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일이 있으면 너털웃음을 웃고 남이 훌륭한 일을 하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면서 하루 하루 즐겁게 살고 있으니 어찌 보약이 필요하겠는가. 내가 언제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있을지 그것은 나도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살아갈 것이다."
나의 보약 - 정재호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나라 없는 백성으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일본말로 된 교과서로 공부를 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배워 겨우 말귀를 알아듣게 됐을 무렵 해방이 되어 우리말로 공부를 하였다. 그후 또 영어를 배우게 되어 세 나라의 말로 공부를 한 셈이니 운수가 좋았다고 할 수도 있고 팔자가 사나웠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살던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아서 아이들은 감과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감나무는 5월에 꽃이 피어 가을이 되면 홍시가 되기도 하고 곶감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감꽃이 땅에 떨어지면 그것을 주워 소꿉장난놀이도 하고 배가 고프면 먹기도 했다. 감꽃의 맛은 처음에는 떫지만 오래 씹으면 약간 달짝지근한 맛이 있다. 우리 마을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하여 곶감을 숙성시키는 데 가장 적당한 기후라고 했다.
옛날부터 제사를 지낼 때 젯상에 진설하는 과실의 순서가 조(대추) 율(밤) 이(배) 시(감)인 것을 보면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이 생산되는 고장은 상주뿐만 아니라 문경, 예천, 선산, 영양, 영동, 산청 등 전국에서 감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제사상에 올릴 만한 과실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일평생을 감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특히 곶감과 더 가까이 지낸다.
지난해 TV의 교양강좌시간에 한의사이며 한의과 대학교수의 강의를 듣고부터 곶감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감기약 대신 곶감 먹기를 권장했다. 그의 처방은 아주 간단했다. 누구든지 감기에 걸렸거나 감기에 걸릴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끓인 물에 곶감 3개 정도를 넣었다가 꼭지와 씨앗을 빼내버린 후 그 물을 마시고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나면 감기가 쉽게 치료될 수 있음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 뒤부터 나는 겨울이 되어 감기 기운이 느껴지면 끓인 물에 곶감을 넣었다가 우러난 물을 마신다. 그러면 감기가 쉽게 나았다. 그 후부터 나는 지인들이 감기에 걸린 듯하면 곶감물을 권유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내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나를 건강체질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렸을 때 자다가 허깨비에 놀라 깨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날 정도로 허약한 체질이었다. 집이 가난하여 보약 같은 것을 먹지 않았다.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지 않고 날마다 요즘도 걸어다닌다.
내 나이 80세가 되었지만 하루에 15km쯤 걷고 100m쯤 달리며, 여가가 있으면 책을 200페이지쯤 읽고 가끔 노래도 몇 곡 부르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아들이 없고 딸만 넷을 둔 데다가 10년 전 아내마저 사별했으니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할 처지에 있다. 그렇지만 기쁜 일이 있으면 너털웃음을 웃고 남이 훌륭한 일을 하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면서 하루 하루 즐겁게 살고 있으니 어찌 보약이 필요하겠는가.
내가 언제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있을지 그것은 나도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살아갈 것이다.
정재호 -------------------------------------------------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수필집: ≪그대에게 드리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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