼자 그 집 앞을 지나갈 일이 생기면 할머니와 마주칠까 싶어 큰길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나름 최선의 방법이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소리 몇 번 지르면 해가 지고 아이들은 집으로 사라진다. 자식 하나 없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이상할머니집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우리집 뒤뜰의 오동나무 한 그루, 그늘이 시원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오동나무, 나는 오동나무집 아이이다. 여름이면 뒤뜰에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흐르는 작은 물길 한가운데 손바닥만한 샘물을 만들고, 뒤뜰에 떨어진 오동나무 열매를 띄웠다. 손으로 찰방거릴 때마다 물위에 살랑거리는 초록 열매를 작은 손안에 살포시 쥐면 내 안이 그득해졌다. 계절은 여물어가고 여름을 피해갈 수 있는 가을은 없다. 구름이 커지고 무거워졌다. 장마 비에 뒤뜰이 흙탕물로 되었다. 도담삼봉 강물은 점점 불어나 바다로 가지 못한 물길이 마을 앞 시냇물까지 밀고 올라왔다. 경계가 모호해졌다. 아버지의 퇴근이 빨라졌다. 그제는 마을 앞 논이 물속에 잠기더니, 어제는 마을의 버스길을 삼켰고. 어른들의 얼굴은 점점 근심으로 변해갔다.
텃밭의 달팽이는 더듬이를 안으로 접은 채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시간단위로 물길이 변하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마저 산으로 밀어 올렸다. 어른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이불더미를 어깨에 메고 뒷산으로 올라가는 아버지 손목 힘줄이 팽팽해졌다. 엄마는 넷째를 등에 업은 끈을 더 단단히 묶었다. 마을에서 제일 큰 기와집을 지키고 살던 배나무집 할아버지 가족들도, 이상할머니도, 예외 없이 뒷산으로 올라왔다. 배나무집 할아버지는 괘종시계를 품에 안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제일 귀한 물건이었나 보다. 배나무집 할아버지는 지나간 시간들 속에 이런 일은 없었다는 듯 제일 먼저 챙겨온 시계를 안고 서러워했다.
어두워졌다. 시계는 멈추었고 암흑 속에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는 그칠 줄 몰랐고 물이 점점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마을의 큰집도 작은집도, 키 큰 나무도 키 작은 나무도 속수무책이다. 멀리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제일 높은 건물 꼭대기 삼분의 일 정도가 물위에 뿌리 없는 상자처럼 떠 있었다. 피하지 못한 물길을 그 몸에 고스란히 들여 놓았다. 어둠속에 오동나무 키가 작아졌고 우리집도 물속으로 점점 잠겼다. 순간 엄마의 ‘아이고’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내 손과 동생 손을 꼭 우벼 쥐었다. 암흑 속에서도 내안이 그득해졌다. 집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았다. 이상할머니는 물과 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비속에서 수제비를 끓여와 나누어 주었다. 양념 하나 없는 멀건 국물 속에서 수제비를 건졌다. 두툼한 반죽, 뚜걱뚜걱한 식감, 오래 씹어야했다. 산비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좁아졌다.
오늘 밤 새들은 젖은 날개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예기치 못한 물길로 사람들 소리는 길을 잃어버려 몸 안으로 고여 들었다. 오동나무집 여름 한철이 아프게 지나갔다.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배나무집 할아버지는 대청마루 괘종시계에 태엽을 감고 있었다. 배꽃이 눈처럼 우물가에 내려앉고 시계바늘은 숫자 하나하나를 꼭꼭 밟으며 지나갔다. 배나무집 할아버지집은 물길을 버텨 내고 살아남았다. 우리가족은 그 아래채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오동나무 집터는 텃밭이 되었고 엄마는 그곳에 감자를 심었다. 감자 밭에서 뽀얀 알 감자와 등이 휜 숟가락이 나왔다. 상추 위에 민달팽이는 자신만의 걸음으로 밭고랑을 넘는다.
이상할머니의 담장 안 큰 소리는 홍수와 상관없이 그대로이다. 그 여름이 지나고 나는 이상할머니집 앞을 혼자서도 지나다니는 대담함이 생겼다. 이상한 일이다. 설날에는 동네 아이들과 감히 이상할머니집 문턱을 넘어 새해 인사를 가는 사건을 벌였다. 할머니에게서 무지개 사탕을 얻어먹고 입 안이 붉은 장미 꽃잎이 되었다. 지난여름 산비탈에서 뚜걱거리는 수제비를 달게 먹고 내 안에 꼬물거리던 용기가 한여름을 지나온 오동나무 열매만큼 볼록해졌다.
강미희 -------------------------------------------
1965년 생, 경북예천 출생, 충북 단양에서 성장, 청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아침 문학회 회원.
당선소감
지나온 나이테 무늬마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쁜 일들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 저편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일지도 모를 생의 저편, 그러나 누구든 가야하는 그곳, 그래서 뜨겁게 살 수밖에 없는 이곳입니다.
이곳에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엉클어진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기쁨과 상처의 골짜기마다 나름의 색깔로 꽃을 피우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꽃이 어떤 향기인지 글자로 하나하나 더듬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글쓰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는 저도 궁금해지기도 하고, 때론 막막하기도 합니다.
모자란 글 선택하여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제 글의 부족한 부분을 잘 깨닫게 해 주시는 아침문학회 지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함께 해주시는 아침문학회 문우님들과 기쁜 마음 같이 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옆에 있어 힘이 되는 가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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