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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7월호, 신작수필] 소년과 여우 - 이봉재

신아미디어 2013. 9. 17. 08:02

"거칠어진 세파에 찌들어 처량해질 때면 이런 추억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인공적인 조형미, 예술의 이름으로 묘사된 정경, 과학으로 다듬어진 빈틈없는 도시 환경, 이 모두가 아무리 완벽하다 한들 자연이 빚어낸 산야의 신비와 신의 조화를 어찌 당하랴?"

 

 

 

 

 소년과 여우    이봉재 수필가


   계사癸巳년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진달래가 온 산을 물들이겠지. 이때쯤이면 언제나 고향집 뒷동산의 봄 풍경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와 가슴을 적신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옛집 뒷산에는 지금 고속도로가 생겨 상전벽해가 됐다. 고풍스런 자연환경이 조경공사에 의해 압살되어버렸다. 꿈을 짓밟힌 느낌이어서 가슴이 허허롭다. 이제 심산유곡을 찾지 않는 한 집 부근에서 태곳적 신비와 청순함을 보기 힘들게 됐다. 
   나의 어린 시절은 도처가 금수강산이요 낙원이었다. 인적미답의 도원경이 따로 없었다. 집 뒷산이 금수산이요 앞들이 꽃으로 수놓인 에덴이었다. 옥수가 흐르는 시냇물이 거기에 있었고,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휴식을 위해 구태여 심산유곡을 찾을 필요가 없었고, 멀리 원족(소풍)을 갈 필요도 없었다.
   이른 봄에는 새빨간 진달래가 온 산을 수놓았다. 늦봄에는 철쭉꽃이 진달래를 대신해서 산에 옷을 갈아입혔다. 바위 틈바구니에는 천고의 이끼가 물을 흠뻑 머금어 산자락을 촉촉이 적셨다. 마을에 인접한 산이면서도 노송거목이 하늘에 치솟았고, 이름 모를 잡목들이 색색으로 우거져 조화로운 숲을 연출하였다. 벌 나비가 사이사이를 오가며 흥을 돋우고 있는 가운데 여우 토끼 등 야생의 짐승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기화요초奇花瑤草 틈에서 솟아나는 물줄기가 옹달샘을 이루고, 그 안에는 개구리, 올챙이, 풍뎅이 외에도 이름 모를 물벌레들이 무리지어 살았다.
   아름다운 그 산자락 언덕바지 약간 높은 곳에 우리 집이 위치하고 있어 뒷산과 앞들은 내 유년 시절의 놀이터였다. 읍 수준인 고을 주변의 산야 정경이 그 정도이니 두메산골 경치는 얼마나 아름다웠으랴. 
   하루는 뒷산에서 홀로 놀고 있는데 저만치 털 색깔이 노란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 개는 뛰지도 않고 나를 힐끗힐끗 돌아다보며 가다가는 서서 뒤돌아보고, 또 조금 걸어가다가는 뒤돌아보고 하는 것이었다. 뉘 집 개인가 싶은 호기심에 뒤를 따라가 보았다. 산 걸음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뒤질 수밖에 없었다. 개와는 자연히 거리가 생겼고 이십 미터 삼십 미터로 점점 멀어졌다. 개는 한참 가다가 우뚝 서서 내가 뒤따라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 차례, 나는 점점 깊은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산이 깊어지고 험해질수록 ‘독담(돌무덤)’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빨간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천상화원이 따로 없었다. ‘독담’사이를 비집고 한참 동안 개를 쫓아갔을 때 앞서 가던 개가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렸다. 개를 찾아 헤맨 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서산에는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산골짜기는 벌써 어둠이 깔렸다.
   산세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서 있는 곳이 동쪽 골짜기로 여겨졌다. 손발은 가시에 찔리고 바위에 찍혀 피가 삐죽삐죽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오기가 생겨 기어코 개를 찾으려는 생각에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탐색 끝에 이끼 낀 커다란 바위틈을 발견했다. 그 안에 개가 숨었으려니 생각하며 한 발 두 발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위틈에는 해골이 뒹굴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해골 앞에는 흙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몸이 오싹해졌다. 그때서야 내가 뒤따라 온 것은 개가 아니고 여우일 것이라 직감했다. 문득 여우는 사람을 홀려서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우에게 홀려서 여우 굴까지 이끌려 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여우는 무덤을 파헤쳐 그 안에 있는 시체를 끄집어내어 먹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경실색 정신없이 굴을 도망쳐 나왔다. 날은 어두워졌고 발에 걸친 고무신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형편없는 몰골로 어두워진 산속, 길도 없는 가시덩굴 속을 헤치고 넘어져가며 무작정 뛰어 내려왔다. 집에 어떻게 되돌아왔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소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니 육칠 세쯤 되었을 때다. 나는 평소 산과 들을  잘 쏘다녔기 때문에, 어머니는 늦도록 내가 안 보여도 큰 걱정을 안 하셨다. 
   거칠어진 세파에 찌들어 처량해질 때면 이런 추억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인공적인 조형미, 예술의 이름으로 묘사된 정경, 과학으로 다듬어진 빈틈없는 도시 환경, 이 모두가 아무리 완벽하다 한들 자연이 빚어낸 산야의 신비와 신의 조화를 어찌 당하랴?
   동물원에 가서 여우를 보고 기화요초를 감상해도, 동화에서나 나옴 직한 산과 들과 여우의 실상을 생긴 대로의 모습으로 직접 체험한 생생한 추억 앞에서는 감동이 없었다. 
   문득 여우조차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던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