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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마하리 내 고향 - 김미원

신아미디어 2013. 7. 31. 21:23

"가난해도 예의를 알았던, 아니 청빈을 훈장처럼 여기던 웃음이 선했던 할아버지, 의관을 정제하고 상체를 흔들며 리듬을 맞추며 한시를 읊던 할아버지, 손녀딸인 내게 항렬을 따라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 밤늦게 도착한 손주들을 위해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 늦은 저녁상을 차려주시던 할머니, 시골 노인답지 않게 얼굴이 하얗고 고왔던 자존심 강했던 할머니가 계시던 곳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그 터마저도 남의 것이 될 것이다."

 

 

 

 

 

 마하리 내 고향    -  김미원


   우리는 어렸을 적 그곳을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무서운 어감이 느껴지는 ‘말무덤’이라고 불렀다. 마을 우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용마龍馬가 솟아나와 마을을 일곱 바퀴 돌고 난 뒤에 죽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한자 지명은 말 마馬자와 안개 하霞를 따서 마하리馬霞里라는, 우리말보다 훨씬 이쁜 이름이다.
   사십여 년 만에 찾아간 그곳은 잘 뻗은 왕복 4차선 도로가 나 있어 그 옛날 지형 지물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작년에 다녀간 적이 있지만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 엄마는 진입로를 찾지 못했다. 엄마가 이쯤이라고 말한 지점에서 우리는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무렇게나 눈에 보이는 국도변 청국장집으로 들어갔다.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있어 우리는 청국장을 두 개씩 사들고 식당을 나왔다.
   점심을 마치고 그곳의 위치도 물어보고 시세도 알아볼 겸 식당 옆 부동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옆 편의점에서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던 사장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엄마는 속을 드러내지 않고 매수자인 척 변죽을 울리며 주변 창고 시세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경기가 좋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1년 전보다 시세가 떨어졌고 앞으로는 더 좋지 않을 거라는 대답에 엄마는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 엄마는 당첨되지도 않은 복권의 용처를 생각해놓은 사람마냥 한숨을 푹푹 쉬었다.
   출가외인으로(이런 단어를 쓰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지만) 친정집 재산에 무심했던 나는 서해안 고속도로와 과천 의왕 고속도로가 나면서 개발 붐이 한창일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고택을 허물고 창고를 지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동안 충직한 효자 노릇을 했던 창고 월세는 요즘 들어 엄마의 잦아진 병원치레에 턱없이 부족해졌다. 창고를 처분해 편하게 사시라고 부추긴 자식들의 제안에 엄마는 오랜 생각과 망설임 끝에 동의하셨다.
   왕복 4차선 대로에서 꺾어들어 1분 정도 들어가니 양 옆으로 창고건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엄마가 언덕 위 한 창고를 가리켰다. 잘 뚫린 길을 보았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할아버지가 사셨던 집의 흔적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나무, 밤나무, 감나무들은 베어지고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땅을 갈아엎지 않아 언덕 위 돋아진 곳에 할아버지 집과 마당의 소 외양간, 작은 집들, 은행나무, 감나무, 밤나무가 서 있던 곳, 조상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곳은 명절 때나 갈 수 있는 곳이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추운 설날의 기억은 없고 풍요로운 한가위에 대한 기억만 남아있다. 화장실과 잠자리도 불편하고 주로 밤에 도착해 시내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했기에 나는 그곳에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걸어간 길이 몇 십 분은 족히 되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차로 1분 거리였다니. 논밭을 갈아엎고 직선으로 길을 낸 탓도 있겠지만 이처럼 가까운 거리라는 사실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을 때와 같은 실망감과 배반감을 주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며 우리를 따라오던 환한 음력 팔월 열나흘 달과 서울에서 보지 못하던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고개를 꺾어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윤동주의 <서시>를 마주하면 어느 해인가 보았던 마하리 별들이 떠오른다.
   그곳은 기역자 모양의 안채와 할아버지가 쓰시던 별채인 사랑채가 있었다. 할머니는 넓은 대청마루를 윤기나게 가꾸었고 마루에는 뒤주와 백자들, 놋쇠로 만든 그릇들, 그리고 신주단지처럼 모셨던 제기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자손들이 모인 것이 좋으신 듯 서울에서 온 두 며느리들에게 큰 목소리로 지시를 하셨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도, 엄마도 아랫사람이었다. 그래도 친척들 누구도 종손인 아버지와 엄마에게 하대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순한 양이 되어 대청마루 끝에 앉아 밤을 치던 모습이 눈앞에서 보는 듯 훤하다. 할아버지는 갓을 쓰시고 두루마기를 입고 제사를 주관하셨다. 할아버지의 느리고 절도 있는 몸짓에서 권위가 느껴졌다. 나는 할아버지가 서울에 오시면 왜 그 권위가 느껴지지 않을까 의아했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상투를 튼 우리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들이 사랑채에 모여 긴 곰방대를 들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자욱한 연기를 피워내며 나누는 대화가 뭔가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로 보여 식혜나 강정 등을 다상에 담아 사랑채에 내는 심부름을 맡아했다.
   여자라기보다는 천방지축 아이에 가까웠던 나는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가지가 휘어지게 열린 감을 따기도 했고 벌어진 밤송이를 발로 문질러 밤을 까기도 했다.

 

   나는 창고 임차인을 만나 매도의사를 전하자고 했지만 엄마는 부모 몰래 잘못된 일을 꾸미는 자식마냥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했다. 가던 길을 되짚어 나와 아까 그 부동산으로 들어가 창고를 좋은 값에 팔아달라고 말하며 엄마는 마지막 노후 자금이라고 비굴해 보일 정도로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가난해도 예의를 알았던, 아니 청빈을 훈장처럼 여기던 웃음이 선했던 할아버지, 의관을 정제하고 상체를 흔들며 리듬을 맞추며 한시를 읊던 할아버지, 손녀딸인 내게 항렬을 따라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 밤늦게 도착한 손주들을 위해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 늦은 저녁상을 차려주시던 할머니, 시골 노인답지 않게 얼굴이 하얗고 고왔던 자존심 강했던 할머니가 계시던 곳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그 터마저도 남의 것이 될 것이다.
   형식상 엄마가 가자고 해서 따라왔지만 내용상 엄마를 종용한 나는 조상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얻게 된 경제적 여유로 나이 들어가는 노모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제 내 뿌리는 영원히 없어졌다. 마을 동네가 경주 김씨 집성촌이었던 곳, 전설 속 우물가에 모여 ‘윗말’ 누구네, ‘아랫말’ 누구네 소식을 듣고 서로 우애하며 한 가족처럼 도우며 살았던 곳, 나의 아이덴티티와 DNA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그곳이.

 

 

김미원  -----------------------------------------------
   월간 ≪수필문학≫에 <사이비>로 등단.  수필집: ≪즐거운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