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거인국(?) 통아 선수의 눈물............ 김경중님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거인국 통아의 눈물
그린 클린 뉴질랜드, 5년 연속 정치 청렴도 1위, 조용하고 아름다운
나라, 먹을 것이 많고 천적이 없어 날지 못하는 새가 많은 다운 언더,
뉴질랜드의 봄은 샛노란 수선화와 색색의 프리지어로 온다.
찬란한 시절을 다 보내고 따가운 봄바람과 봄볕에 얼굴이 바랜 수선
화, 향내가 사라진 프리지어까지 아쉬운 손을 흔들며 떠날 차비를 서두
르는 9월 9일, 조용하던 오클랜드 바이어닥트(viaduct harbour)에 봄바람
이 분다. 24년 만에 럭비 월드컵이 열리는 오클랜드 거리에 일 년 내내
한 번도 게양해 놓지 않던 뉴질랜드 국기가 여기저기 내걸렸다. 뉴질랜
더들이 뉴질랜드 국기를 창문에 걸어 놓거나 울타리에 꽂거나, 차에 달
고 달리니 조용하던 거리에 갑자기 활기가 넘치는 듯하다. 뉴질랜드가
다민족국가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운전자들은 자신의 고국 국
기와 뉴질랜드 국기, 럭비팀 깃발까지 몇 개의 깃발을 승용차에 꽂고
달린다. 평소 잉글랜드 국기만 보다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국
기를 보니 생소하다.
거기다 나미비아, 사우스아프리카, 이태리, 프랑스, 미국, 캐나다, 조
지아, 러시아,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일본 국기와 마오
리부족 깃발까지 뉴질랜드는 지금 깃발의 홍수다. 깃발을 보고 운전자
를 보며 운전자의 국적을 맞춰 보는 게임도 해 본다. 깃발이 흔드는 손
짓, 아우성이 거리에 쟁쟁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참석했다. 이제 우
리나라도 럭비를 한다고 하니, 장차 태극기가 이 나라에 휘날릴 날도
있으리라. 이민자들은 자신의 고국의 게임이 있을 때는 다른 도시까지
원정 응원을 가고, 고국의 게임이 없을 때는 TV를 보면서 뉴질랜드 올
블랙스를 응원하는 모습이다.
뉴질랜더들은 올 블랙스(all blacks)에 열광한다. 올 블랙스 깃발은 까
만 바탕에 뉴질랜드 국목인 하얀 실버펀(silver fern) 잎사귀 하나가 그려
져 있다. 올 블랙의 깃발, 모자, 양말, 스커트, 바지, 티셔츠, 열쇠고리,
스카프 그런데 올 블랙기는 동이 났다는 소식이다. 사시절 푸른 초원
뉴질랜드 북섬에서는 블랙이 잘 어울린다. 여성들도 계절에 상관없이
옷장의 90%를 블랙으로 채우고 산다는 통계다. 심지어 블랙을 유지하기
위해 세탁을 자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들의 블랙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파시피카나 아시안들은 튀는 원색을 선호한다.
한국에 태권도가 있다면, 뉴질랜드에는 마오리 전투무인 하카가 있
다. 뉴질랜드에서 럭비와 크리켓 그리고 골프가 국민 스포츠다. 동네마
다 골프장, 럭비 구장, 크리켓 경기장이 있다. 특별히 뉴질랜더들은 럭비
에 미친다. 중요한 럭비경기가 있으면 거리가 빈다. 이웃집 남자는 올
블랙팀에 1백 달러를 걸었다며 웃는다. 많은 뉴질랜더들이 럭비 경기와
경마에 돈을 건다.
그런데, 나는 럭비보다 럭비경기의 식전행사인 하카(Haka)에 관심이
많다. 하카는 영혼을 건드리는 묘한 구석이 있다. 내가 몇 년 전에 게이
퍼레이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멋진 공연이 하카였다. 형형
색색 기기묘묘하게 꾸민 게이들보다 웃통을 벗고 ‘까마테’를 외치는 마
오리 공연이 나를 전율시켰다. 하카는 마오리의 자부심이다. 월드컵 개
막식 전에 칼리지 학생들이 하카를 하며 시가행진을 했다. 선두에서 공
연하는 마오리들의 힘찬 동작은 소름 끼치도록 박력이 넘쳤다.
하카에는 신화가 있다. 태양신 타마 누이 비트라에게는 두 명의 아내
가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여름의 여신 히네 라우마티이고, 다른 아내
는 겨울의 여신 히네 타쿠루다였다. 그중 여름의 여신 히네 라우마티가
낳은 아들 타네 로레가 만든 춤이 하카라고 한다.
하카의 전설도 있다. 하카는 1810년 가티트아 부족의 테라우파라하
족장이 다른 족장에게 쫓겨 지하의 식료품 창고에 숨어 있다가 죽을 각
오를 하고 기어 나와 보니, 다행스럽게 테라우파라하와 친한 부족장이
어서 목숨을 구한 기쁨으로 춘 춤이 하카였다고 한다. 실제로, 하카는
잉글랜드 게임에(1905) 참가한 선수들이 처음으로 올 블랙 유니폼을 입
고 식전행사에서 공연한 것이 대표팀에 의해 전승되었다고 한다.
오늘, 오픈닝 세리머니의 주역은 20대의 와카(카누)에 나누어 타고 바
이닥트항에 입성한 6백 명의 마오리들이었다. 그들이 육지에 오를 때,
AD 950년경 쿠페(Kupe) 부부가 새 땅에 와서 처음으로 한 말, <아오테아
로아 AOTEROA> ‘길고 긴 구름의 나라’를 상징하는 긴 구름이 오클랜드
항만을 덮고 있었다. 이른바, 팬 존(Fan Zone)이다.
마오리들이 이 땅에 온 지 천 년이 다 되었을 때, 영국 여왕의 비밀지
령을 받은 탐험가 쿡 선장이 왔다. 그 후 그들은 총과 사냥개를 앞세우고
줄지어 왔다. 그들은 해가 지면, 마오리들이 무서워 밖에 나오지 못했다
고 한다. 마오리들은 거구인데다 적을 죽여 먹는 관습도 있었다. 나도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는 대낮 시티 한복판에서도 그들이 떼지어 지나
가는 것을 보면 두려웠다. 그 넓은 몸과 얼굴에 괴이한 문신을 하고, 사
람을 집어 삼킬 듯이 왕방울만 한 눈을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며
히히덕거리는 그들 앞에 이방인이며 동양여자인 내가 어찌 기를 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영국인들은 마오리 부족간의 전쟁 덕분에 어부지리로 많은 피
를 흘리지 않고도 마오리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 마오리들은 침략자들
앞에서 일백십여 개 이상의 부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싸웠다. 침략자
들은 부족 공동 소유의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족장이 넓은 땅 대신
받은 것은 하찮은 선물들 몇 가지였다. 몇몇 마오리 부족은 끝까지 대항
했지만 중과부적, 침략자들이 수십 배의 영국인들을 데려왔다. 침략자
들은 문자도 없는 그들을 설득해 조약서를 만들었다. 뒤늦게 문서의 의
미를 깨달은 마오리 부족들이 단합했지만, 이미 땅이 넘어간 뒤였다.
그래도, 마오리들은 호주의 에보리진처럼 사막으로 쫓겨가지 않고, 그
들의 땅을 지켜 냈다. 그러기에 오늘도 하카는 강력하다.
나의 마오리 친구 엘렌은 지금도 자기 부족이 와이탕이 조약에 사인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녀는 백인과 결혼해서 딸 둘과 아
들 하나를 낳았는데, 딸 하나와 아들은 백인의 모습으로, 다른 딸은 중간
이 아닌 완전한 마오리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마오리들이 중앙아시아에
서 왔다는 설을 뒷받침하듯 그들은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
서 그런지 그들의 음식도 나에게 거부감이 없다. 그들은 지금 인구 늘리
기에 고심하고 있다. 뉴질랜드 인구의 14%인 6십만으로는 큰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카 행진을 따라 바이닥트(viaduct)로 모인 사람들은 부나비들처럼 끊
임없이 터지는 불꽃을 향해 몰렸다. 3.5톤의 폭죽이 터지면서 해안은 연기
와 화약 냄새 속에 휩싸였다. 지지직 소리를 내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불꽃들이 사람들의 얼굴에 명멸하는 동안 몰
려 든 인파는 흥분하여 소리치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때마침, 밴드가 파티
의 열기를 고조시키자, 바람은 환호성을 전했고, 바다는 불빛을 머금고
춤으로 응답했다. 방송에서는 연신 파티, 더 비기스트 파티(The biggest
party)라고 떠들었다. 럭비 월드컵 개막행사는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큰
페스티벌이 되었다. 대낮부터 밤새도록 퀸스 와프(Queens Wharf)는 흥청
댔고 흥분의 도가니 속에 밤을 밝혔다. 뉴질랜드에 이렇게 인파가 몰릴
때도 있었나, 럭비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이든파크(Eden Park) 스타디움에서는 장장 45일 동안 진행되
는 럭비 월드컵의 개막식이 있었다. 개막식에는 지진으로 6개의 경기가
취소된 캔터베리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캔터베리에서 온 소년이 캔터베
리팀의 유니폼을 입고 럭비공을 가지고 1백 명의 적수와 장애물을 제치
고 승리의 꿈을 달성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대지진 이후 수천 번의 여진
을 겪으며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는 켄터베리 어린이들을 격려하는 자
리였다.
개막식에 이어 뉴질랜드 올 블랙 팀과 통아의 경기가 있었다. 통아는
럭비협회(IRB) 96 회원국 중, 본선에 진출한 20팀에 끼었다. 남태평양
일천여 개의 섬들 중에 통아(Kingdom of Tonga,인구 (3만)와 사모아(17
만), 피지(77만)도 본선에 진출했다. 뉴질랜드는 해마다 사오천의 퍼시
피카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사실상 통아나 사모아 본국에 사
는 인구보다 오클랜드에 더 많은 통안이나 사모안들이 살고 있다. 오클
랜드는 이름 그대로 폴리네시아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통아의 첫 상대인 뉴질랜드 올 블랙스 팀은 세계 럭비 그랜드
슬램을 네 번 달성했고, IRB에서 선정한 ‘올해의 팀’에도 네 번 선정된
데다, 1903년 이래 승률 75%에 달하는 최강팀이다. 럭비는 뉴질랜드의
자존심이다.
통아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통아 주장 선수의 얼굴에 주르르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최강팀과 맞서는 거인의 눈물, 행복지수
최고인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의 눈물, 3만의 인구로 본선에 진출한 자부
심의 눈물일 것이었다. 통아 주장 선수의 눈물을 보니, 한국의 정대세
씨가 생각난다. 그는 2010년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열린 축구 월드컵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북한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주목을 받던 상황에서
국가가 울려 퍼지던 중 눈물을 흘렸었다. 그의 조부모는 일제시대 대한
민국의 국적을 택했고, 그도 대한민국 국적을 소유했지만, 일본에서 태
어난 그는 조총련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는 2006년 북한이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에게 지는 것을 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대표팀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축구 월드컵에 참가한 그가 경기에 앞
서 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동영상이 미국 인터넷 잡지에 공개되
자, ‘평화를 가장 잘 전하는 동영상’으로 선정되어 대상을 받기도 했었다.
통아는 사모아와 함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국이라는 설이 있
다. 통아는 지금도 정부, 왕, 왕족, 귀족의 네 계급만 땅을 소유할 수
있고, 평민은 땅을 소유할 수 없는 계급사회, 부권중심의 사회다. 통아는
일찍이 폴리네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떨친 강국이었다.
나는 통아왕국의 공주 부부가 참석한 자리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
다. 공주가 왕을 대신해서 한국인 목사님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자리였
다. 수여식이 끝나고 기념품이 전달되었고, 만찬이 이어졌는데, 통아의
식탁은 거인국답게 모두가 ‘통’이었다. 통돼지, 통게, 통가재, 통과일 등,
영화 <자이언트>에서 봄직한 거창한 식탁이었다.
올 블랙과 통아의 첫 경기가 끝나고 이튿날 신문을 보니, 경기를 시청
한 사람이 세계 202개국의 38억 명이었고, 뉴질랜드에서도 인구의 절반
인 2백만 명이 시청해서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이나, 사모안 뉴질랜더
권투 시합 때의 시청률을 초과했다고 한다. 지금 뉴질랜드의 화제는 온
통 럭비다. 호주 멜번에 가다 보니 에어 뉴질랜드 비행기에서도 올 블랙
주장과 코치가 기내 TV에 등장하여 안전수칙을 안내하고 있다.
럭비 월드컵이 시작되던 날(9월 9일), 남태평양 16개국이 모여 3일 동
안 개최한 42회 ‘태평양제도 포럼’이 끝났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
분포한 섬에는 일천여 개의 종족과 언어가 있다. 그런데도, 그들 대부분
이 영어를 쓰는 이유는 그들이 오랫동안 서양의 지배를 받은 탓이다.
이번 포럼에 유례없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그 이유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폴리네시아 국가들이 침수와 쓰나미 등 자연재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남태평양을 향한 중국 진출
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미국은 팔라우와 마이크로네시아에 해군
기지를 가지고 있고, 호주는 파푸아 뉴기니, 바누아투, 솔로몬 아일랜드
를 식민지로 삼았고, 뉴질랜드도 니우에와 쿡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가
지고 있으니, 이들에게도 폴리네시아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포럼
의 가장 심각한 이슈는 여의도 세 배 면적의 크기의 투발루다. 차와 핸드
폰이 거의 없고, TV와 라디오도 보거나 듣지 않고 에덴동산에서처럼 순
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투발루가 50년 후에 물속으로 잠긴다는 것이
다. 그런데도, 해수면 상승의 주범국이라 할 수 있는 대국들이 내 코가
석 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질랜드와 호
주가 수억 달러의 기금을 내놓았고, 뉴질랜드는 기후이민이라는 특별
이민제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남태평양의 거인국 통아 선수의
눈물, 땅을 빼앗긴 건장한 마오리의 눈물, 외로운 이방인의 눈물, 분단의
슬픈 눈물과 투발루의 생존의 눈물까지 한 방에 날려 줄 그런 평화의
월드컵은 없을까?
* 후기: 뉴질랜드는 지난 10월 23일 벌어진 결승에서 99% 이긴다고 장담한 프랑스를 7:8로
힘겹게 이기고 24년 만에 제7회 럭비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고, 통아는 첫 게임에서 올 블
랙스에 진 것을 포함하여 2승 2패로 게임을 끝냈다.
김경주 ------------------------------------------------------
2009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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