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순문학상을 수상하신 남민정님의 수필을 《표현》에서 소개합니다
술 향기와 함께 글 향기에도 취해보세요..
향기를 찾아서
오늘도 남편은 배낭을 둘러메고 새벽에 길을 떠났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 있다는 장터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좋은 누룩을 파
는 한 노인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장터를 돌다가 오는 그의 배낭
속에는 누룩이 들어 있을 테고, 다음에 찾아갈 시골 장터의 이름이 적
힌 쪽지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 맛과 향이 뛰어난 술을 만드는 것이
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에는 종류에 따라 독특한 향이 있는데,
그 향은 꽃의 향기처럼 다채롭고 여느 향기와는 달리 오묘함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술은 우리나라 전통 술이다.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전해온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도 그 지방에서 나는 특이한 재료로 향이 좋은 술을 만들어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술의 문화는 그 집안의 문화이고 그
지방의 문화이며 그 나라의 문화라고 말한다.
남편이 어렸을 때에 시아버님께서는 시골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집에서는 민속주를 직접 빚으며 맛과 향이 뛰어난 술을 만들려고 고심
하셨다고 한다.
남편은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한두 잔에 얼굴이 붉어지고 서너
잔을 마시면 잠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술 만들기에는 관심이 없
더니 나이 지긋해지자 아버님께 향이 좋은 술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
렸다. 당신이 하시던 일에 대를 잇겠다는 자손이 없어 양조장도 처분
하신 아버님은 깊숙이 넣어 두었던 손때 묻은 온도계와 알코올 도수를
재는 비중계를 꺼내 주시며 기뻐하셨다.
그는 종이를 펴놓고 아버님께 좋은 술 만드는 비결을 여쭈었다.
“반생반숙半生半熟하고 불한불열不寒不熱하여라”
아버님은 이 한 마디만 일러주셨을 뿐이다. 뜻을 헤아려 보니 술밥
을 지을 때는 반은 설고 반은 익도록 하라는 뜻이고 발효 조건은 차
지도 덥지도 않게 하라는 뜻이었다. 불한불열의 온도가 몇 도쯤 되느
냐고 다시 여쭈어 보니 “동짓달에는 나뭇간 바닥에 묻어 두었다.” 하
신다.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계산자로 계산하고 줄자로 재며 만들어야 하
는 꼼꼼한 그에게 반생반숙의 술밥 익히기와 동짓달 나뭇간 바닥 같은
불한불열의 온도 찾기는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술 담기
는 실패하고 또다시 담고 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제는 좋은 누룩을 찾아 시골장터를 찾아다
닌다. 마음에 드는 누룩을 구해오면 우리 집은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누룩을 돌절구에 넣어 빻는다. 물맛이 좋은 경기도 포천에 가서 물을
길어 온다. 반은 설고 반은 익게 술밥을 찐다. 술 담을 항아리를 닦아
서 햇볕에 말린다. 이런 여러 가지의 일을 하루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집안은 분주하기 그지없다.
술을 담글 때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좋은 쌀로 알맞게 익힌
술밥과 질 좋은 누룩, 맛이 좋은 물과 깨끗한 항아리, 그리고 정결하게
다루는 정성과 알맞은 온도이다.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소홀해도 맛과
향이 좋은 술이 될 수 없기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지나 모든 재료가 항아리에 들어가면 그 항아리는
시아버님이 물려주신 온도계를 달고, 동짓달 나뭇간 바닥 같은 온도를
찾아 하루에도 여러 번 안방에서 거실로 옮기고 앞 베란다와 뒤 베란
다로 옮겨 다녀야 한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술항아리 옮기는 것은 내 몫이 된다. 어느 때는
귀찮아서 온도가 올라가도 모른 체하기도 하고 힘들다고 투정을 하였
더니 화가 난 그가 술항아리를 차에 싣고 출근한 적도 있다. 그는 연구
실 한구석에 술항아리를 놓고 온도가 올라가나 내려가나 보느라 온종
일 일을 하지 못했다며 그날 퇴근할 때 다시 들고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술이 익어갈 때쯤 다시 2차 담금을 해야 한다. 그때는
찹쌀가루를 익혀서 누룩과 함께 먼저 담은 술에 섞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술이 익어 가면 2차와 같은 방법으로 3차 담금을 또 한다. 술은 여
러 번 나누어 담을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 술 익는 향이 집안에 가득해지면 그는 겸허한 자세로 앉아 항아
리 뚜껑을 열고 술을 거른다.
술은 곰팡이에 의한 절묘한 변화이다. 그 변화를 지켜보며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으나 시아버님이 “아니다.” 한 말씀만 하시면 그 술은 모
두 버려지고 다시 술밥을 찌고 누룩을 절구에 넣으며 묵묵히 그 일을
다시 시작한다.
남편은 왜 그렇게 어려운 술을 만들려고 할까? 어린 시절이 그리워
서일까, 아니면 석류나무가 많았던 양조장 마당에서 뛰어 놀며 맡았던
술 향기에 대한 그리움인가. 가끔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는 어쩌면 자기가 원하는 술의 향기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
나 사람들 마음속의 향기는 물론이고 자연에서 나는 향기들도 점점 사
라져가고 있는 때에, 향기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는 그 과정이 더 향기
로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남편은 더 나이가 들면 시골에 내려가 술을 빚으며 살겠노라고 한
다. 그가 술항아리 옆에서 온도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는 무엇을
할까. 뒤뜰 앵두나무 옆에 작은 항아리 몇 개 묻어 놓고 봄이면 진달래
꽃으로 두견주를 담고, 가을에는 국화주를 담으며 눈 내리는 겨울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들길이 묻히도록 눈은 쌓이고 뒷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대는 날에
빚은 술까지 익는다면 그는 친구들을 부를 것이며 친구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겨울밤 긴 이야기로 술항아리를 비울 것이다.
밤이 깊은데도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좋은 누룩과 맑은 샘
물을 찾아 떠난 길, 향기를 찾아서 떠난 여행이다.
지금쯤 그는 둥그런 누룩 한 덩이 등에 지고 우리네 인생살이도 뛰
어나지도 뒤지지도 않게 반생반숙하며 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도 차지도 뜨겁지도 않게 불한불열의 알맞은 정을 나누며, ‘동짓달 나
뭇간 바닥 같은’ 편안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
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남민정 -----------------------------------------------------
충남 서천 출생. ?예술계?를 통해 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수필문우회 회원.
황의순문학상 수상.
저서 : 수필집 ?푸른 잔?, ?개구리 첫국밥? 등.
'계간 표현 > 표현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표현 2011년 하반기, 시] 헛생각, 오래 밝았으면 외 1편 - 한영옥 (0) | 2012.03.22 |
|---|---|
| [표현 2011년 하반기, 수필] 입춘대길 - 김애자 (0) | 2012.03.21 |
| [표현 2011년 하반기, 시조] 운해 외 1편 - 정순량 (0) | 2012.03.18 |
| [표현 2011년 하반기호, 작고문인 작품] 두물머리 - 유경환 (0) | 2012.03.18 |
| [표현 2011년 하반기, 시조부문 당선작] 오살놈 - 이재만 (0) | 2012.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