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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1월호, 사색의 창] 어머니의 심장 박동기 - 이인환

신아미디어 2014. 5. 12. 21:44

"이렇게 못마땅한 점이 많은 어머니인데도 어쩌지 못하는 것은 그 바싹 마른 노인이 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식 된 도리를 해야 되고 내 몫의 사랑을 어머니에게 드려야 된다. 내 사랑의 몫은 얼마나 될까 나는 마음의 저울로 어림해 본다. 어림할 수가 없다. 답이 없는 도저히 답을 구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이 현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하고 어머니의 사랑은 이어져야 한다."

 

 

 

 

 

 

 

 어머니의 심장 박동기       이인환


   어머니가 심장 박동기를 달았다. 쇠약한 모습으로 겨우겨우 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처음에는 기계의 힘을 빌려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며 반대를 하였고, 나 또한 어머니의 생각대로 그럭저럭 지내다 이승에서의 삶을 마칠 때가 되어 가셔도 할 수 없다 생각하였다. 그것이 그분의 팔자려니 이렇게 마음을 모질게 먹고 어머니의 일은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점점 숨쉬기를 힘들어 하였고 옆에서 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딱하게 되었다. 의사 말로는 이제는 심장 박동기를 달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다 한다. 어머니는 숨을 헐떡거리며 몹시 힘겨워하면서도 그냥 견뎌 보겠다고 하였지만 견뎌서 될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때로는 내 의지대로 살 수 없을 때도 많다.
   이 박동기를 다는 시술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고, 젊은 사람에게는 간단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노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더구나 고령인 어머니에게는 위험한 일이라서 모두들 긴장하였으나, 어머니는 88세를 산 끈질긴 생명력으로 무사히 시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다.
   면회를 간 딸에게 어머니는 빨리 죽고 싶은데 왜 이런 것을 해서 살려 놓았느냐고 한다. 설마 어머니가 “삶은 수고로움이요. 죽음은 휴식”이라는 열자의 경지에 올라서일까 아니면 그만큼 삶이 고통스러워서일까. 착잡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그렇지만 때로는 세상의 끈을 놓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어머니가 우리 곁에 살아 계신 것이 안 계신 것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는 동생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의 심장 박동기 다는 일을 목전에 두고 자식들은 의견이 분분하였다. 사시는 동안 고통이 덜 하다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언니와 작은동생의 강력한 추진으로 이 일은 진행되었고 어머니는 무사히 이 시술을 마쳤다. 다행이다.
   세상 모든 일은 득得이 있으면 실失이 있는 법이다. 이제 어머니는 영원히 MRI 같은 것은 못 찍고 여러가지 제약이 뒤따른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어머니에게 많은 제약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엾은 마음이 든다. 원래 취미생활 하나 제대로 못하고 평생을 사신 분이다.
   사람의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하고 뛰지 않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 심장이 원활하게 뛰게 하기 위하여 기계의 힘을 빌려 뛰게 하는 것이니 현대 의학의 힘은 놀랍기만 하다. 심장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로 그리고 하트라고 읽는다. 이 하트는 사랑의 표시다. 그리고 생명의 상징이다.
   이탈리아의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 성당에 가면 신비로운 성체가 모셔져 있는데 20세기에 들어 성분 분석을 한 결과 그 물질은 인간의 심장 근육조직과 같다고 밝혀지고 혈액형은 에이비형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 심장 조직은 사랑의 표지, 곧 박애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인류를 위한 박애정신에서 이런 기적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심장이 감정의 근원이라고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에는 신진대사를 하며 영양분을 만들거나 섭취하고 폐기물을 배설하는 영양혼과 감수성으로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감각혼, 그리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장은 모든 생물의 여러 기관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며, 왼쪽의 냉기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 왼쪽에 있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지금 어머니의 심장은 자식들을 위한 사랑으로 한평생을 뛰었고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멈추려 하고 있다. 바싹 마른 낙엽과 같은 어머니 손을 잡고 병실을 걷는다. 옆모습에서 언뜻언뜻 외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진다. 미래의 내 모습도 보인다.
   사는 게 이렇게 늙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진다. 이런 힘없는 노인을 누군가가 잘 봉양해야 되는데 마음뿐, 나도 그 짐을 짊어지지 못하니 죄송할 따름이다.
   어머니의 일생은 딸보다는 아들을 위한 삶이었다. 그것도 큰아들을 향한 마음은 일편단심이다. 편애를 많이 하는 어머니에게 아무리 생각을 바꾸게 하려 해도 어머니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육십 평생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그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다. 어머니는 절대 그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은 불가항력이다. 아들이 장성해서 일가를 이루었으면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아야 하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을 넘어서서 손자까지 신경을 쓴다. 손자는 당신 영역이 아닌데, 이처럼 분별력 없는 노인을 탓하는 것이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렇게 못마땅한 점이 많은 어머니인데도 어쩌지 못하는 것은 그 바싹 마른 노인이 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식 된 도리를 해야 되고 내 몫의 사랑을 어머니에게 드려야 된다. 내 사랑의 몫은 얼마나 될까 나는 마음의 저울로 어림해 본다. 어림할 수가 없다. 답이 없는 도저히 답을 구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이 현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하고 어머니의 사랑은 이어져야 한다. 언제나 자식들은 멈추어진 심장에 사랑의 박동기를 달 수 있을까 여전히 미지수인 채 아득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이인환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