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굳이 그 재래시장에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수부꾸미 속의 팥소처럼 그 추억을 고이 품어 가슴에 넣어둡니다. 먼 훗날 나의 아이들과 낯선 재래시장을 돌다가 수수부꾸미를 발견하면 그것을 펼쳐볼 것입니다. 당신에 대한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해 두고만 있다가."
수수부꾸미 - 우광미
심리학자들의 말처럼 내 마음속 생각이 한 시간에 이천여 가지나 떠오르는 것일까요. 왠지 모르게 온갖 잡념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기일이 다가온 탓인지 요즈음엔 당신 생각이 자주 내 허전한 머릿속을 채우곤 합니다. 여러 자녀가 있었지만, 당신의 여생을 나와 함께 하기를 은근히 원하고 계셨고, 그 덕인지 내 아이들에게도 남다른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재래시장을 자주 가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당신의 치마폭을 잡고 따라나선 시장에서 맛보던 음식들과 추억이, 한겨울 아랫목 이불 아래 넣어둔 내복의 온기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삶이 버겁게 느껴지고 나의 내면이 위로를 필요로 할 때는 그곳으로 향하곤 합니다.
그곳에선 새벽을 깨우는 소중한 사람들의 숨결과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들을 물차에 싣고 와 진열대 대야 속에 쏟아 붓는 순간, 생선은 허공을 힘차게 튀어 오릅니다. 바다를 향하고자 하는 생명력에서부터 좌판 위에 갓 따온 채소들의 풋풋함이 물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지나는 손님들을 불러 세우는 아주머니들의 억척스런 목소리는 내가 안고 있는 복잡한 일들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당신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긴 해도 굳이 이곳으로 올 일은 아니었습니다. 집 주변에 커다란 마트도 두어 개나 있어 좋은 상품에 값도 저렴하련만 으레 재래시장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집에 가끔 들렀을 때, 수수부꾸미를 내놓으시면 또 재래시장에 다녀오셨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재래시장을 둘러보다가 당신의 추억을 끄집어내어 펼쳐 놓으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어렵던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잠시 시장에서 수수부꾸미를 파셨다는 것을. 그제야 재래시장을 즐겨 찾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나셨지만, 수수부꾸미 집 앞을 지나게 되면 당신은 어느새 내 곁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는 내게 불쑥 그것을 내미십니다. 그러면 나는 당신의 생각에 젖어 하루를 그리움 속에서 모질게 견뎌야 합니다.
나의 발걸음은 시장 모퉁이를 돌아 좁은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눈에 띄지도 않는 허름한 분식점에 들어갑니다. 이곳은 부담 없이 허한 속을 달래기에 충분합니다. 복장을 신경 쓰거나 굳이 예약할 일도 없습니다. 고작 네 개의 테이블만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점심시간이라 조금 붐빕니다.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지난번에 왔을 때에 있었던 분도 눈에 뜨입니다. 동네 분들인가 봅니다. 그들은 앉으며, “형님 국시 한 그릇 하러 오셨나 보네요.”라며 반가움에 빈 의자를 내어줍니다. 식사를 하고 있다가도 자리를 기웃거리는 사람이 오면 기꺼이 동석합니다. 심지어 점심시간이라 자리가 없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낯선 그들에게도 들어와 간이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를 권합니다. 그 속에 당신도 끼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초 조용하던 시장골목 앞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의 입맛이 고급화가 되었는지, 프랜차이즈 점이 시장 골목 앞에 들어서고 개업을 알리느라 분주합니다. 내레이터모델들이 확성기 음악 소리에 맞춰 현란한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 후 얼마 되지 못하여 수수부꾸미 집은 문을 닫고 어디론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나는 굳이 그 재래시장에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수부꾸미 속의 팥소처럼 그 추억을 고이 품어 가슴에 넣어둡니다. 먼 훗날 나의 아이들과 낯선 재래시장을 돌다가 수수부꾸미를 발견하면 그것을 펼쳐볼 것입니다. 당신에 대한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해 두고만 있다가.
우광미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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