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노래를 부른다. 아이는 남편이 되어 듣는다. 검디 앞바다가 예까지 밀려온다. 어머니의 모습이 한없이 다정한 바다로 밀려든다. 아이가 바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잠이 든다. 이내 쌕쌕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진다. 이밤 남편도 검디 앞바다를 덮고 편안히 자고 있겠지. 그리고 밤마다 바다를 덮고 자는 남편은 더욱 바다를 닮을 것이다."
섬집 아기 - 김순희
“이번 주는 바빠서 못 갈 것 같아. 다음 주에 갈게.”
남편은 통화 끝머리에 말을 붙였다.
“응, 알았어.”
나는 일상이 되어버린 말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남편은 타지에서 숙소생활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쯤 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다. 인천을 떠나 양주로 이사 온 후로는 더욱 객지 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못 온다는 말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남편이 안됐다. 서민 가장이야 다 비슷하겠지만 남편은 흡사 둥지로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는 박새 같다. 아이들 재롱도 제대로 못 보고, 내조도 변변히 못 받는다. 싫은 소리, 힘든 내색 한번 않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다. 난 남편이 바다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사진학과를 나와 사진을 찍으러 다닐 핑계도 많았겠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면 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나절 바닷길을 돌아왔다고 한다.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때에도 우리 가족은 유난히 연안부두와 월미도에 자주 다녀왔다.
인천에 살 때다. 한번은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 복도에 서서 상념에 빠져 있던 남편을 보았다. 내색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모르는 척 지났는데, 생각해 보니 그쪽이 바닷물이 들어오던 수문통이 보이는 곳이었다. 만조 때나 겨우 찰랑이는 바닷물에 남편은 위로를 구했는지 모른다. 태생은 속일 수 없나 보다.
남편의 고향은 강화도 옆에 작은 섬 동검도이다. 도시로 나오기 전, 대여섯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남편의 검디(동검도의 향토 이름) 추억은 이러하다. 그곳은 남편이 떠나올 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밤이면 호롱불을 밝히고 본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룻배를 타야 하는 오지였다. 그때 아버지는 인천으로 돈벌이를 나가 집에 안 계시고, 어머니는 삼밭을 일구느라 바빴다. 세 살 위인 형이 학교에 가고 나면 늘 혼자였다. 놀이터는 바다뿐이었다. 매일 아이는 집앞까지 들어오는 바다를 맞아 나섰다. 펄 위를 구르기도 하고, 신발로 쪽배를 만들기도 하였다. 갯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폴딱이는 망둥이도 쫓아다니고, 뻘뻘 기는 소라와 게에게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놀다, 놀다 지치면 집 쪽마루에 누웠다. 그리고 여느 아이들처럼 혼자 대화를 나누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엄마는 언제 오시껴? 촤르르 금세
형은 언제 오시껴? 솨아 이제
아버지는 안녕하시껴? 촤르르 그럼
내 생각하시껴? 솨아 무지무지
돈 많이 벌어 오시껴? 촤르르 그렇고말고
맛난 것도 사오시껴? 솨아 그럼, 그럼
엄마 보고 싶다 촤르르
형은 달려오겠지 솨아
아빠는 촤르르 솨아
보고 싶다 촤르르 솨아 촤르르솨아 잘 자 촤르르솨아… 솨아…….
유난히 친탁을 많이 해 아빠를 빼다 박은 작은애가 아빠를 찾는다.
아빠한테 전화 왔어? 응.
아빠는 언제 온데? 다음 주에는 온대.
내일 못 온데? 바쁘시대.
나한테는 내일 온다고 했는데? 무지 바쁘대. 다음 주에 꼭 온대.
아빠한테 전화할까? 너무 늦어서 벌써 자고 계실 거야.
안 잘지도 모르잖아? 벌써 밤10시가 넘었잖아, 내일 유치원 또 늦을라.
자나 안 자나 한번 해보면 안 돼? 이제 소리 나면 꿀밤 한 대씩.
아빠 보고 싶다아~. 쉿, 잘 자.
잠이 안 와. 얼른 눈감아, 재워줄 테니. 꼭 감아 실눈 떠도 꿀밤 한 대!
안 자려고 버둥거리는 아이를 토닥이며‘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를 즐겨 부른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설치는 밤에는 「섬집 아기」가 어울린다. 동요 「섬집 아기」는 남편의 주요 레퍼토리다. 이 노래는 내 노래야. 내가 꼭 이 노래 같았다니까, 하며 남편은 「섬집 아기」를 퍽 좋아한다. 나지막이 「섬집 아기」를 부르며 고단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달랜다. 시댁에 가면 어머님도 이 노래를 부르신다. 음치다. 남편도 붕어빵인지라 어머니를 닮아 음치다. 하지만 정겹기로는 최고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나는 엄마의 노래를 부른다. 아이는 남편이 되어 듣는다. 검디 앞바다가 예까지 밀려온다. 어머니의 모습이 한없이 다정한 바다로 밀려든다. 아이가 바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잠이 든다. 이내 쌕쌕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진다. 이밤 남편도 검디 앞바다를 덮고 편안히 자고 있겠지. 그리고 밤마다 바다를 덮고 자는 남편은 더욱 바다를 닮을 것이다.
아버지는 안녕하실까? 촤르르, 그럼
돈 많이 벌어올까? 솨아, 그렇고말고
아빠 보고 싶다. 촤르르 솨아, 나도 많이 보고 싶다.
아빠가 좋아. 촤르르 솨아, 나도 많이 좋아 잘 자.
촤르르 솨아 사랑해. 촤르르솨아 언제까지나 사랑해. 촤르르솨아…
솨아…….
지금쯤 꿈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바다가 보이는 검디 마루에 나란히 누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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