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변해명 선생님을 추모하며  - 김미옥

신아미디어 2013. 7. 30. 13:08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들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일주기가 다가옵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에도 꽃들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화려함을 뽐내며 봄을 맞이하고 있네요. 저는 선생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미옥 씨’ 하며 어디서 불러줄 것 같고 제 주위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보내온 따뜻한 메일과 나를 생각하며 보내준 자료와 책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라는 메시지만 돌아왔지만 선생님 전화번호를 지울 수도 없습니다."

 

 

 

 

 

 

 변해명 선생님을 추모하며    -  김미옥


   고마우신 선생님!
   선생님 돌아가신 지가 어느새 일 년이 되었네요.
   돌아가신 날은 어버이날 5월 8일!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날입니다. 서초여성회관에서 처음 뵙고 어느새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 메일 첫머리는 언제나 ‘고마우신 선생님’으로 시작하고 ‘제자 올림’으로 마무리를 했지요. 저는 영원한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그때 저는 뇌경색을 앓고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도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를 모신다고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서 환자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알려 주면서 우애 깊은 선생님의 형제 이야기 등 가정사를 주고받으며 선생님과 많이 가까워졌지요. 집이 수유리라 방배동까지 전철을 타고 오시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이 들지만 그래도 문학수업을 한번도 지각없이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2004년도에 돌아가셨을 때 엄마 잃은 아이처럼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어머니에 대해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마음이 떨려서 한 줄도 쓸 수 없다고 하셨지요. 저는 선생님 어머님께서는 청명 한식 좋은 날에 돌아가셔서 바로 천당으로 가셨으니 너무 마음 아파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영혼의 맑음과 외로움이 보여서 읽고 있는 나도 마음이 저렸습니다.
   이제 작품을 써도 선생님의 정확한 평을 들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제가 작품을 써서 메일로 선생님께 보내면 곧바로 평을 해주셔서 못 쓰는 글 솜씨지만 그렇게 해서 제 글은 조금씩 나아졌어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선생님 덕분으로 가슴 한편의 허전함을 글로써 채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책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응원 덕분입니다. 그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도 해주시고 여러모로 제자 사랑이 각별한 분이셨어요.
   그 뒤에 몸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뵙고 싶다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메일을 보내왔지요.
   선생님께서도 보고 싶다면서 암이 담낭에서 간으로 전이되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항암주사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며 상황이 좋아지고 면역체계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마음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얼마 뒤 만나고 싶다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전용희 씨와 계간수필 회원 몇 분과 선생님 집 근처 4·19묘역 앞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그날이 2011년 4월 27일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내가 4·19묘역은 처음이라고 하자 선생님은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내 손을 잡으시고 묘역을 한 바퀴 거닐었습니다.
   묘역은 신성하고 아늑하고 하늘도 맑아 청량해서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묘역을 한 바퀴 돌며 아침운동을 하신다고 했지요. 그사이 봉분이 많이 늘어나고 그곳에 묻힌 신자라는 이름이 새겨진 비석 앞에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서울대 미대 4학년인데 4·19 일어나는 날 총에 맞아 피를 흘렸는데 병원으로 가지 않고 대학생들이 들것에 메고 구호를 외치며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어린 학생 이야기와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을 들려 주면서 봉분들이 자꾸만 늘어난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이미 생사를 초월하신 듯 보였습니다. 그때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과 다정한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오랫동안 역학공부를 한 관계로 선생님께서 평소 때에도 궁금증을 가끔 물었지만 그날도 내게 살짝 물었습니다.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는지……. 선생님의 사주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바르게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선생님은 나을 수 있다고 말했지요.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 미옥 씨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믿어야지 그랬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홍삼 같은 건강식품을 보내드리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2012년 3월에 내가 염원했던 풍수에 맞는 집을 짓겠다고 시골로 가게 되었고 지으면 선생님을 제일 첫 번째로 모시겠다고 했지요. 선생님께서는 허리가 아파서 의자에 앉을 수도 없다며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도록 꿈의 동산을 이루고, 건강해져서 방문도 하고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며 제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들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일주기가 다가옵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에도 꽃들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화려함을 뽐내며 봄을 맞이하고 있네요.
   저는 선생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미옥 씨’ 하며 어디서 불러줄 것 같고 제 주위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보내온 따뜻한 메일과 나를 생각하며 보내준 자료와 책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라는 메시지만 돌아왔지만 선생님 전화번호를 지울 수도 없습니다.
   고향집은 기본적으로 좌향坐向이나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 같은 풍수의 기본은 되어 있는 집터이지만 남편과 나는 더 보강을 해서 일 년 넘게 온 힘을 다했습니다.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상쾌한 공기, 울창한 산, 넓은 들판, 선생님이 오셔서 보시면 절로 시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집, 제 작품 속 고향집처럼 지치고 힘들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생기를 얻고 활력을 되찾아 갈 수 있는 작은 궁전 같은 집을 지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모시고 싶었던 선생님! 아마도 저희 집에 벌써 다녀가셨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고마우신 변해명 선생님, 사랑하는 어머님과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빌어봅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김미옥  ------------------------------------------
   ≪수필과비평≫ 등단. 저서: ≪꽃피는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